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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봄날 같은 사람- 강지현(문화체육부장)

기사입력 : 2024-04-18 19:24:10

봄이 무르익었다. 일찌감치 몸풀기를 끝낸 나무는 연둣빛 여린 잎을 힘껏 밀어 올리는 중이다. 잎은 점점 무성해지고 산에는 연초록빛 폭죽이 요란하다. 사방에서 생명이 움트고 꽃핀다. 눈길 닿는 곳마다 꽃밭. 유채꽃 튤립 철쭉 등 색색의 꽃들이 잔치를 벌인다. 발아래 세상은 꽃길. 민들레꽃 냉이꽃 제비꽃 괭이밥 별꽃 등 길가엔 풀꽃들이 환하다. 살랑이는 바람과 기분 좋은 햇살, 사람들의 얼굴엔 웃음꽃이 핀다.

▼봄은 유난히 짧다. 오늘 하루치 봄은 그래서 더 귀하고 애틋하다. 시인 박연준은 산문집 ‘모월모일’에 이렇게 썼다. “봄이에요. 사월이고요. 단 하루도 슬프게 지내지 않을 거예요.” 살아나고 피어나고 생동하는 봄 앞에 서면 힘이 솟는다. 봄의 응원은 용기가 된다. 풀꽃시인 나태주는 산문집 ‘봄이다, 살아보자’에서 말한다. “이제 다시 봄이 되었으니 우리는 다시 한 차례씩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살 것이다. 이것도 하나의 희망이고 꿈이고 행운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봄은 절망이자 아픔이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그들’ 때문이다. 제주 4·3과 4·16 세월호, 그리고 오늘 4·19 혁명을 몸과 마음으로 겪어낸 사람들. 찬란한 봄날 스러져간 수많은 생명들을 떠올려본다. 4월의 슬픔은 어쩌면 숙명일지 모른다. 내일은 장애인의 날. 소외와 편견의 그늘 속에서 숨죽이고 지내는 그들을 생각해본다. 눈부신 봄날이 누군가에겐 이토록 시리고 아프다.

▼‘햇살이 쬐이는 담 밑에서 싱그럽게 돋아나는/ 봄나물 같은 사람// 온통 노랑으로 뒤덮은 개나리같이/ 마음을 울렁이게 하는 사람// 조용한 산을 붉게 물들인 진달래처럼/ 꼬-옥 또 보고 싶은 사람// 어두운 달밤에도 기죽지 않고 꿋꿋이 자기를 보듬은/ 목련 같은 사람’(이해인의 시 ‘봄날 같은 사람’ 중)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 계절, 나는 당신에게 당신은 나에게 봄날 같은 사람이기를. 봄나물 같은, 개나리 같은, 진달래 같은, 목련 같은 그런 사람.

강지현(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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