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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회 경남보훈대상 수상자 공적] 값진 헌신·희생 감사합니다, 기억하겠습니다

기사입력 : 2024-06-17 10:10:40
원경호
원경호

▲장한 용사- 원경호씨(창원시 진해구)

월남전 중 양쪽다리 부상 상이 5급

충혼탑 각종 행사 때 사전준비 도맡아

원경호(77·창원시 진해구)씨는 지난 1968년 5월 입대해 월남전 파견 중 1970년 8월 적군의 수류탄에 양쪽다리 부상을 입고 그해 12월 상이 5급으로 제대했다. 그는 어려운 신체적 역경을 극복하고 1971년 진해의 한 회사에 취직해 사회 구성원으로 자립에 성공했다. 슬하의 1남 1녀도 국가유공자 자녀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교육해 약사와 검사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2004년 33년간의 회사 생활을 마무리하고 은퇴한 후 대한민국 상이군경회 진해지원 지도원이자 관리실장으로 위촉돼 현재까지 복리증진과 단체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특히 진해충혼탑에서의 신년 합동참배, 현충일, 국군의날, 경찰의날, 재진군장성 부대장 행사 등 각종 행사시 사전준비와 정화활동을 도맡아 하고 있다.

1985년부터 2010년까지 25년간 진해구 병암동 자율방범대원 등으로 활동하며 사회 전반에 걸쳐 봉사활동을 솔선수범해 타의 모범이 되고 있다.

원경호 씨는 “불편한 몸에도 사회 발전을 위해 힘썼다”며 “앞으로도 봉사의 마음으로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유공자 위상을 높여 1970년 인헌무공훈장, 1987년 국가보훈처장 표창 등을 수상했다.


이상덕
이상덕

▲장한 유족-이상덕씨(창원시 성산구)

아버지 6·25 때 전사해 기억은 없어

유족회 활동하며 보훈가족 사기 진작

이상덕(69·창원시 성산구)씨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부친 이종태씨는 6·25전쟁 당시 육군 일병으로 전사했다.

어린 시절 10대 후반의 어머니와 어렵게 생활하면서도 그는 삼미특수강에 취직해 30여년간 중견간부를 역임하며 근무했다.

그는 2010년부터 8년간은 전몰군경유자녀회 경남지부 사무국장으로, 2018년부터는 전몰군경유족회 경남지부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며 보훈 가족의 사기 진작과 안정적인 생활 정착에 이바지하고 있다.

그는 전몰군경 유족 명예수당 지급을 위한 경남도 조례 개정에 힘썼다. 또한 나라사랑 추모제, 6·25 참전자 무공훈장 찾아주기, 찾아가는 보훈 활동 등 다방면에서 활동했다.

또한 김해보훈병원 자원봉사 등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기도 하다. 그 공로로 지난 2020년 12월 육군참모총장 감사장과 2023년 6월 국가보훈부장관 표창 등을 수상했다.

그는 “6·25전쟁으로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아래에서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힘썼다”며 “이제는 같은 아픔 속에 어렵게 살고 있는 보훈 가족들에게 봉사하며 살고자 한다”고 말했다.


조정연
조정연

▲장한 미망인- 조정연씨(진주시 가좌동)

상이군경 1급 남편 만나 손발 되어줘

보훈가족 복지증진·봉사 활동 앞장

조정연(70·진주시 가좌동)씨는 7남매 중 넷째로 부모님의 사업 실패로 인해 늦은 나이에 야간 중학교를 다녔던 적이 있었다.

그는 등교 중 교통사고를 당해 화상의 후유증으로 1급 복합장애 판정을 받았지만, 살아난 것만으로 기적이라 여기며 감사한 마음으로 살았다.

주변 친척 소개로 상이군경 1급 정상수씨를 소개받았는데, 그가 군 복무 당시 부상을 입어 눈과 다리를 다친 탓에 혼자 도저히 생활할 수 없는 상황을 보고는 결혼을 결심해 자신이 남편의 손발이 되어줬다.

또 자녀도 낳아 훌륭히 키웠다. 직접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해 전문적으로 남편을 보살폈고 시간이 날 때는 봉사단체에 가입해 장애인 단체 봉사활동도 진행했다.

2019년 88세에 별세한 남편을 떠나보낸 이후로 대한민국전몰군경미망인 진주시지회에 가입해 보훈가족의 복지 증진에 기여하고 있다.

조씨는 국가유공자 유족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어려운 형편의 보훈가족의 일을 나의 일처럼 나서서 돕고 있고, 호국보훈의 달 행사 등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어 주변의 귀감이 되고 있다.


