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공존사회 프로젝트] 유기동물, 안녕 (1) 보호소 첫 자원봉사 -돌봄의 무게
가족 기다리는 400개의 눈동자… 낯선 손길에도 꼬리 ‘살랑’
애완견(愛玩犬)을 넘어선 반려견(伴侶犬)의 시대다. 사람들은 이제 집에서 키우는 동물을 개인 소유물이 아닌 동반의 책임을 져야 하는 가족 구성원으로 인식하고 있다. 국민 4명 중 1명이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회에서 반려문화는 개인을 넘어서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반려가구를 겨냥한 시장규모가 커지는 한편 반려인과 비반려인의 인식 차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도 깊다. 또한 동물 유기와 학대 문제도 비례해서 급증하고 있다.

디지털뉴스부 애니멀 봉사단이 유기견들과 산책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권 기자/
이에 경남신문은 우리사회의 올바른 반려문화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 보고자 한다. 그 첫 번째 프로젝트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유기동물 문제를 들여다본다. 신문사 내 반려인과 비반려인이 함께하는 애봉단(애니멀 봉사단) 활동을 통해 유기동물의 실태를 짚고, 반려동물과 공존하는 사회를 위한 방안을 모색해 본다. ‘신문사 애봉단’의 이야기는 지면과 유튜브를 통해 만날 수 있다.

디지털뉴스부 애니멀 봉사단이 유기견들과 산책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권 기자/
유기견이 늘고 있다는 뉴스는 더 이상 새롭지 않습니다. 갑자기 가족을 잃은 아이들은 낯선 곳을 헤매다 다치거나 목숨을 잃기도 하고, 떠돌이 들개가 되기도 하고, 지자체나 동물단체의 구조로 보호소로 이동되기도 합니다. 경남에서는 매년 1만 마리가 넘는 유기동물이 발견되고 있고, 도내 20개 유기동물 보호소 대부분 적정수용수를 넘어 포화상태로 운영 중입니다. 창원시에서 운영 중인 진해유기동물보호소 역시 마찬가지 상황입니다.
10년 전만 해도 80마리 정도가 지내던 진해 보호소에는 현재 200마리가 넘는 유기견들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매일 같이 늘어나는 유기견들로 일손과 공간이 부족해 제대로 된 관리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이에 작은 일손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신문사 ‘애봉단(애니멀 봉사단)’이 진해 보호소로 봉사활동에 나섰습니다. 애봉단은 보호소 봉사활동을 통해 보호소와 유기동물의 이야기를 전하고, 입양문화 확산과 유기문제 근절을 위해 머리를 맞대봅니다.

창원시 진해유기동물보호소 견사에 매달린 유기견들./김승권 기자/

창원시 진해유기동물보호소 견사에 매달린 유기견들./김승권 기자/
◇강렬한 첫 만남= 수백 마리의 개들이 나를 향해 일제히 짖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요. 봉사활동 첫날, 진해유기동물보호소 입구 문을 열고 들어선 5명의 애봉단은 개 짖는 소리와 특유의 개 냄새에 압도당했습니다. 케이지 안에서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짖는 20㎏ 이상의 대형견들, 마당 안에서 20여 마리의 중·소형견이 철장에 붙어 앞다퉈 짖어대는 모습을 마주하는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죠. 박남연 보호소 반장님은 소리에 익숙한 듯 “애들(유기견들)이 반가워서 그런다”며 웃었지만, 개들의 열렬한 환영(?)은 개를 무서워 하는 비반려인 김영현·조고운 봉사자에겐 강렬하다 못해 공포의 순간이었습니다. 이들에겐 개들이 호랑이처럼 보였죠. “보호소 아이들이 착해서 물지 않아요. 그래도 너무 무서워하는 것처럼 보이면 약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 강하고 당당하게 대해야 합니다. 반장님의 조언에 힘입은 두 봉사자는 케이지 앞에 앉아 유기견들의 눈을 당당하게(?) 바라봤습니다. 그새 냄새에 익숙해진 것인지 흥미를 잃었는지 고막을 때리던 소리가 조금씩 잦아드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디지털뉴스부 ‘애니멀 봉사단’이 유기견들에게 사료를 주거나 털을 빗어주고 있다./김승권 기자/

디지털뉴스부 ‘애니멀 봉사단’이 견사 청소를 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디지털뉴스부 ‘애니멀 봉사단’이 유기견들에게 사료를 주고 있다./김승권 기자/
◇봉사활동 일과는= 강렬한 첫 만남 이후 방진복과 장갑, 장화를 갖춰 입은 애봉단은 서둘러 견사 안으로 투입됐습니다. 오전 봉사활동이 견사 청소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한 경험이 있는 박준영·이솔희 봉사자는 대형견사로, 나머지는 중·소형 견사로 배치됐습니다. 중·소형견은 크기나 성향에 따라 실내 공간을 나눠 10여 마리가 어울려 생활하고 있고, 대형견은 실외에서 1마리당 1개의 견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크기와 상관없이 공격성이 강한 개들은 개별 공간에 격리돼 있습니다.

