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 다르게 살아온 우리… 닮음, 다를 게 없는 우리 삶

경남도립미술관 기획전 깊이 보기

기사입력 : 2025-03-17 20:44:10

정현종 시 ‘방문객’ 구절 인용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展
지역성·이주의 삶 다뤄
만남 등 총 4개 섹션 구성
14개 언어, 통역 QR로 제공

도내 거주 이주민 등 참여
마산 여성 노동자의 삶부터
경남 이주 100년 역사까지
‘다르지만 함께하는 삶’ 담아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는 것,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바뀌는 것, 삶이 달라지는 것. ‘이주’라는 것은 그렇기에 두렵고 또 설레는 일. 우리는 자의에, 혹은 타의에 의해 이주하고 또 이주한 사람들을 겪는다. 낯섦과 낯섦이 만나는 지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경험하고, 어떤 내일을 바라봐야 할까. 경남도립미술관의 올해 첫 기획전시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에서 그 답을 찾는다.

이노우에 리에 作 ‘비가 되기 전의 말들’.
이노우에 리에 作 ‘비가 되기 전의 말들’.

◇실로 어마어마한 개막= ‘사람이 온다는 건/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그는/그의 과거와/현재와/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도립미술관의 전시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는 정현종의 시 ‘방문객’의 한 구절에서 가져왔다. 전시는 국경을 넘어 삶의 거주지를 이동하는 ‘이주’와 그를 둘러싼 삶을 주로 다루고 있다. 미술관 1, 2층에서 △만남 △지금 여기 △혼란 그 후 △함께하는 삶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에는 7명의 작가를 포함, 지역 이주민들이 참여한다. 이제까지 국내에서 동주제로 다양한 전시가 진행됐지만, 실제 이주민이 전시에 참여한 것은 경남도립미술관의 이번 전시가 처음이다. 연속되는 이주 속에서도 모두가 함께해야 한다는 전시의 메시지를 전시 구성, 과정, 방법 등 전반에서 깔아놓기 위한 취지다.

실제로 전시는 ‘한국인 관람객’만을 한정하지 않는다. 전시의 취지가 담긴 서문은 네팔어, 뱅골어, 일본어, 따갈로그어, 스리랑카어, 중국어 등 14개 언어로 통역돼 QR로 제공되고 있다. 통역은 지역에 살아가고 있는 14명의 이주민이 담당했다. 이들은 각자의 언어로 자신의 가족과 친구에게 전시를 소개한다. 이들 이주민은 전시 메인 이미지에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를 각자의 언어로 통역해 손글씨로 적어 놓았다.

전시 관람에서도 최대한 시각적이고 직관적인, 감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구성이 이뤄졌다. 각국의 전시 서문의 말미에서도 ‘관객의 느끼는 대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는 말이 덧붙여졌다. 이런 전시의 주제성은 지난 13일 오후 도립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개막식에도 드러났다. 한국인으로만 가득했던 이전과 달리 저마다의 문화를 가진 다양한 이주민들이 함께 했다. 이날 파키스탄에서 온 압둘 자바르 베이그씨는 축사를 통해 “한국으로 와 이주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아주 의미 있는 전시다. 이주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전시가 우리 이주민들에게 큰 힘이 된다”며 “수많은 이주민이 한국에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들의 삶에 큰 힘이 될 수 있도록 관심과 소통을 부탁드린다”고 얘기했다.

전시를 기획한 박지영 학예연구사는 “경남의 지역성, 이주와 그 삶을 다루고자 이주민과 관계자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직도 우리 사회에 소통이 부재해 낯선 장벽들이 있다고 느낀다”며 “앞으로 많은 관객들이 전시를 함께 하면서 이주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다름과 다름이 만난다는 것= 1층 전시실에 앞에 ‘여는 작품’이 보인다. 도립미술관의 소장품인 박생광의 ‘목어와 나비’다. 박생광 또한 17세의 나이로 일본으로 넘어가 광복 전까지 미술 공부를 했던 이주민이었다. 물이 없는 법당에 목어(木魚)가 서 있다. 그 사이 날아든 검은 나비가 법당의 문틀에 몸을 뉘인다. 계획치 못한 만남, 생경한 낯섦과 낯섦의 동행이다. 작품은 ‘이주’의 풍경을 알리며 전시를 연다.

