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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ON- 김시탁의 전원산책] (5) 마산 진북면 편백림 금산임도

林과 함께 걸어요… 편백을 벗삼아… 발길 닿는 곳으路

기사입력 : 2024-05-23 21:37:26

묘법사 철문서 평지산·베틀산 잇는 길이 8㎞ 임도
구불구불한 편백숲 길 걷다 보면 방전된 삶 충전
진한 피톤치드 향 가득… 트레킹·산책 안성맞춤
처음 발길한 사람은 감탄·다시 찾은 사람은 감동

하늘에서 본 마산합포구 진북면 편백림 금산임도./김시탁 시인/
하늘에서 본 마산합포구 진북면 편백림 금산임도./김시탁 시인/

퍼질러 앉는 일상이나 구부러진 생각을 반듯하게 일으켜 세워 희망을 기립시키기 좋은 길이 있다.

직립의 시간 속에 직립 보행하기 좋은 편백숲 임도가 있다.

햇살도 뱃살을 빼야 드나들고 바람도 맨발로 발꿈치를 들고 들어설 수 있는 곳

8㎞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임도를 걷다 보면 방전된 삶이 팽팽하게 충전된다.

피톤치드 향에 맡겨놓은 하루가 풍성한 생기와 함께 돌아오는 곳.

면역된 시간의 싱싱한 근육이 보고 싶은 사람은 지금 바로 그곳 편백림으로 가라.

마산합포구 진북면 금산리 치유의 숲 철문 앞에서 신분증 대신 건조한 가슴만 들이밀면 들어설 수 있는 곳이다.



◇시인의 마을 ‘금산에 살리라’

마산합포구 진북면 금산리 편백숲을 향해 길을 나섰다. 마산에서 통영 간 국도를 달리다가 갈산삼거리에서 내려 영학리 쪽으로 직진하면 금산리 금산마을이 나온다. 그 마을 뒷산이 온통 편백림인데 그 편백림 아랫마을에 서예와 서각 등 다양한 재능을 겸비한 일죽(一竹) 김병수 시인이 살고 있다. 한 이불 덮고 사는 사모님도 야생화 기르기부터 분재 가꾸기, 다예 등에 조예가 깊은 분이신데 두 분은 늘 함께 다니기를 좋아해서 금실 좋기로도 소문이 자자하다. 기왕 길을 나선 김에 시인의 집에 잠시 들러 두 분이 깨를 볶으며 살아가는 비결을 엿보고 싶고 차 한잔 나누고 싶은 마음도 있어 핸들을 그곳으로 돌렸다.

금산마을 입구로 들어서자 버스 정류장이 있고 맞은편 야트막한 언덕에 시인의 시비가 한눈에 들어왔다. 차를 세우고 시비에 적힌 시 ‘금산에 살리라’를 읽고 사진도 한 컷 찍었다.

‘금산에 살리라’ 시가 적혀 있는 시비.
‘금산에 살리라’ 시가 적혀 있는 시비.

시인의 집 앞에 차를 대고 들어서니 다행히 두 분이 있어 불시에 들이닥친 불청객을 반갑게 맞아주셨다. 시인의 집은 아담하고 정겹고 운치 있었는데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두 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잔디 마당가와 돌계단에는 형형색색의 야생화가 꽃을 피우고 향기를 풍기며 수줍은 듯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한창 만개한 철쭉은 분홍빛이 짙고 선명했다. 돌담 위 화단을 독차지한 석류나무는 바람의 손을 빌려 햇살 수제비를 빗었다. 솜씨 좋은 이발사가 손질한 두발 같은 녹차나무를 울타리 삼아 둥근 대형 자연석에 앉아 마시는 차는 맛이 일품이었다. 배와 도라지와 수세미를 넣어 달였다는데 몸에도 좋다고 했다. 평소 시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필자는 막걸리 마시듯 벌컥벌컥 두 잔의 차를 들이켰다. 서북산 자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학동저수지의 물기를 묻혀와 시원하고 상쾌했다. 여름휴가 때 미리 전화하고 오면 오리백숙을 해주겠다는 시인의 말을 따뜻하게 받으며 집을 나와 당초 목적지인 편백림으로 향했다.

◇편백림 금산임도

시인의 집에서 좋은 차를 얻어 마셨더니 힘이 절로 나서 편백림 향하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금산마을 후미 오르막길로 접어들어 처음 만나는 편백골 캠핑장을 지나 공용주차장에 차를 댔다. 주차장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천연계곡 물소리와 함께 계곡을 건너는 다리를 기점으로 묘법사 가는 길과 편백림으로 향하는 길로 갈라진다. 오른쪽이 묘법사 진입로인데 ‘이 길을 걸으면 당신의 꿈이 시작됩니다’라는 글귀가 적힌 목판이 세워져 있다. 묘법사를 지나 조금 올라가면 편백숲 입구에 철문이 나온다. 철문은 차량의 출입을 통제한다는 안내문과 함께 자물쇠로 채워져 있고 철문 양옆으로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큼 공간이 있는데 그곳을 통해 숲으로 들어간다.

