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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828) 제25화 부흥시대 138

“미국이 항복했습니다”

기사입력 : 2020-05-07 08:06:52

이재영은 벽에 걸린 괘종시계를 보았다. 밤 11시가 넘어 있었다. 요정의 어느 방에서 기생들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미국이 반대하지 않나?”

“미국이야 당연히 반대하지요.”

“그럼 휴전회담이 깨지는 거 아닌가?”

“그렇게 될 거 같습니다.”

이재영은 실망했다. 휴전회담이 깨지면 전쟁이 계속된다. 이재영은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이재영은 라디오를 틀었다. 신태영 국방장관이 반공애국포로를 이북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석방한다고 발표하고 있었다. 이튿날 아침 신문이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라디오가 흥분한 목소리로 소식을 전했다. 전국의 포로수용소에서 반공포로들이 일제히 석방되었다. 미국과 유엔의 자유 진영 여러 나라들은 발칵 뒤집혔다.

공산 진영에서는 포로들을 다시 수용하지 않으면 휴전은 없다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휴전회담은 파국을 향해 치달렸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의 명령으로 3만7000여명의 포로 중 2만7000여명이 탈출했다. 국민들은 포로를 숨겨주고 밥을 먹여주면서 적극적으로 보호했다. 미군이 포로들을 잡아들이려고 했으나, 국민들이 보호하는 포로들을 체포해 수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탈출하는 과정에서 56명의 포로들이 사망하기도 했다.

“나는 제네바협약과 인권 정신에 의해 반공애국포로 석방을 지시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당당하게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재영은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공산 진영은 휴전회담을 보이콧했다. 상황은 심각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회담이 깨지는 것을 바라는 것 같았다. 그는 미국에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휴전이 조인된 뒤에 인민군이 언제든지 다시 침략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표면적으로 휴전회담을 강력하게 반대했다.

뒤숭숭한 가운데 6월이 가고 7월이 왔다. 7월이 되자 날씨가 더욱 더웠다.

“회장님, 미국이 항복했습니다.”

이철규가 사무실로 들어와 보고했다.

“미국이 항복을 해? 그게 무슨 소리야?”

“미국이 이승만 대통령에게 손을 들었습니다.”

“혹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말하는 것인가?”

“예. 10월까지 방위조약을 체결하겠다는 비밀문서를 경무대에 전달했다고 합니다.”

이재영은 놀랐다. 휴전회담을 하고 미군이 철수하면 이승만 대통령은 단독으로 북한과 전쟁을 벌이겠다고 선언을 했었다. 미국을 위협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6·25 전쟁이 발발했을 때 미군을 참전하게 한 일, 반공포로 석방,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이승만의 업적이 되겠구나.’

이재영은 이승만 대통령의 새로운 면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국내 정치는 엉터리였다. 독재와 독선으로 한국을 부패한 나라로 만들고 있었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