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세상을 보며] 와가보더 국기하강식- 양영석(지방자치부장)

기사입력 : 2024-06-03 19:33:17

인도와 파키스탄은 견원지간이다. 1947년 영국은 힌두교 인구가 다수인 인도와 이슬람교 인구가 다수인 파키스탄으로 분할 독립을 승인했다. 새로 국경이 확정되고 난 후 1200만여명이 고향을 떠나 자신의 종교적인 조국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무력 충돌 등으로 수십만 명이 사망했다.

이후 인도 내 무슬림 다수지역인 카슈미르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으로 수십 차례 무력 충돌이 이어졌다. 현재도 양국은 3300㎞에 달하는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군사적 긴장 상태에 있다.

그럼에도 양국 간 교류는 활발한 편이다. 두 나라는 종교를 제외하면 같은 문화권이기 때문에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인적·물적 교류를 하고 있다.

이런 두 나라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펀자브의 와가-아타리 국경 검문소에서 벌어지는 ‘와가보더 국기하강식’이다. 와가-아타리 국경 검문소는 한국으로 치면 판문점 비슷한 곳인데 매일 일몰 전에 열리는 양국 국기하강식을 보러 수천명의 관람객이 운집한다.

먼저 검문소 게이트를 사이에 두고 카키색 군복의 인도 군인들과 검은색 군복의 파키스탄 군인들이 요란한 음악과 함께 절도 있는 동작으로 등장한다. 닫혔던 게이트가 열리고 양측 군인들은 댄스배틀에 가까운 퍼포먼스 대결을 한다. 서로 눈을 부릅뜨고 상대방을 노려보다가 허공에 주먹을 날리고 다리를 머리 위까지 높이 찬다. 군인들의 기싸움 못지않게 수많은 관람객들의 응원전도 볼만하다. 파키스탄인들이 ‘파키스탄’을 외치면 인도인들이 ‘힌두스탄’을 외쳐대는 식이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국기를 흔들면서 함성을 지르기도 한다.

하지만 국기하강식이 끝나면 양쪽 군인들은 악수와 경례를 나누고 철수한다.

국가하강식은 1959년부터 시작돼 65년간 이어지고 있다. 이 의식의 정치적인 메시지는 명료하다. 양국 평화를 위해 협력하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양쪽 국기하강식 진행 과정과 군인들의 몸동작은 거의 똑같다. 서로 조율해 연출했기 때문이다.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된 채 군인들이 부동자세로 일체의 대화 없이 상대 동향을 감시하는 남북한 판문점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지금 남북한 관계에는 대립·대치가 있을 뿐 화합·소통은 없다. 따라서 어느 일방의 폭격 훈련 중 포탄이 상대 영토에 떨어지거나 군용기, 함정 등이 국경을 침범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질 경우 사태를 파악하고 수습할 창구가 없다. 이렇듯 극단의 긴장 상황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는 국민들이 많다. 남북한 군사전력의 대다수가 군사분계선 인근에 배치돼 있어 무력충돌 위험이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력, 군사력 등 모든 면에서 월등한 우위에 있는 우리가 먼저 관계 개선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독일 통일도 서독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북한에 무작정 양보하고 퍼주라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소통 채널이라도 마련하라는 얘기다. 무슨 일이 생기면 서로 알리고 협의해 군사분쟁 등 우발적 위기상황을 미연에 막자는 것이다. 그런 노력은 한반도 평화와 민족통일의 밀알이 될 수 있기에 더욱 절실하다.

와가보더 국기하강식이 긴 세월 동안 지속되는 것은 두 나라 간의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상징적 의식이기 때문이다. 남북한 모두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양영석(지방자치부장)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양영석 기자의 다른 기사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