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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을 빛낸 경남의 거장들] (10) 임호

평생을 화폭에 담았다… 바다 그리고 고향 사랑

[경남신문·경남도립미술관 공동기획]

기사입력 : 2024-05-21 08:05:22

의령서 태어나 마산·부산 기반으로 지역화단 이끌어
1944년 조선미술전람회 입선하며 본격 작품 활동

1947년 경남미술연구회 만들어 미술인들과 결속
작고하던 해인 1974년까지 총 12회 개인전도 열어

강렬한 선묘와 색조·중후한 공간감 빛나는 화풍
30여년간 ‘달음산’ ‘불상’ ‘여인’ 등 대표작 남겨


“내가 좋아하는 것은 해변입니다. 이 지역 사람치고 해맑은 바다의 빛깔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파도 소리를 닮은 체질이 작품에 반영된다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중략) 자연인에게 풍토적 특성이 있듯이 예술인에게도 풍토적인 개성이 없을 수 없습니다.”

임호, 제목 미상, 연도 미상, 캔버스에 유채, 45.4x74.6㎝.
임호, 제목 미상, 연도 미상, 캔버스에 유채, 45.4x74.6㎝.

의령에서 태어난 임호(1918~1974, 본명 임채완)는 마산과 부산을 기반으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한 작가다. 특히 자신이 나고 자라 평생을 머물던 곳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지역화단의 결속과 기반을 다지기 위해 헌신적으로 활약하였다. 타고난 강직함과 호탕함을 가진 한편 따뜻하고 정이 많던 작가의 성향은 주변 미술인들과 함께 지역 미술계를 이끌 수 있었던 주요 동력이 되었다. 마산에서 교직 생활을 하던 당시인 1947년에는 경남미술연구회(이후 혁토사로 개칭)를 결성하고 경남 미술인들과 함께 동인전을 이어갔으며, 전쟁 당시에는 중부전선의 종군화가단으로 활동하며 다수의 전쟁기록화를 남겼다. 이후에도 토벽회, 흑마회 등 다양한 동인회에서 지역 미술인들과 함께 작품 활동을 이어가며 결속력을 다졌다. 작품 활동 외에도 미술협회 지부장, 예술총연합회 지부장 등을 역임하며 경남, 부산지방에서 숱한 미술 행사를 주도하고 참여한 바 있다.

1972년 출간되었던 김창협의 저서에 따르면 작가 임호는 ‘사변 전후로 지역 화단을 이끌어 온 주역’으로서 가장 전성기를 1950년대로 꼽으며 ‘법이 없어도 좋을 소시민’으로 ‘사석에서는 사랑과 회상의 소야곡을 부르는 멋을 풍기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렇듯 지역 미술계의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아끼지 않던 그는 주변 미술인과 제자들의 응원과 신임을 한 몸에 받았다고 한다.

작가로서의 임호와 작품 세계는 어떨까. 1940년대 초 오사카미술학교에서 수학한 작가는 귀국 전후 일본에서 주최하는 미술전람회에 참가하다가, 1944년 제23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의 입선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1955년 부산 미화당백화점에서의 첫 개인전에 이어 1960년대 이후부터는 작가로서 더욱 활발히 활동하였다고 한다. 작고하던 해인 1974년 부산탑미술관에서 마지막 개인전을 열기까지 총 12회의 개인전과 수많은 단체전에 참가하였다.

1950년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제목 미상’(이하 ‘작품1’로 표기)은 40년대 작품과 60년대 작품들 사이에서 여러 변화과정이 드러나는 과도기의 작품으로 볼 수 있다. 1940년대 인물 작품들이 주로 어두운 색조가 화면 전반을 차지하고 실내 풍경 속에 앉아 있는 여인(주로 부인이나 소녀의 모습)이 소재가 되었다면, ‘작품1’은 해변 풍경과 해녀가 등장한다. 특히 하늘과 여인의 의상 등에 주황과 밝은 색조의 푸른빛이 나타나는데 이는 이후 작품들에서 보이는 주요 특징과 소재이다. 또한 화면 전반에는 뭉툭하고 넓은 터치들이 전면으로 펼쳐져 있는데, 40년대 작품에서 보다 넓고 뭉개져 있던 터치에 비해 조금 더 분절된 터치들로 볼 수 있다. 이는 이후 더욱 촘촘하고 세밀한 터치로 변하게 된다. 이외에도 작가는 1960~1970년대에 걸쳐 주변 지역의 풍경을 담은 풍경화도 다수 남겼는데, 주로 원경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을 통해 나무, 하늘, 바다, 산 등의 소재가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달음산, 1960년대 추정, 캔버스에 유채, 30x58㎝.
달음산, 1960년대 추정, 캔버스에 유채, 30x58㎝.

‘달음산’ 역시 비슷한 시기인 1960년대 작품으로 추정되는데, 다른 풍경화들에 비해 비교적 좁게 배치된 하늘 아래 산과 들이 화면의 2/3 이상을 차지하는 구도가 특징이다. 특히 사실적이고 세밀한 표현이 배제되어 구도와 표현 방식에 있어 매우 특색 있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

불상, 1960년대, 캔버스에 유채, 45.8x45.8㎝.
불상, 1960년대, 캔버스에 유채, 45.8x45.8㎝.

1960년대 중후반부터는 불상이 등장하는 작품 역시 다수 제작하였는데, 이는 종교적 회화에도 관심을 가졌던 작가의 성향을 엿볼 수 있다. 이때 제작된 작품 ‘불상’은 중첩된 붓질로 표현된 불상과 차분한 톤의 단순한 배경이 돋보이는데 작가 특유의 표현 방식과 더불어 종교화로서의 중후함이 돋보인다. 이후 작가는 타계 직전까지 역시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왔는데, 작고하기 1년 전 제작된 작품 ‘여인’은 1960년대 세밀해졌던 터치들이 다시 규칙성을 잃고 뭉툭해진 배경 위로 나비, 백합, 무지개 등 새로운 소재들이 등장하는데, 이는 작가의 말년 화풍에서 나타나는 주요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여인, 1973, 캔버스에 유채, 45.5x45.5㎝.
여인, 1973, 캔버스에 유채, 45.5x45.5㎝.

이렇듯 임호는 작가로서 역시 30년 이상을 꾸준히 정진하며 화풍에서의 변화와 연구를 거듭하였다. 강렬한 선묘와 색조, 양감 있는 화면과 중후한 공간감, 독특한 표현의 빛과 터치는 때론 묵화적인 문인화를 연상케 하는 화면으로 등장하는데 이는 임호의 화풍만이 가진 주요 특징으로 볼 수 있다. 결국 그는 후학 양성을 위해 이어온 교육자로서, 지역 화단을 이끄는 미술인으로서 다양한 활동을 놓지 않으면서도 끊임없이 노력하는 작가로서 자신만의 독특한 조형 세계를 이룩해 내었다.

박지영 경남도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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