묘법사 입구.
묘법사 입구.

이곳 일원에 조성된 약 35만 평(115만7000여㎡)의 편백림은 사유림(17만여 평)과 시유림(18만여 평)이 거의 반반이라고 했다. 사유림은 개인 소유로 개방하지 않다가 10년 전부터 일반인에게 임도를 개방하고 있어 아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숲으로 들어서자마자 진한 피톤치드 향이 뿜어져 나왔다. 버섯농장에는 버섯 종균 처리된 나무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잘린 채 무더기로 세워졌거나 눕혀져 있었다. 버섯 농장 쪽으로 난 임도 옆의 작은 가건물은 요양 용도의 시설 같았다.

임도 옆 작은 가건물.
임도 옆 작은 가건물.

다시 오던 길로 올라가 논샘골 공원을 지나자 갈림길이 나오는데 베틀산 갈림길이라고 했다. 지도를 보니 왼쪽으로 가면 평지산 오른쪽은 베틀산이다. 어느 곳을 택하든 베틀산과 평지산으로 연결된 임도를 두루 걸을 수 있다. 등산 코스로 평지산으로 향하면 전망바위와 철탑을 거쳐 해발 약 600m의 평지산 정상목에 닿는다. 그 길로 베틀산 정상석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 하산하면 베틀산 갈림길에서 만나게 된다. 이렇게 묘법사 철문에서 출발해 평지산과 베틀산을 잇는 임도는 총길이가 약 8㎞에 달한다.

평일이라 숲을 찾은 사람들이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그들은 등산복 차림이었으나 발걸음의 속도로 보아 등산을 목적으로 임도를 택한 사람들 같지는 않았다. 등산을 하려는 사람들은 정상을 향한 발걸음이 분주하다. 숲길을 걸으며 말이 많거나 주변으로 시선이 분산되고 그늘만 있으면 퍼질러 앉아 쉬려는 사람들은 등산보다는 걷기를 좋아하며 지친 일상을 달래려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숲과 내통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진한 피톤치드 향이 뿜어져 나오는 편백림 금산임도.
진한 피톤치드 향이 뿜어져 나오는 편백림 금산임도.

◇햇살도 뱃살을 빼고 바람도 맨발로만 들어설 수 있는 편백림

편백나무 숲은 직경 20~30㎝는 될 법한 편백나무들이 집단적으로 빽빽하게 서 있다. 마치 훈련 잘된 장신의 병사들이 부동자세로 서서 열병식을 하는 듯 장엄하다. 정연한 질서 속에 한 치 흐트러짐 없는 직립의 시간은 자연스럽게 희망을 기립시킨다. 임도는 직선의 군림 앞에 오직 예외인 곡선으로 길을 내었다. 잘 조성된 탐방로 양옆으로 편백나무 숲이 울창하게 우거진 채 특유의 방향성 물질을 내뿜었다. 제자리에 굳건히 서서 자리를 이탈하지 않는 편백의 경호를 받으며 걷는 일은 개운하고 유쾌하고 즐거웠다. 가벼운 트레킹 또는 산책 삼아 다니기에도 아주 좋은 길이었다. 어떤 세찬 바람에도 끄떡없이 당당하게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은 편백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자신감이 충만된다. 한 무리의 산악자전거 행렬이 지나가고 모퉁이를 돌자 빼곡한 숲 속에서 하늘이 열리며 일부 활엽수와 찔레나무 넝쿨 꽃무덤이 나타났다. 찔레 넝쿨 가에 여인들이 퍼질러 앉아 채취한 산나물을 다듬고 있었다. 임산물 채취가 금지된 곳이지만 그들은 산나물을 다듬는 손놀림이 저글링보다 빨랐다. 포장된 임도가 끝나고 흙길이 나타나자 흙 길가로 자주색 엉겅퀴 꽃이 멍든 상처처럼 피었다. 숲속 임도가 열어놓은 파란 하늘 끝에 편백의 정수리가 닿았다. 하얀 손수건만 한 구름이 찢긴 채 걸려 있었다.

