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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영어 배울 곳이 없어요 - 박슬기(중년 여성 커뮤니티 ‘할두’ 대표)

기사입력 : 2024-05-08 21:15:47

‘I study English every day’

영어유치원 다니는 손주랑 대화하고 싶어서, 해외여행 가서 당당히 주문하고 싶어서, 치매 예방하려고. 중년 여성 커뮤니티 ‘할두’의 50~60대 멤버들은 다양한 이유로 영어를 배운다.

‘할두’는 영어를 가르치는 곳은 아니다. 그런데 멤버들은 영어 배울 곳이 없다고, 영어 모임을 열어달라고 한다. 영어 가르치는 곳이 얼마나 많은데 배울 데가 없다는 걸까?

그들이 관심 있는 분야는 ‘실전 회화’다. 영어 회화는 가격이나 프로그램 면에서 학원이 가장 좋은데, 젊은 사람들이 많아 가기가 쉽지 않단다. 돌이켜보니 중년을 위한 영어 학원이나 콘텐츠를 못 본 것 같긴 하다. 그럼 젊은 사람들이랑 같이 배우면 되는 거 아닐까?

중년이 영어 학원을 가기 힘든 이유는 크게 3가지다. 우선, 젊은이들의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눈치를 준다는 게 아니다. 중년들 스스로 민폐가 될까 선뜻 참여하지 못한다. 나만 모를까 봐, 발음이 이상할까 봐, 나이 먹고 틀릴까 봐. 사실 젊은이들도 하는 걱정이지만 그 공간에서 중년은 주류가 아니기에, 더 신경 쓰이는 것이다.

‘배움의 속도’가 다른 것도 이유다. 빠릿빠릿한 젊은이들과 중년이 받아들이는 속도는 다르다. 예·복습의 문제를 넘어 이해와 기억의 차이는 따라가기 버겁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배경 지식의 차이’도 걸림돌이다. 회화 수업에서 흔히 나오는 질문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내가 좋아하는 가수는?’ 등에 대한 답을 떠올려보자. 2030의 답과 5060의 답은 다를 것이다. 나를 표현하는 수업에서 내 답이 남들과 다르게 느껴진다면, 입을 떼기가 주저된다.

중년 영어에 대한 수요는 확실히 있다. ‘할두’ 영어 클럽 회원 모집이 하루 만에 품절됐고, 참여자 95%가 개근했으며, 재수강 요청도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영어 시장, 교육 시장 플레이어들이 중년의 배움에 대한 열정을 들여다보면 어떨까.

뭐든 연령을 기준으로 분리하자는 건 아니다. 보다 ‘다양한’ 사람들의 환경과 신체적, 심리적 상황이 고려되면 좋겠다. 젊은 사람들이 또래끼리 있을 때 편하듯, 중년들도 그렇다.

박슬기(중년 여성 커뮤니티 ‘할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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