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돌아왔다, 귀향시대] (12) 밀양에 살어리랏다
가족 돌보러 오던 고향서 ‘행복한 삶’ 디자인할 기회 잡았죠
작은 시골마을서 농부의 딸로 자라
친구 없이 자연 속에서 시간 보내
경제 상황 나빠져 스무 살에 상경
집안일 위해 귀향했다 떠나길 반복
관심 있었던 시각디자인 공부 시작
고향서 소통협력센터 매니저 제안
외주 작업·수업 등 바쁜 나날 보내
많은 돈 못벌어도 자유롭게 살고파
고향은 태어난 곳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처음으로 경험한 세상이자 그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그래서 떠나온 이유와 관계없이 돌아가고 싶은 그리움의 대상인 곳. 하지만 어느 청년에게 고향은 그저 마주하기 싫은 부끄러운 과거와도 같은 곳이다. 그 부끄러운 과거가 조금은 희미해졌다고 생각해 돌아보면 불행했던 기억은 더 뚜렷해질 뿐이었다. 그럼에도 청년은 다시 돌아오기를 결심했다. 고향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n번째 귀향 중인 황선연(35)씨를 밀양시 소통협력센터에서 만났다.

밀양시 소통협력센터에서 만난 황선연씨가 노트북으로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농부의 딸로 태어난 선연씨는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면 단위의 시골마을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부모님과 친할머니, 동생 둘을 포함한 여섯 식구가 살던 동네는 선연씨 가족 외에는 아이 있는 집이 없을 정도로 작은 마을이었다. 어울릴 친구와 놀거리가 없던 탓에 그는 집 앞에 있던 텃밭을 놀이터 삼아 뛰어놀며 자연 속에서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특히 논밭에서 계절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작물을 수확하고, 자신의 손을 거친 재료들로 할머니와 음식을 만들어 먹던 시간은 시골에서 태어난 것에 감사함을 느낄 정도로 값진 경험이었다.
“환경이 환경인지라 자연스레 혼자 노는 거에 익숙해졌던 거 같아요. 친구들은 학교 가서 만나면 되고, 방과 후에는 혼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취미가 많았거든요. 특히 집 앞이 바로 논밭이라 봄이 되면 할머니와 나물을 캐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게 너무 좋았어요. 도시에서는 이런 경험을 돈 주고도 하잖아요.(웃음)”
그의 어린 시절이 항상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당시 부모님의 수입으로는 여섯 식구를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어머니는 농사일에 더해 부업을 시작했지만, 가부장적이었던 할머니는 어머니의 경제활동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후 시작된 고부갈등은 집안 전체로 번져나갔고, 가정에는 웃음소리보다 언성이 높아지는 날이 늘어만 갔다. 가정의 불화는 그에게 하나의 목표를 심어 줬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도, 좋은 직장을 구하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집에서 가장 먼 곳으로 떠나는 것이었다. 그렇게 스무 살이 되던 해 집과 가장 멀다고 생각한 서울로 떠났다.
“유년 시절에는 집에서의 따뜻한 기억이 많아요.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저를 돌봐준 할머니에 대한 좋은 기억도 많고요. 그런데 할머니는 어머니가 밖으로 경제활동하는 걸 못마땅하게 여기셨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지는 가족 간에 불화로 너무 괴로웠죠. 이외에도 맏이로서 어린 나이부터 집안에서 해야 할 일들이 많아 지치기도 했고요. 이런 날이 반복되면서 성인이 되면 집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황선연씨가 동료들과 함께 커뮤니티 모임을 하고 있다./본인 제공/
선연씨에게 서울은 도피처이자 안식처였다. 타지에서의 대학 생활 그리고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한 노동의 연속. 현실은 녹록지 않았지만 집에서 멀어진 거리만큼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방감도 잠시, 서울 상경 1년 만에 집에 문제가 생겼다며 돌아오라는 할머니의 연락을 받았다. 동생들을 돌보고, 농사일을 거들어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집안 상황을 잘 알기에 맏이로서 할머니의 부름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렇게 다시 밀양으로 돌아와 가정이 안정될 때까지 버텼다. 그리고 다시 떠났다.
“이후에도 가족을 돌보기 위해 다시 돌아오고 또 떠나기를 반복했어요. 이 과정에서 커리어가 많이 무너졌죠. 이후에 무엇을 해야할지 막막한 상황에서 공백기가 생긴 적이 있는데, 이때 어릴 때부터 관심이 있었던 시각디자인 공부를 시작하게 됐어요.”
맏이라는 이유로 가족을 돌보다 보니 자신이 꿈꿨던 미래와는 점차 멀어지게 됐지만, 그는 시각디자이너라는 새로운 꿈을 안고 다시 서울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시각디자인이 주가 되는 기업에는 수없이 문을 두드려도 늘 고배를 마시기 일쑤였다. 무기력감에 빠지는 날이 반복됐지만,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처지였기에 그는 혼자서 견디고 스스로 일어나야 했다. 이후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디자인 경험을 쌓고,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기획자로서의 역량도 함께 길러갔다. 그렇게 백수나 다름없는 프리랜서 생활을 이어가던 어느 날, 한 통의 연락이 왔다. 밀양소통협력센터에서 협력매니저로 함께 일해볼 생각이 없냐는 제안이었다.
“서울에 있으면서 밀양소통협력센터의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센터 관계자분이 그때의 연을 잊지 않고 연락을 주셨던 거 같아요. 마땅히 일이 없는 상황에서 디자이너로 일을 해보자는 제안이 오니까 감사한 마음이 컸죠. 이때 든 생각이 서울이나 밀양이나 돈을 못 벌기는 마찬가지인데 나를 찾아주는 곳으로 가는 게 맞겠다 싶었죠.”