햇살도 뱃살을 빼야 드나들 수 있고 바람도 발뒤꿈치를 들고 맨발로만 기어들 수 있는 편백림 이곳은 처음 발길한 사람들은 감탄을 자아내고 다시 찾은 사람들도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치유의 숲

편백나무는 측백나무와 함께 구한말 일본에서 들어와 ‘히노키’라는 일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며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측백나무와 유사하게 생겼다. 잎의 앞면과 뒷면의 색깔과 모양이 같고 만졌을 때 부드러운 촉감이 들면 측백, 잎끝이 둔한 둥근 모양이면서 Y자 모양의 기공선이 있으면 편백이다. 또한 열매로도 구분되는데 측백은 끝이 뾰족하고 별사탕 같은 열매가 열리는 반면 편백은 바람이 팽팽한 축구공처럼 둥글둥글한 열매가 열린다. 편백나무는 정유분을 많이 가지고 있어 식물이 분비하는 살균 물질이라는 피톤치드를 원목 중에서는 가장 많은 양을 방출한다. 이것은 과학적으로도 증명되고 검증되어 학계에 보고된 사실이다.

전남 장성의 축령산이 치유의 숲으로 자리매김한 것도 편백이 내뿜는 피톤치드 때문이다.

금산 편백림 또한 충분히 치유의 숲으로 부각될 수도 있겠으나 사유지와 진입로 등 인프라 부족으로 현 상태에 머무르고 있는 듯해 안타깝다. 그러나 완벽한 인프라가 구축되고 유명세로 전국에서 사람들이 대거 몰려오지 않아도 이미 금산 편백림은 치유의 숲이나 다를 게 없다.

오히려 유명세를 타지 않은 탓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으니 숲의 보존에도 도움이 되고 조용하고 여유 있게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 특히 피톤치드 향이 가장 많이 발산되는 여름철에는 숲길만 걸어도 항암효과와 살균효과 그리고 면역성 증진을 꾀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치유의 숲이 어디에 있겠는가. 다만 편백림 임도 중간중간에 보행 중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정자나 나무 벤치 같은 시설이 전무해서 아쉽다. 더구나 공용화장실 하나 없는 것은 치명적이다. 시유지든 사유지든 개방한 상태에서는 기본적인 시설만이라도 갖추어진다면 숲을 찾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숲길을 걷는 데 걸리는 시간이 있으니 생리적인 현상을 해결할 마땅한 방도가 없다면 난감하지 않겠는가. 항암효과도 좋지만 불편한 배를 움켜잡고 식은땀을 흘리며 인내의 언덕을 기어오르는 불미스러운 일은 없어야 하지 않는가.

금산임도로 향하는 길에 들른 김병수 시인의 집.
금산임도로 향하는 길에 들른 김병수 시인의 집.

◇목림삼몽(木林森夢)

나무는 나무끼리 모여 숲이 되는 꿈을 꾼다. 실개천이 강을 만나 바다로 가는 꿈과 같다. 꿈이 없는 나무는 메마르고 뒤틀려서 깊게 뿌리를 뻗지 못하니 소슬바람에도 흔들린다. 철사로 감고 가위질한 나무는 사람의 꿈이지 나무의 꿈이 아니다. 나무의 꿈은 신선하고 원대하고 진취적이다. 나무는 하늘로 오르지만 오를 만큼 오르면 스스로 멈출 줄 안다. 새들을 부르기 위해 날마다 잔가지를 늘리고 사람을 쉬도록 그늘을 만드니 부지런하다. 옆구리가 가려우면 바람의 손을 빌릴 뿐 제자리를 이탈하지 않고 운명처럼 서서 시린 관절을 접지 않는다. 나무의 꿈이 이루어져 숲이 되면 녹음으로 산소 공장을 가동해 세상을 정화시킨다. 나무는 죽어서야 비로소 몸을 눕힌다. 온몸이 기계톱에 댕강댕강 잘려 죽어가면서도 비명을 지르는 건 기계톱이지 나무가 아니다. 나무는 쓰러져 정수리가 땅바닥에 닿을 때 가지와 함께 부러지며 단 한번 단말마의 울음소리를 낸다. 그 소리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는 나무의 울음소리다. 나무는 죽어서도 재목으로 쓰이고 한 몸 불살라 먹거리를 익혀주거나 찬 것들의 몸을 데워준다. 재가 되어서도 다시 자랄 나무들의 밑거름이 되기 위해 넉넉하게 썩은 미소로 눕는다. 나무는 궁극에 닿는 희생조차 거룩하다. 그 나무 중에 편백은 사람의 병까지 치유하는 의사 같은 존재다. 곧고 견고하고 줄기차고 당당하고 기개 있고 거침없어 위대하다. 그러니 편백나무 숲에서 함부로 담배 피워 물고 편백의 꿈을 오염시키지 말라. 밑동에 방뇨하지 말고 등걸에 못 박거나 칼질해서 이름 새기지 말라. 함부로 베어 땔감도 하지 말라. 슬프고 아프고 속상하고 서럽다.

김시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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