장경숙
장경숙

▲장한 아내-장경숙씨(통영시 봉평동)

남편 훈련 중 사고로 크게 부상입어

재활 간호 전념하며 시어머니 부양

장경숙(61·통영시 봉평동)씨는 29세에 남편 이상태씨를 만났다. 남편은 공상군경 1급으로, 1982년 군대에서 훈련 중 포 발사 사고가 발생해 제대 후에도 그 후유증으로 마비가 심해 걸음조차 불편한 상황이었다. 직장은 고사하고 일상생활조차 힘들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 남편을 살뜰히 챙기며 살았다. 아내인 장씨가 신경 쓴 일은 생활고를 극복하기 위해 허드렛일을 조금씩 하면서도 남편의 일상을 함께 하며 절망감에 빠지지 않도록 재활과 간호에 전념한 일이었다.

장씨는 92세의 시어머니를 모시고자 인근 아파트를 마련해 아침저녁으로 방문해 돌봐드리며 효도를 하고, 주변의 노인정도 자주 방문해 이웃 어르신들의 간식을 사다 드리는 등 어르신들에 대한 효를 실천했다.

그는 보훈단체에서 개최하는 행사나 지역사회의 나눔 행사에 남편과 자주 참석하면서 국가유공자 단체와 회원 간 친목 도모도 활발히 하고 있다.

이에 국가보훈시책에도 적극적으로 협조해 보훈 가족의 복지 증진에 기여했다.

또 지역사회 어려운 이웃을 위한 활동에도 자주 참석하며 적극적인 봉사로 주변에서 칭송이 자자하다.


박이주
박이주

▲특별 보훈- 박이주씨(창원시 진해구)

원산 상륙작전 참여 화랑무공훈장

6·25 참전기념비 건립 크게 이바지

박이주(93·창원시 진해구)씨는 원산앞바다 상륙작전에 참여한 공을 인정받아 1953년 4월 20일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2006년부터 6·25 참전유공자회 경남도지부에서 감사, 운영위원 등 임원으로 임무를 수행하면서 지회 및 지부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23년 1월 19일부터는 부지부장으로 회원들의 복지 향상과 권익보호를 위해 힘쓰고 있다.

박씨는 2006년 10월 12일 진해지역 참전기념비 건립추진위원으로 추대돼 6·25 참전기념비 건립에 크게 이바지했다. 2017년부터 경남도가 6·25 참전유공자에게 월 20만원의 참전 명예수당을 지급하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 그는 안보 및 보훈 활동에도 노력했다.

2011년부터 6·25전쟁 바로 알리기 교육에서 보조 강사로 일하며 18개교 4000여명을 대상으로 안보 교육을 실시했다. 특히 지역사회에 다양한 봉사활동을 통해 국가유공자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박씨는 분기별로 진행하는 진해지역 참전비 주변 환경정화활동과 거리질서 캠페인 등 지역사회 봉사활동을 통해 주변에 모범이 되고 있다. 1950년 12월 22일 춘천전투에서 사망한 박씨의 친형 박근주씨도 1954년 9월 30일 화랑무공훈장을 수상했다.


박태진
박태진

▲특별 보훈- 박태진씨(김해시 진영읍)

청룡부대 소속으로 월남전에 참전

고엽제전우회 가입해 회원 복리증진

박태진(75·김해시 진영읍)씨는 지난 1970년 해병대에 입대했다.

그는 1971년 6월 17일부터 1972년 2월 7일까지 청룡부대 소속으로 월남전에 참전했다.

박씨는 고엽제로 인해 2004년 9월 2일 7급 육종암 판정을 받고 현재 치료 중이다.

1999년 대한민국 고엽제전우회에 가입한 박씨는 30년 동안 생계유지로 택시운전업을 한 이력으로 1999년 경남지부 구급부장으로 활동하며 회원들의 신뢰를 얻어 2017년 5월부터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박씨는 지난 2009년 5월부터 현재까지 월 2~3회 고엽제환자 후송차량을 이용해 고엽제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회원들을 부산보훈병원이나 지정 병원으로 이송하는 등 회원 복리 증진에 힘쓰고 있다.

또 2012년부터 2020년까지 학교폭력예방활동 등 지역사회 봉사를 했고, 2010년부터 현재까지 창원시 동읍과 대산면, 북면 등 농촌 일손 돕기 활동에 참여했다.

2000년부터는 보훈병원과 위탁병원에 입원한 고엽제 및 일반 환자들을 대상으로 연 3회 위로 방문하고 위문품을 전달했다.

사회부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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