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창원 출신 독립운동가 이교재 선생, 광복 목표를 지역에서 실천한 인물”

유장근 경남대 명예교수, 세미나서 주장

기사입력 : 2019-03-28 07:00:00
메인이미지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올해, 창원 진전 출신 독립운동가 이교재(李敎載·1887년 7월~1933년 2월·사진) 선생은 “임정이 추구하는 광복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지역이라는 맥락 속에서 실천했던 인물”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27일 창원 도시재생지원센터 지하 교육관에서 열린 ‘인문마산 3월 세미나’에서 ‘창원 진전 출신 이교재의 독립운동 연구’를 주제로 발제한 유장근 경남대학교 역사학과 명예교수는 “이교재 선생의 본거지이자 초기 활동무대였던 경남과 상해 망명 이후 임정에서 중책을 맡아 두 지역을 연계하면서 독립운동에 헌신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이교재 선생은 창원군 진전면 오서리 출신으로, 1919년 3·1운동 당시 진주에서 독립선언문을 배포하다가 체포돼 옥고를 치른 뒤 중국 상해로 망명했다. 임정에 가담해 활동하다 통영군자금 모금 사건으로 체포돼 옥고를 치렀으며 출옥 이후에는 임정과 연락을 취하던 보고서가 발각돼 3번째 수감되기도 했다. 부산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고문 여독으로 순국했다. 정부는 지난 1963년 이 선생의 공훈을 인정해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유 교수는 “그가 사망한 뒤 그의 집이 경매에 넘어갔을 정도로 경제사정이 극히 어려웠다”며 “이러한 역경에도 불구하고 이교재 선생의 독립운동은 특별히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했다. 유 교수는 지역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활동하던 이교재 선생이 상해 망명 이후에도 군자금을 모금하기 위해 국내로 들어와 이 같은 활동을 벌인 것은 평소 지역에서 이 선생이 닦아놓은 네트워크가 있었기 때문으로 추측했다.

또한 유 교수는 이교재 선생이 1930년대 국내로 입국하면서 임정에서 가지고 온 9건의 문건을 봐도, 그가 국내 임정 지지세력 및 독립운동 네트워크가 광범위했으며 임정과 경남지역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해당 문건들은 이교재 선생을 경상남북도 상주대표로 임명하는 위임장, 그리고 국내 유력자들에게 보낼 추조문·특발문·편지·격발문 등이다.

유 교수는 “이러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연구는 현재까지 거의 없는 실정이다”며 “진주에서의 3·1운동이나 통영에서의 군자금 모금, 그리고 임정에서 발행한 9개 문건을 갖고 국내로 들어온 것은 이교재 선생이 이들 지역에서 확보한 인력망 덕분에 가능하였으니, 그의 독립운동에는 드러난 것보다 드러나지 않은 활동이나 업적이 더 많았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대훈 기자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안대훈 기자의 다른 기사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