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서 변한시대 의례용 칠기 대거 출토

국가유산청, 옻칠제기 15점 등 공개

항아리·주걱 등 생활 유물도 나와

변한서 금관가야 중심지 성장 방증

기사입력 : 2025-03-25 08:38:20
김해 봉황동 유적지 전경. 붉은 선 안이 이번 발굴조사 지역./국가유산청/
김해 봉황동 유적지 전경. 붉은 선 안이 이번 발굴조사 지역./국가유산청/
김해 봉황동 유적에서 출토된 의례용 유물과 생활유물.
김해 봉황동 유적에서 출토된 의례용 유물과 생활유물.

금관가야 왕궁터로 추정되는 김해 봉황동 유적 일대에서 1세기대 최고급 의례용 칠기를 포함한 생활유물이 대거 출토돼, 이 유적이 변한의 수장급 거처를 거쳐 금관가야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음이 확인됐다.

국가유산청은 금관가야 왕성의 실체 확인을 위해 실시 중인 ‘김해 봉황동 유적’ 제10차(2024년) 발굴조사에서 1세기대 변한의 최고 세력을 상징하는 최고급 의례용 옻칠 제기 15점을 확인해 24일 공개했다.

봉황동 유적에서 이런 형태의 칠기가 발견된 건 처음으로, 창원 다호리 유적과 경북 성주 예산리, 포항 성곡리에서도 발견됐지만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15점이 한 번에 나온 것도 이례적이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가야문화유산연구소가 발굴한 유물은 대규모 취락의 존재를 추정할 수 있는 유구와 함께 깊이 약 7㎝의 유기물층에서 확인됐다. 조사 구간은 약 109㎡(33평)의 비교적 좁은 공간인데, 1~4세기에 제작·사용된 최고급 옻칠 목기를 포함한 300여점의 목제품이 집중적으로 출토됐다.

옻칠 제기 15점은 바닥에 녹로(물레)를 고정한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초기 단계지만 그릇을 만들 때 돌려가며 작업하는 ‘회전 깎기’ 기술이 변한 시기부터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이 15점을 포함해 칼집형 칠기와 원통형 그릇, 뚜껑 등 총 30여점의 칠기와 항아리 및 새 모양 목제품, 주걱·그릇·잔 등의 생활용 목기류, 물레와 베틀로 추정되는 직기용 부속구, 농공구 등 다양한 생활유물도 함께 출토됐다. 점을 치는 용도로 쓰인 점뼈(卜骨), 소형 토제품도 확인돼 변한 시기 의례 관련 일면도 추정해 볼 수 있다.

최상위 위계 무덤의 부장품으로 알려졌던 옻칠 그릇이 생활유적에서 최다량 출토되는 등 이번 발굴 성과는 ‘김해 봉황동 유적’이 이미 1세기부터 독자적인 대규모 생활유적을 형성했으며, 변한의 수장급 거처에서 점차 성장해 금관가야의 중심지, 즉 왕궁지로 자리매김했음을 방증한다. 이종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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