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의거 진상규명 시작됐지만 교과서엔 아직도 ‘4·19 배경’
62돌 3·15의거 ‘여전히 미완성’
의미있는 변화 시작됐지만
진실화해위 창원사무소 1월 개소
1960년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에 항거해 그해 3월 15일부터 4월 13일까지 마산에서 일어난 우리나라 최초의 유혈 민주화운동인 3·15의거가 62주년을 맞았다. 올해 국가차원의 진상규명이 시작되는 등 의미 있는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지만, 여전히 피해자 배·보상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으며 미래세대 교육도 부족하다고 평가되는 등 갈 길은 멀다.

14일 창원시 마산회원구 국립3·15민주묘지 참배단에서 열린 ‘제62주년 3·15의거 민주열사 추모제’에서 참가자가 헌화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진상규명 신청, 성과 늘고 있는데…배·보상 과제= 지난 1월 21일 ‘3·15의거 진상규명을 위한 진실화해위원회 창원사무소(이하 창원사무소)’가 문을 열면서 62년 만에 역사적 재평가와 함께 의거 참가자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명예회복이 추진되기 시작했다. 창원사무소에서는 올해 12월 9일까지 진실규명 신청을 받아 2024년 5월 26일까지 조사개시가 결정된 건을 조사한다. 사무소 개소 이후 지난 14일까지 53일 동안 총 52건 진상규명 신청이 접수됐다. 3·15의거학생동지회 26건, 유족회 7건, 개인 19건이다.
첫 번째 신청은 창원에 사는 이영조(73)씨가 3·15의거에 참여한 친형 이점덕(79)씨를 유공자로 인정해달라는 것과 두 번째 신청은 의거 당시 경찰이 시위대에 무차별 총격을 가해 탄흔이 남은 마산 무학초등학교 담장을 제대로 복원하라는 것이었다. 이영조씨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형은 3·15의거에 참여하고도 증거가 부족해서 유공자로 인정을 못 받았는데 국가기록원에 직접 찾아가보니 없었던 형의 형사기록이 나와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상규명을 신청했다. 하루 속히 형의 명예가 회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두 번째 신청건은 진상규명 신청 접수 이후 박종훈 경남교육감이 지난달 참석한 3·15의거기념사업회 정기총회에서 축사를 통해 무학초 앞 총격담장을 본래 위치로 이전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히는 등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창원사무소는 앞으로 신청자들이 낸 자료와 관련 추가 자료를 검토해 조사개시를 할 것인지 기각할 것인지 결정한다.
다만, 진상규명 신청은 늘고 있지만 의거 참여자들에 대한 자료는 현저히 부족한 실정이어서 어려움이 큰 것으로 전해진다.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고령인 참가자들에 대한 대면 조사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 등 고충이 있고, 과거 진료기록 제공 등 관련 기관과 협조도 미진한 상황으로 알려졌다. 유경희 조사 2팀장은 “의거 당시 부상자들의 의료 기록이 적십자에 있다고 전해 들었는데 관련 자료를 확보하기 쉽지 않다. 직접 적십자를 방문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진실규명 이후 피해자들의 배·보상 등 해결해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창원시가 현재 3·15의거 관련 유공자·부상자로 지원 중인 사람은 희생자 유족 21명, 부상자 14명, 공로자 7명 등 42명에 불과하다. 이는 1960년 3·15의거에 참가한 마산시민이 1만여명인 것과 비교하면 극히 일부다. 3·15 의거법상 의거 참가자에 대한 보상 규정은 빠져 있다. 당초 발의안에는 보상 내용이 포함됐지만 심의과정에서 보상 내용이 삭제됐다. 3·15의거 참가자들이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이미 일부 보상을 받은 점 등 보상금 규정을 추가로 둘 시 중복 보상으로 인한 재정 부담 가능성이 고려돼 반영되지 않았다. 현행법상 진실 규명 결정을 받더라도 실질적인 배·보상을 받기 위해선 국가를 상대로 별도 소송을 해야 한다.