첫 번째 섹션인 ‘만남’에서는 이주한 이들의 감정을 마주한다. 그것은 새로움에 대한 경이, 낯선 문화에 대한 탐구, 동떨어진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소외감과 두려움이기도 하다. 재한프랑스인인 헤미 클멘세비츠 작가는 사진과 액자, 스피커 등으로 구성된 ‘동서학’을 선보인다. 사진에는 ‘티타임’, ‘칵테일’, ‘주니어’처럼 외국어를 한글로 표기한 간판 등이 박제돼 있다. 한가운데 설치된 스피커에는 동학농민운동에서 쓰였던 행진곡이 풍화된 음질로 들려온다.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일어났던 운동의 행진곡과 현재는 일상처럼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외국어 간판이 상충한다.

헤미 클멘세비츠 作 ‘동서학’.
헤미 클멘세비츠 作 ‘동서학’.

이연숙 작가의 설치물은 검은 아크릴 바닥 위로 하얀 깃털을 올려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이 작가는 2013년 호주의 전통문화가 유지되는 원주민들의 삶을 체험했다. 그들의 독특한 춤과 노래, 신성시하던 깃털의 경험을 그대로 옮겨온 작품이다. 작가가 느낀 낯선 에너지를 향한 경의가 느껴진다. 전시 맨 안쪽에는 싱글채널비디오가 틀어져 있다. ‘진달래색’ 비닐이 날아와 한적한 거리를 헤맨다. 자유롭고 높게 날진 못하고 콘크리트 바닥에 몸을 부딪히며 낯선 거리를 계속 배회한다. 하차연 작가의 ‘캐롤라의 여정’이다. 마산이 고향인 하 작가는 오랜 세월 프랑스와 독일을 오가며 살았다. 2006년 겨울 파리 생마르탱 운하에서 만난 비닐을 만나며 작품이 탄생했다. 분홍색에 푸른 끼가 도는 비닐의 색은 자신의 고향인 마산의 진달래꽃과 닮아 있었다.

이연숙 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연숙 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하 작가는 “파리에 살면서 이주한 이들을 만나며 내가 느끼는 것들이 개인이나 소수의 문제가 아닌 국제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나와 유럽에 온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이어왔다”며 “비닐은 통상 공중을 날아다니는데, 그러지 못하고 땅을 기어 다니는 모습이 땅에 애착을 가진 것 같았다. 거기에 여성성을 가진, 나와 같은 상황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주의 삶= 2층 전시실에서는 두 번째 섹션 ‘지금 여기’가 전개된다. 전시실 벽면에는 100여년간 경남과 이주에 대한 아카이브가 시각적으로 정리된다. 1864년, 한인의 최초 합법적 해외 이주가 이뤄진 이래 한인은 러시아, 하와이 등으로 이주했다. 새로운 기회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인해. 특히 1910년에서 1924년 사이 조선이나 일본의 이민 1세대들이 신부의 사진만 보고 혼인을 한 ‘사진신부’가 있었는데, 이들 사진신부의 많은 수가 경상권에 집중돼 있었다. 일제강점기 이후로 일본으로 어쩔 수 없는 이주를 한 이들도 있었고, 그로 인해 1945년 마산에는 귀한동포촌(하모니카촌)이 형성되기도 했다.