디지털뉴스부 박준영 기자에게 개들이 몰려들어 냄새를 맡고 안겨 들었다./김승권 기자/
처음 견사에 들어서는 순간 대부분 개들은 일제히 애봉단에게 몰려들어 냄새를 맡고 안겨 들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얼마 지나지 않아 흥미를 잃고 각자의 일상을 보냅니다. 반장님이 시키는 대로 견사 바닥에 호스로 물을 뿌려 청소를 하고, 곧바로 밀대로 물기를 꼼꼼하게 닦아내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오전 시간이 훌쩍 지나갑니다. 청소하는 틈틈이 곳곳에서 발견되는 유기견들의 배설물도 치워야 합니다. 청소를 끝내면 사료를 배분해준 뒤 대형견의 털을 빗거나 소형견의 옷을 입혀주며 건강상태를 확인합니다. 봉사단의 서툰 손길에도 꼬리를 흔들며 몸을 맡겼지만, 일부는 경계하며 손길을 피하기도 했습니다. 사람에게 상처를 받은 것 같다고 직원분이 알려주십니다. 식사 후에는 또 다시 배변 치우기를 진행합니다.

디지털뉴스부 애니멀 봉사단이 유기견들과 산책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권 기자/

디지털뉴스부 조고운 기자가 유기견과 산책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권 기자/

디지털뉴스부 김영현 기자가 유기견과 산책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권 기자/

디지털뉴스부 이솔희PD가 유기견과 산책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권 기자/

디지털뉴스부 ‘애니멀 봉사단’이 유기견의 털을 빗어주고 있다./김승권 기자/
이어지는 오후 봉사활동은 산책입니다. 유기견들이 가장 좋아하고 기다리는 시간이죠. 직원 6명이 200마리를 돌보면서 산책까지 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주 1회 토요일 정기 봉사자들이 오는 날이 유기견들의 공식 산책 날입니다. 그런데 애봉단이 평일에 갑자기 산책에 나서니 견사 안의 울부짖음이 첫 만남 때보다 더 과격합니다. 산책을 나가고 싶다는 표현이라고 했습니다. 흥분한 유기견들은 산책에 나서자마자 대변을 보거나 마킹을 했습니다. 이를 배변봉투로 즉시 처리하는 것 또한 산책자의 몫이죠. 애봉단은 유기견 봉사활동 날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장 많은 대변을 치운 날로 기억합니다.

디지털뉴스부 애니멀 봉사단이 유기견들과 산책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권 기자/
애봉단은 소형 노견부터 대형견까지 차례로 산책을 하며 교감을 시도하거나 힘껏 함께 달리며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유기견들이 좋아하는 걸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장님은 보호소에서 가장 필요한 봉사활동이 산책봉사라고 설명합니다. “아이들이 입양을 가기 위해서는 산책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태어날 때부터 유기됐던 아이들은 사회화가 안돼 있어서 산책 자체를 아예 못하는 경우도 있어요.”

창원시 진해유기동물보호소의 유기견들./김승권 기자/
◇400개의 눈동자들= 보호소에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은 강아지부터 30kg에 육박하는 대형견까지 다양한 사연을 가진 유기견 200마리가 함께 지냅니다. 고급 목줄에 미용까지 완벽했던 푸들, 보호소 앞 전봇대에 묶여 있던 믹스견, 포대자루 안에서 발견된 5마리 새끼 강아지들, 들판에서 몰려 다니다 신고로 포획된 들개 형제들까지, 제각각 보호소에 오게 된 사연은 다르지만 가족이 없거나 잃어버렸다는 아픔은 같습니다. 개중에는 간혹 가족이 다시 찾으러 오거나 운 좋게 입양되는 경우도 있지만, 발견된 10마리 중 최소 5마리는 가족을 찾지 못한 채 이곳에 남습니다. 대부분 믹스견이거나 노견, 병을 가진 유기견들입니다. 안락사를 최소화하는 반장님의 철학 덕분에 공고기간이 지난 유기견들도 보호소를 집처럼, 직원들을 가족처럼 생각하며 지내고 있지만, 매년 늘어나기만 하는 유기견 수를 언제까지 지자체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모를 일입니다. 반장님은 바랍니다. “착하고 예쁜 아이들이 빨리 가족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 아이들이 평생 가족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요.” 봉사활동을 끝내고 보호소를 나서는 길, 애봉단을 응시하던 400개의 까만 눈동자가 꽤 오래 뇌리에 맴돕니다.
디지털뉴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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