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대형 산불] 마을 지키던 900살 하동 두양리 은행나무도 초토화

고려시대 때 심은 나무 꺾이고 불타

두방재 일부 전소, 문화재 피해 속출

기사입력 : 2025-03-24 19:53:49

“큰 은행나무는 국민학교 시절, 가을 소풍 가던 곳인데…. 향수가 없어졌어요.”

대형 산불이 발생한 지 나흘째인 24일 찾은 하동군 옥종면 두방마을. 마을 입구에 진입하기 전부터 매캐한 연기가 마스크 속으로 들어왔다.

마을은 화마가 지나간 흔적이 역력했다. 온 마을에 뿌연 연기가 가득했고, 진화 헬기는 산과 하천을 오가길 반복했다. 주민들이 모두 옥천관 등 인근 대피소로 몸을 피하면서 마을 전체는 고요했다. 미처 동행하지 못한 강아지만 집을 지키며 짖을 뿐이었다.

23일 국가유산청과 경남 하동군 등에 따르면 산청에서 발생한 산불이 하동 옥종면 일부로 확산하면서 경상남도 기념물인 ‘하동 두양리 은행나무’가 불에 탔다./이하은 수습기자/
23일 국가유산청과 경남 하동군 등에 따르면 산청에서 발생한 산불이 하동 옥종면 일부로 확산하면서 경상남도 기념물인 ‘하동 두양리 은행나무’가 불에 탔다./이하은 수습기자/

지난 21일 산청군 시천면에서 시작된 대형 산불은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까지 확산했다. 산불은 900년가량 두방마을에 자리 잡았던 ‘두양리 은행나무’(경남도 문화재 제69호)를 태웠다.

두양리 은행나무는 고려시대 강민첨 장군이 심은 나무로 경남도 지정 기념물이다. 은행나무를 향해 올라가는 800m가량의 길 왼쪽은 대부분 불에 타 까맣게 그을린 모습이 이어졌다. 은행나무에 도착하기 100m 전부터는 화마가 할퀴고 지나간 흔적만 남았다. 높이 27m, 둘레 9.3m의 은행나무는 형태를 일부 갖추고 있었으나, 상당 부분 가지가 꺾이고 불에 탄 모습이었다.

인근 옥천관 대피소에서 만난 변정자(76·하동 옥종면)씨는 “(이번에 불에 탄) 은행나무는 국민학교 시절 가을 소풍을 가던 곳이다. 같이 학교를 다녔던 친구들이 은행나무가 탔다는 뉴스를 보고 전국 각지서 전화 왔다”며 “그 동네만의 향수가 없어졌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또 다른 경남도 문화유산자료인 ‘하동군 두방재’(경남도 문화재 제81호)도 산불로 피해를 본 것으로 확인됐다. 두방재는 강민첨 장군의 위패가 봉안된 사당이다. 두방재를 향해 가는 길은 초입부터 까맣게 탄 나무와 흙이 시야를 채웠다. 땅에 떨어진 검게 탄 나뭇조각에서는 남은 연기가 피어오르기도 했다.

하동 두방재 전소된 부속건물과 온전한 사당의 모습./이하은 수습기자/
하동 두방재 전소된 부속건물과 온전한 사당의 모습./이하은 수습기자/

두방재는 관리사와 화장실, 소화펌프창고 등 일부 건물이 전소됐다. 다행히 강민첨 장군의 영정이 있는 사당 본체는 화재를 비껴갔다.

두방재를 22년 동안 관리해 온 강신건(87)씨는 옥천관으로 대피했다. 강씨는 강민첨 장군의 진양 강씨 문중 후손으로 사당 바로 옆에 집을 짓고 살아왔다.

강씨는 이번 산불로 조상을 모시는 사당과 집을 전부 잃었다. 그는 “화재 당일 밖으로 뛰쳐나가 보니 산이 온통 불에 휩싸여 있었다”며 “매일 쓸고 닦던 곳인데, 불길이 어느 정도 잡힌 어제 소방대원과 함께 다시 집을 살피러 돌아가 보니 온통 잿더미뿐이었다”고 한숨 지었다.

이상규 기자·이하은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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