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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완성의 순간 사라져가는 아름다움- 김요섭(‘아름다움이 너를 구원할 때’ 저자)

기사입력 : 2024-06-13 19:35:31

‘불꽃놀이는 예술의 완전한 형태다. 완성의 순간 사라져가기 때문이다.’ -아도르노

아름다움은 완성의 순간 멀어져 간다. 왜 그 자리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사라져 가는 걸까? 아름다움은 소유되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자리에 고정되거나 정주하는 것은 그 형태나 구조가 파악되기 쉽다. 따라서 인식하려는 이에게 충분히 해석될 여지를 제공한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우리의 편협한 생각으로 환원되기를 거부하며, 격렬히 멀어지려 할 뿐이다. 아도르노의 문장처럼, 보는 이의 눈앞에서 불꽃놀이처럼 사라져가고 만다. 모든 과정은 급속하게 진행되기에 인식으로 완벽히 파악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문장을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 ‘다 이해할 수 없기에 아름답다’라고 말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할 때 모든 걸 다 알기에 사랑하는 건 아니다. 그 사람의 어떤 자태가 매혹적이라든지, 말투가 사랑스럽다든지, 자신에게 먼저 다가와 줬다든지, 뭔가 파편적이고 부분적인 이유로 상대를 사랑한다고 느낀다. 즉, 부분을 전부인 양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의 이해에 약간의 몰이해가 섞여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잘 모르기에 이해했다고 확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 아름다움, 사랑의 공통점을 이렇게 한번 써보면 어떨까? ‘이해와 몰이해가 겹쳐있는 어떤 중첩 상태’라고 말이다. 기이한 겹침은 쉽게 이해되지 않으며, 모호하게 느껴진다. 일반적 논리를 넘어서는 것은 순식간에 사랑에 빠지는 일처럼 매혹적이기도 하다. 영원처럼 느껴지며 동시에 찰나인, 이상한 시간성 안에 비로소 아름다움, 사랑은 잠시 머문다. 그들의 주된 속성이 파악되길 거부하고 사라져 버리는 것이니 말이다.

이를 욕망의 차원으로 살펴볼 수도 있다. 우리의 인식으로 다 이해되지 않기에 매력적이고, 더 알고 싶은 욕구를 자극할 수 있으니 말이다. ‘바타유’라는 철학자는 ‘금기가 위반을 부른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즉, 내밀한 욕망은 금기라는 불가능과 단짝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도달 불가능하며, 소유될 수 없기에 매력적인 그것. 우리의 욕망이 이처럼 진정한 사랑과 아름다움을 향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김요섭(‘아름다움이 너를 구원할 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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