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파] 광장을 침범한 정치- 이지혜(정치부 기자)

집결지를 뜻하는 ‘아고라’,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폴리스)에서 자유 시민들이 자유롭게 토론을 벌이던 장소다. 정확히 언제부터 구현됐는지는 파악할 수 없지만, 폴리스가 그리스 전역에 걸쳐 형성되던 기원전 9~7세기 무렵에 시민권 보유자들이 병역을 위해 집결하거나, 위정자들의 연설을 듣기 위해 모인 것이 시초이다. 후에는 시장으로 주로 쓰였고, 운동 경기와 같은 문화행사도 열렸다.
▼도시 가운데의 공간, 광장은 열려 있다.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와 로마의 포럼에서부터 서울의 시청·광화문·여의도에 이르기까지 광장은 모두 열려 있었다. 열린 광장에 시민이 모이고 또 그들의 뜻이 모이면 시민이 주도하는 권의주의에 대한 응징과 변화의 시작점이 된다. 1960년 3월 마산의 학생과 시민들은 부정선거에 대항해 광장으로 모여들었고, 1980년 5월 광주의 광장은 민주주의 최후의 항쟁지였다.
▼비상계엄과 탄핵정국으로 국민들은 또다시 열린 광장에 모여들었다. 불안과 변화를 자유롭게 토론하고 공유했다. 역사의 순간순간 광장에 모였던 시민들은 더욱 성숙한 방법으로 목소리를 냈다. 그 열린 광장을 비집고 들어온 불청객은 또 ‘정치’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목전에 두고 광장이 정치인들의 무대가 됐다. 천막을 치고 피켓을 들었고 거리를 행진하고 단상에 올라 더 싸우고 더 대립할 것을 부추긴다.
▼‘거리정치’에 나선 이들이 비집고 들어온 광장은 닫힌 공간이 된다. 정치세력이 차지한 광장은 일부 극렬 지지층의 호응만 유도할 뿐인 극도로 폐쇄된 공간이다. 정치적 격변 출발지는 항상 광장이었고, 광장의 역할은 권위주의를 권좌에서 내쫓는 것까지다. 정치가 국회와 같은 무대에서 위임받은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는 않고 또 열린 광장을 침범하고 광장의 열기에 편승한다. 매번 ‘국민의 뜻’이라며 멋대로 비장한 건 기본값이다.
이지혜(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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