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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1026) 예현호사(禮賢好士)

- 어진 사람에게 예의를 표하고 선비를 좋아한다

기사입력 : 2024-04-23 08:08:40
동방한학연구원장
동방한학연구원장

1569년 음력 3월 4일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은 선조(宣祖) 임금의 허락을 받고 경복궁(景福宮)을 출발하여 고향 예안현(禮安縣 : 지금 안동에 병합) 도산(陶山)으로 가는 길을 떠나셨다.

이날 서울을 떠나신 이후로 선생은 다시는 서울에 들어오지 않고, 고향에서 학문 연구와 제자 양성을 하다가 그해 음력 12월 8일에 세상을 떠나셨다.

퇴계선생의 마지막 귀향을 기념해서 2019년부터 음력 3월 4일을 기점으로 해서 안동 도산서원(陶山書院)까지 걸어가는 행사가 시작되었다. 지난 4월 12일 오후 2시 제5회 퇴계선생 마지막 귀향길 재현행사가 시작되어 경복궁을 나섰다. 이번 행사에는 특히 영국대사 등 4개국 대사가 참석하여 국제적인 행사로 확산되고 있다.

이날 행사가 여러 언론에 사진과 함께 보도되었다. 퇴계선생의 선비정신을 잇겠다는 뜻에서 전통 복장인 갓과 도포(道袍) 차림으로 참여하여 걷는 것을 원칙으로 해 오고 있다. 기사 밑에 여러 사람들이 댓글을 달았다. 그 가운데 하나는 아주 좋지 않은 시각으로 보는 것이었다. “미친 것들. 500년 백성들 등골 뽑아먹으면서. 공자왈 맹자왈 지껄인 망령을 서울에서 다시 보다니!”라는 것이었다. 이 댓글을 단 사람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선비, 퇴계, 유교, 공자(孔子), 맹자(孟子), 주자(朱子), 성리학(性理學) 등등에 대해서 아주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곳곳에 적지 않다. 우리나라의 많은 지식인들이 유교 때문에 나라를 망쳤다고 지금까지 생각하고 있다. 유교를 잘못 배운 간악한 소인들이 나라를 망쳐 먹은 것이지, 유교나 선비가 나라를 망쳐 먹은 것은 아니다.

선비는 자신의 수양에 힘써 그 바탕 위에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쳐 자기 집안을 다스리고 자기 나라를 다스리고, 나아가 온 세상을 사람이 살 만한 편안한 세상으로 만들어 나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선비는 먼저 자기 수양을 통해서 자기 발전을 꾀하고, 공부를 좋아하고, 남을 이해하고 돕고 인도하려고 한다. 그리고 늘 국가민족을 생각하면서 자기 자신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의병을 일으킨 사람이 모두 선비들이다. 조선 말기 외침을 물리치기 위해서 의병활동에 참여한 사람도 선비다. 일제 때 독립운동에 헌신한 분들도 다 선비다. 상해임시정부(上海臨時政府)의 주요 인사들도 모두 선비들이었다.

선비 중의 대표적인 선비인 퇴계 이황 선생은 이런 바탕 위에 깊고 넓은 학문과 훌륭한 인격을 갖춘 성인(聖人)에 가까이 간 인물이다. 이런 선생의 정신을 배우고자 걷기 행사를 재현하고 있는데, 공부도 해 보지 않고서 잘못된 시각으로 비판부터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공자의 ‘논어(論語)’, 맹자(孟子)가 지은 ‘맹자(孟子)’에 인간의 도리가 다 들어 있다. 이런 고전이나 퇴계선생이 남긴 시나 문장을 한 줄이라도 읽어 보면 생각하는 바가 달라질 것이다. 무턱대고 선입관을 갖고서 유교나 선비정신을 공격해서는 안 될 일이다.

* 禮 : 예도 예. * 賢 : 어질 현.

* 好 : 좋을 호. * 士 : 선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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