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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1022) 전형중임(銓衡重任)

- 저울에 달듯이 사람을 골라 쓰는 중요한 임무

기사입력 : 2024-03-26 08:05:00
동방한학연구원장

지금 이 시대에도 전형(銓衡)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전형이라는 말은, 옛날에는 ‘인재를 골라 적절하게 자리를 주는 것’을 말했다. 저울 전(銓), 저울 형(衡)자를 쓰는데 ‘전형’이 명사로 쓰이면 ‘저울’의 뜻이고 동사로 쓰이면 ‘저울로 물건을 달다’라는 뜻이다. 뜻이 확장되어서 ‘사람의 능력을 잘 파악하여 적절한 곳에 임명하는 일’을 말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인사를 담당하는 이조(吏曹)를 전조(銓曹)라고 했다.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 가장 어렵다. 중국에 전해 오는 이런 말이 있다. 그림보다 더 알아보기 어려운 것이 글씨다. 글씨보다 어려운 것이 시(詩)다. 시보다 더 어려운 것이 문장이다. 문장보다 더 어려운 것이 책이다. 책보다 더 어려운 것이 사람이다.

또 “사람과 벼루는 써 봐야 안다”라는 속담이 있다. 필자가 중국을 다니면서 최고로 좋다는 단계(端溪) 벼루를 여러 개 샀다. 그러나 지금 가장 마음에 들어 늘 쓰는 벼루는 북경(北京) 길바닥에서 우리 돈 2000원 주고 산 싸구려 벼루다. 먹도 잘 갈리고, 열흘이 지나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

벼루만 그렇겠는가? 사람은 더하다. 좋다고 쓴 사람이 좋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은 중간에 자기 이익이나 출세를 위해서 변절하거나 술수를 부리기도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형을 담당한 사람은 최선을 다해서 훌륭한 인재를 선발해야 한다.

조선시대에 인사의 전권(全權)을 쥔 자리는 이조판서(吏曹判書)였다. 나라의 요직 인선을 한 손에 쥔 막강한 자리였다. 장관에 해당되는 판서 자리가 조선 시대 여섯 있었지만, 여타의 판서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권력이 컸다.

이조판서 자리에 훌륭한 사람이 앉으면 나라의 인사가 바로 되겠지만, 간신이나 탐관오리가 앉으면 온 나라의 인사가 엉망이 되어 나라가 어지럽게 된다. 불행히도 역사상 간악하기로 유명한 한명회(韓明澮), 남곤(南袞), 김안로(金安老), 윤원형(尹元衡) 등이 다 이조판서를 맡았다.

이런 간악한 소인들이 나라의 인사전형을 맡으면 자기 편인 소인들을 대거 등용하여 득세하게 하고 올바른 착한 사람들은 대부분 죽임을 당하거나 귀양가거나 파면당한다. 그러니 나라가 되겠는가? 우리나라 지식인들 가운데 “유학이 조선을 망쳤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유학을 바르게 배워 실천한 올바른 착한 유학자의 말은 안 듣고 유학을 엉터리로 배워 악용한 간신들의 말만 들었기 때문에 조선이 망한 것이지 유학 때문에 망한 것은 아니다.

지금 국회의원 선거를 두고 각 당에서 공천을 하여 후보(候補)를 내었다. 누가 보아도 도저히 납득하지 못 할 원칙 없는 사사로운 공천이 아주 심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지금은 선거(選擧)라는 단계가 한 번 더 있어 국민들이 인물을 선택할 수 있다. 바르게 보고 바르게 판단할 중요한 권리이자 의무를 행사할 수 있다. 누가 합리적인지? 누가 공정한지? 누가 국가사회를 위하는지? 누가 윤리도덕에 합당한지? 모두가 저울로 무게를 잘 달듯이 잘 선발해야 국가민족의 발전이 있을 것이다.

* 銓 : 저울 전. * 衡 : 저울 형.

* 重 : 무거울 중. * 任 : 맡길 임.

허권수 동방한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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