6·25전쟁 이후 상황은 급변한다. 한국의 산업화와 발전으로 외국인 근로자들이 공장과 농촌에 들어오고 중매를 통해 한국인과 결혼하는 이주여성이 늘어났다. 과거 한인들이 그러했듯이. 그 속에서 여러 차별들이 생겨났다. 아카이브의 끝에는 도립미술관의 소장품인 채준 작품 ‘그들은 변하지 않았다’가 위치한다. 수미다전기 일본 본사 앞에서 교섭 투쟁을 전개했던 마산수출자유지역의 여성노동자를 기록한 작품이다. 주먹을 높이 올린 채 항의하는 여성의 모습은 이주민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이들, 싸워 나갈 미래를 대변한다. 전시실에는 또 다른 아카이브 ‘지금 여기 살고 있습니다’가 있다. 6개의 채널로, 6개국에서 온 경남 이주민 7인의 이야기가 송출된다. 영상은 각 4분에서 10분가량이다. 언어와 문화가 달라서 상황에 따라 불확실한 현재와 미래를 살고 있고, 그럼에도 그 속에서 평범한 삶의 행복을 누린다. 아이들과 일상을 보내고 부모님과 여행을 떠난다. 우리와 다를 것 없는 모습이다. 전시실 상단에는 한지로 만든 천이 설치돼 있다. 창원에서 활동하는 이노우에 리에 작가의 ‘비가 되기 전의 말들’이다. 결혼이주자인 작가는 자신의 주변인들과 함께 바느질을 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천을 꿰매 작품을 만들었다. 작품에 이용된 ‘꿰맨다’는 행위는 주요한 의미로 다가온다. 작품을 만들며 적었던 일기와 같은 동명의 책에는 일본인이자 결혼이주민인 자신이 느끼는 감정, 타인과의 대화를 위해 꿰매지는 상처, 사람과 연결되는 사람의 얘기를 담았다.

송성진 作 ‘1평조차’.
송성진 作 ‘1평조차’.

◇함께를 위해 나아가다= 3번째 섹션 ‘혼란 그 후’에서는 공존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담는다. 송성진 작가는 ‘1평조차’ 연작을 선보였다. 작품은 1평도 되지 않는 작은 집이다. 2층 전시실에는 조각으로 해체된 집들의 파편이 송 작가의 영상물과 함께 전시되고 있다. 도립미술관 외부에서는 완전한 모습의 작품을 볼 수 있다. ‘1평조차’는 송 작가가 방글라데시 난민촌에서 경험한 것들을 옮겨놓은 작품이다. 바다까지 밀려나 물가에 지은 이들의 집은 늘 쓸려가거나 파손된다. 작품 역시 전시될 때마다 바닷가에 설치되며, 자연에 의해 반복적으로 사라지고 부서지는 과정을 거친다.

상단에서 반투명한 실크천들이 늘어져 있는 작품은 제럴딘 하비에르의 ‘두 명의 프리다’다. 작가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지역민과 함께 작품을 만들었다. ‘프리다 칼로’를 동경한 그는 원작 ‘두 명의 프리다’에 착안, 작품을 통해 ‘또 다른 나’에게 치유받고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자 했다.

제럴딘 하비에르 作 ‘두 명의 프리다’.
제럴딘 하비에르 作 ‘두 명의 프리다’.

야마우치 테루에 작가의 작품 ‘Surrender’는 영상과 회화 등 3개로 이뤄져 있다. 지난해 광주에 머물며 지역민과 소통해 만든 작업물로, 민주화운동에 대한 이야기, 일본의 제국주의에 대한 이야기 등을 작품으로 얘기했다. 작품에는 한자 ‘빛 광(光)’이 연속해서 떠오른다. 광주의 ‘광’이기도, 지역민들이 이야기한 ‘희망’의 이미지에서 착안한 키워드이기도 하다.

전시를 마치며 ‘닫는 작품’은 도립미술관 소장품인 이우환의 ‘조응’이다. ‘조응 (照應)’이라는 제목 자체가 전시의 주제를 관통한다. 우리는 모두 다른 모습이지만 함께 삶을 살아간다. 함께하는 삶이란 결국 어떤 것일까. 4번째 섹션이자 참여 전시인 ‘함께하는 삶’에 어느 아이가 적은 것으로 마무리한다. “같이 하면 그냥 더욱 재밌어지고 더 친해질 수 있어요.” 전시는 6월 15일까지 계속된다.

4번째 섹션 참여 전시인 ‘함께하는 삶’에 붙은 한 아이의 작품.
4번째 섹션 참여 전시인 ‘함께하는 삶’에 붙은 한 아이의 작품.

글·사진= 어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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