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당선인, 그는 누구인가] ‘적폐청산’ 진두지휘… 정치 입문 8개월 만에 ‘대권’
1960년 서울서 대학교수 부부 첫째로 태어나… 서울대 법대 진학
5·18 직전 교내 모의재판서 전두환 전 대통령 무기징역 선고 일화
졸업 후 9수 만에 사법시험 합격… 대검중수부 등 요직 두루 거쳐
윤석열(62)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검찰총장에서 물러나 정치 입문 불과 4개월여 만에 제1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데 이어 8개월여 만에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이 됐다.
지난해 6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중진들을 꺾고 야당 사령탑이 된 데 이어 윤 당선인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국민의힘은 한국 정당 사상 최초로 ‘0’선 당 대표와 대통령을 배출하는 이변을 기록하게 됐다.

윤석열 당선인 유년시절.

초등학교 시절 가족과 함께 부친의 출장 가는 길을 배웅하는 모습.
◇부침 겪으며 ‘스타 검사’ 발돋움= 윤 당선인은 1960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대학교수 부부의 1남 1녀 중 첫째로 태어났다. 유년 시절 경제학자의 꿈을 꾼 적도 있으나 ‘더 구체적인 학문을 하라’는 부친의 권유로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직전 서울대 학생회관에서 열린 교내 모의재판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뒤 외가가 있던 강원도 강릉으로 석 달간 피신한 일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윤 당선인은 대학 졸업 후 ‘9수’ 만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늦깎이 검사로 평범한 이력을 거친 윤 당선인은 노무현 정부 당시 굵직굵직한 특수 사건에 투입되면서 ‘칼잡이’로서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2002년 검사 옷을 벗고 대형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했고, 1년 만에 “검찰청 짜장면 냄새가 그립다”며 친정으로 복귀한 뒤부터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2003년 SK 분식회계 사건과 불법 대선자금 사건을 시작으로 현대차그룹 비리 사건,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 삼성그룹 비자금 사건, BBK 특검, 부산저축은행 사건, 국정원 댓글 사건 등을 맡았다.
선 굵은 수사 스타일로 이명재·정상명 전 검찰총장 등 선배들의 총애를 받아 대형 사건 수사마다 차출되면서 대검 중수부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요직을 두루 거쳤다. 이 과정에서 특유의 보스 기질로 ‘윤석열 사단’을 구축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윤석열 당선인 중학교 시절.

윤석열 당선인 고등학교 졸업사진./국민의힘/

윤석열 당선인 대학교 시절./국민의힘/
윤 당선인이 일약 스타덤에 오른 것은 지난 2013년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한 국회 국정감사에서다. 당시 윗선의 수사 외압을 폭로하면서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고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정권에 밉보인 탓에 지방 고검 검사로 좌천돼 4년여간 ‘유배지’를 떠도는 등 부침을 겪었지만, 이 발언으로 부당한 압력에 굴하지 않는 ‘강골 검사’ 이미지를 대중에 각인시켰다.
이 무렵 민주당 핵심 인사로부터 총선 출마 권유를 받았지만 후배들을 챙겨야 한다는 이유로 완곡하게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당선인은 지난 2016년 탄핵 정국을 맞아 최순실 특검 수사팀장으로 화려하게 부활하며 특수통 검사로서의 건재를 과시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선배들을 제치고 서울중앙지검장에 파격 발탁됐고, ‘적폐 청산’ 수사와 공소 유지를 진두지휘하며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중형을 끌어냈다.
‘조국 사태’는 ‘정치인 윤석열’을 있게 한 변곡점이었다. 그는 검찰총장으로서 “살아있는 권력에도 엄정해야 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당부를 그대로 행동에 옮기면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전방위 수사를 밀어붙였고, 결국 정권의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됐다.
조 전 장관이 물러나고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의 본격적인 ‘추·윤 갈등’과 중대범죄수사청 설립을 시도한 민주당과의 정면충돌이 겹치면서 정권과의 불화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달았다.
윤 당선인은 결국 지난해 3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며 임기를 4개월여 남기고 전격 사퇴했다.

윤석열 당선인 검사시절./국민의힘/

윤석열 당선인 검사시절./국민의힘/
◇‘공정·상식’ 내세워 대권 출사표= 현 정부와의 갈등 끝에 검찰총장 직을 내던진 윤 당선인은 단숨에 ‘야권 대장주’로 꼽히기에 충분했다. 국민의힘에 입당하기 전에도 차기 대권주자 여론조사에서 여야를 통틀어 지지율 1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총장 사퇴 후 3개월가량 두문불출했던 윤 당선인은 “공정과 상식이라는 시대 정신을 내세워 압도적인 정권 교체를 이뤄내겠다”는 ‘6·29 선언’으로 대권 도전에 나섰다.
여의도 정치에 뛰어든 윤 당선인은 초창기 정치권 적응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서툰 화법으로 수차례 구설에 오르기도 했으며, ‘윤석열 X파일’ 논란으로 도덕성 리스크가 부각되기도 했다.
시기를 조율하다 지난해 7월 말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한 뒤로도 이준석 대표와의 불화설에 휩싸이기도 했으며, ‘전두환 옹호’ 논란 발언이나 ‘개 사과’ SNS 글로도 구설수에 올랐다.
반면 당내 경선 과정에서는 홍준표 의원 등 산전수전 다 겪은 경쟁 주자들로부터 파상 공세를 받으면서도 탄탄한 지지율을 유지했다. ‘정권 핵심과 맞서 싸워 지지 않았다’는 이미지 덕에 당원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현 정부 사정기관 수장 출신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한때 대안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낮은 인지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경선에서 중도 탈락한 것과는 다른 면모를 보인 것이다.
◇‘정권심판론’ 속 각종 리스크에 ‘안갯속 승부’ 뚫고 당선= 대선 본선 진출과 동시에 높은 ‘정권심판론’을 등에 업고 선거운동에 나섰으나 본인과 부인 김건희씨, 장모 리스크 속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안갯속 승부를 펼쳐왔다.
특히 부인 김건희씨가 ‘비호감 대선’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김씨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과 허위이력 논란 등으로 지난해 12월 26일 대국민 공개사과에 나섰고, 이후 선거운동 기간 마지막 유세까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여당의 정권 재창출론을 잠재우고 승리한 윤 당선인은 앞으로 코로나19 장기화,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촉발된 경제·안보 위기 상황 속에서 막중한 임무를 안고 출발한다. 현 정권에 대한 실망의 반사이익, 그 이상을 실력으로 증명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도영진 기자 doror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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