지난 2021년 3월 10일 박홍기 무학초 담벼락 총탄자국 및 정문복원추진위원회 대표가 창원시 마산합포구 무학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무학초 총격 담장 재복원을 주장하며 옛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뒤로 보이는 건물이 원래 담장과 교문이 있던 자리이다./경남신문DB/
◇역사교과서 속 소외된 3·15의거= 3·15의자의 당당한 주역은 마산의 보통사람들이었다. 마산상고(현 마산용마고) 1학년으로 3·15 부정선거 규탄시위에 참여했다가 실종된 뒤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눈에 최루탄이 박혀 숨진 채로 발견된 김주열 열사 등 마산의 학생들과 공장 노동자, 상인 등 보통의 시민이 참여해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다. 자유·민주·정의를 기본정신으로 한 3·15의거의 숭고한 가치와 정신을 계승하는 일은 미래 세대의 교육으로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중·고등생의 학교교육은 3·15의거를 비중 있게 다룬 역사 교과서가 부재한 상황이다. 교육계에선 전체 교육과정 중 근현대사를 고등학교 역사과정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편이다. 안타깝게도 도내 중학생이나 고등학생들이 주로 배우는 역사나 한국사 교과서 대부분 3·15의거 내용을 4·19혁명 속에서 다루면서 1~2줄 정도 배경설명에 그치는 등 빈약하다고 평가된다. 김주열 열사에 대한 내용도 4·19혁명 배경으로 포함이 되는 등 3·15의거를 독립된 민주화운동으로 설명하진 않는다.

중학교 역사2 교과서에는 4·19 혁명을 설명하고 있지만 3·15의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빠져 있다./미래엔 출판사 교과서/
고등학교 1학년 때 주로 배우는 한국사의 경우 ‘마산에서는 시위대에게 경찰이 발포하여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미래엔·256P)’, ‘마산에서는 시위 진압 과정에서 경찰의 발포로 수십 명이 죽거나 다쳐 국회에서 조사단을 파견하기도 하였다.(비상교육·257P)’, ‘3월 15일 선거 당일에는 마산을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부정 선거를 규탄하는 시위가 전개되었다.(천재교육·259P)’ 등에 그치고 있다. 또 중학교 3학년 때 주로 배우는 역사2 교과서에선 4·19 혁명을 소개하면서 3·15의거 내용은 빠뜨린 채 ‘3·15 부정 선거 무효를 외치는 마산 학생’이라며 편집한 사진(미래엔·199p)만 실어둔 경우도 있으며, 다른 교과서도 짧은 내용이 포함되는 데 그쳤다. ‘선거 당일 마산 등지에서는 부정 선거에 항의하여 학생과 시민들의 시위가 벌어졌다.(지학사·195p)’, ‘선거 당일 마산에서는 많은 학생과 시민이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승만 정권은 무력으로 시위를 진압하였다.(천재교육·194p)’ 등이다.
창원봉림고 1학년 한국사 하상억 교사는 “3·15의거는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는 간략하게 소개되고 고등학교는 자세하게 다룬 교과서가 있으나 2~5줄 내외로 다루고 있다”라며 “수업에는 다른 자료를 준비해 3·15의거가 4·19혁명을 넘어 5·18민주화운동과 6월 항쟁으로 이어지는 초석이 된 대표적인 운동이라는 점 등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창원교육지원청과 창원시 등은 자체 학습 자료를 만들어 교육에 나서고 있다. 창원교육지원청은 지난 2017년 ‘3.15의거와 함께 하는 창원사랑’ 120p 분량의 지역사 교재 3만3000권을 만들어 창원 중학생들에게 배포했다. 그러나 그 이후 학생들에게 직접 배부하지 않고 남은 부수로 학교와 기관 등에 배부해오다 지난해 재고가 떨어져 50권을 추가 제작해 보관 중이다.

창원교육지원청이 만든 지역사 교재 ‘3.15의거와 함께 하는 창원사랑’./창원교육지원청/
현재 창원의 중학생 전체에게 다시 배부하려면 2만8000부가량 제작해야 한다. 창원시는 올해 1월부터 ‘3·15의거 발원지 기념관’을 방문하는 학생들을 위해 12p의 ‘한 권으로 끝내는 3·15 의거’ 청소년용 학습자료 제작해 배부하고 있다. 또 경남교육청은 지난 2019년부터 도내 전 초·중·고등에서 매년 3월 15일부터 19일까지 ‘3·15의거 61주년 기념 민주·인권교육 주간’을 자발적으로 운영토록 하고 있다. 이 주간 각 학교에선 1~2시간의 교육을 실시한다. 또 현장 탐방, 조사·발표, 토의·토론 등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창원시가 제작·배부하고 있는 학습자료 ‘한 권으로 끝내는 3·15 의거’./창원시/
남기문 3·15기념사업회 이사는 “3·15의거 당시 정의로웠던 학생들의 정신을 미래세대들이 계승했으면 좋겠다. 관련 교육 사업들을 꾸준히 해왔고, 앞으로도 이 점을 집중해서 사업을 진행할 생각이다”라며 “많은 시민들에게 3·15의거 정신을 계승시키기 위한 정부의 관심과 지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재경 기자·박준혁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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