황선연씨가 커뮤니티 모임에서 만든 자료들./본인 제공/
힘든 기억이 가득했던 고향이 어쩌면 기회의 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지난해 8월 다시 밀양으로 돌아왔다. 이후 밀양소통협력센터에서 6개월간 협력매니저로 일하며 디자이너로서 경력을 쌓았고, 현재는 계약이 만료돼 디자인 외주 작업과 드로잉 수업을 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곧 자신의 공간을 열어 개인 작업실과 지역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할 생각이라는 그. 해맑게 웃으며 자신의 계획을 말하는 모습을 보면 어쩌면 그의 이번 귀향의 마침표는 떠남이 아닌, 머무름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황선연씨가 커뮤니티 모임에서 만든 자료들./본인 제공/
“밀양은 항상 가족을 돌보러 오는 곳이었지만, 이번에는 돌아온 이유도 마음가짐도 많이 달라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돌아왔고, 또 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크기도 해요. 일을 하면서 마음이 맞는 동료들을 만난 것도 큰 이유이기도 하고요. 고향은 마음의 안식처라고 하잖아요? 지금은 밀양이 제법 고향처럼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웃음)”
마음 둘 곳 없던 고향에서 새로운 희망을 품고 뿌리를 내딛기 시작한 선연씨. 그에게 또 다른 꿈이 있는지 물었다.
“인생을 살면서 느낀 건 평범하게 사는 게 생각보다 힘들다는 거였어요. 제 나이에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데 저 같은 경우는 일찍이 어른들이 해야 하는 일을 맡아서 하다 보니까 혼란이 많이 왔었어요. 이런 과정들을 겪으면서 무난하고 무탈하게 사는 게 최고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평생의 소원은 한량인데 이 꿈은 이미 물 건너간 것 같고, 그냥 돈을 많이 벌지 못해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

황선연씨/성승건 기자/
◇밀양시 청년정책= 밀양시는 지역 청년들의 안정적인 정착과 청년인구 유입을 위해 일자리, 주거, 복지, 참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청년 맞춤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주요 사업으로는 청년들의 지역 정착을 돕기 위해 △청년 일자리장려금 지원 △청년 창업가 임차료 및 창업 지원 △청년 농업인 육성(스마트팜 청년창업보육)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스마트팜 전문교육을 마친 청년농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한 임대형 스마트팜 확장, 청년 소규모 스마트팜 지원을 통해 농업의 현대화에 힘쓰고 있다.
또한 청년과 신혼부부의 주거 지원을 위해 △신혼부부 주거구입 대출이자 지원 △다자녀가구 전세자금 대출이자 지원 △청년 월세를 지원하고 있으며, 청년의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결혼장려금 △출산장려금 △밀양형 아이키움 배움터 △ 밀양 다봄센터 개소 등 양질의 돌봄과 배움을 제공하고 있다.
이밖에도 청년들의 목소리와 의견을 듣고 이들이 직접 지역 문제 해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청년정책위원회 운영 △밀양시청년정책협의체 운영 △청년동아리 활동(15개팀) 지원 △청년통합플랫폼(밀양미래청년) 등 다양한 청년정책 네트워크도 운영 중이다.
안병구 밀양시장은 “실효성 있는 청년정책 발굴과 지원을 통해 안정된 생활 기반 마련과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청년들이 참여 기회를 보장받고 주도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기 위한 장기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김영현 기자 kimgija@kn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