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돌아왔다, 귀향시대] (8) 고성에 살어리랏다
풍요로운 산과 바다서 땀흘려 찾은 주체적 삶
고성군은 선사시대부터 인류가 터를 잡고 살았던 기회의 땅이다. 온화한 기후와 풍부한 자원,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환경 덕분에 오랜 세월 생존과 번영의 터전이 되어 왔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서 고성은 지역소멸을 우려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부족한 일자리와 문화생활의 부재, 정주 여건의 한계로 인해 청년을 중심으로 인구 유출이 가속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청년들이 있다.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데서 나아가 지역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지난 8일 고성에서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두 명의 귀향청년을 만났다.
시골 체험 숙박공간 운영 황정호씨
고등학교 졸업 후 고향 떠나 타지역서 대학 생활
제약사·은행 등서 일하다 적성 맞는 일자리 고민
귀향해 IT회사 창업… 지역 청년 맞춤사업 진행
지역의 역사·문화 활용한 창업 아이템 무궁무진
방치된 공간 활용해 고향의 매력 널리 알리고파

고성군 거류면에서 시골 체험 숙박공간인 ‘풀빛고성’을 운영 중인 황정호씨가 유리창을 닦고 있다./성승건 기자/
◇육지 청년 이야기= “도시에서 수많은 경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한적한 시골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고성에는 생각보다 많은 기회가 있거든요.”
고성군 거류면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풀빛고성’을 운영하는 황정호(36)씨는 귀향한 삶이 어떻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고성군에서 추진하고 있는 풀빛고성은 군에 있는 빈집을 활용해 숙박공간을 제공하는 촌캉스(촌+바캉스 합성어) 프로젝트다. 지난해 사업 공모에 선정된 이후 1년 넘게 정호씨가 운영 중이다. 풀빛고성에는 불멍을 즐길 수 있는 화로와 가마솥뚜껑을 이용한 바비큐, 민속놀이 도구, 몸빼바지 등 시골 감성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이 준비돼 있다. 이 모든 것을 이용하는 데 드는 비용은 단돈 1만원. 저렴한 가격 덕분에 타 지역 청년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그러나 비영리사업의 특성상 큰 수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그가 풀빛고성에 애착을 갖고 운영하는 것은 당장의 수익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시골살이의 로망 같은 게 있잖아요. 저렴한 가격에 자신이 꿈꿨던 로망을 어느 정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반응이 정말 좋아요. 할머니 집에서 자는 것 같다는 분도 있고 서비스가 좋다는 분도 계시고…. 다녀간 분들의 만족한 후기를 보면 보람이 커요. 물론 수익이 나면 좋겠지만, 그것보다 많은 청년들이 풀빛고성에서 경험한 고성살이를 통해 지역에 매력을 느껴서 이들이 고성에 들어와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장 크죠. 고향이 소멸되면 안 되잖아요.(웃음)”
현재는 지역에 청년들을 유입시키기 위해 힘쓰고 있지만, 정호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고향 고성을 떠난 적이 있다. 지역에 대학이 없는 데다 막연하게 큰 도시에서 생활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고성군 거류면에서 시골 체험 숙박공간을 운영 중인 ‘풀빛고성’ 황정호씨./성승건 기자/
“대전 소재 대학에 입학해 경제학을 전공했어요. 당시 혼자 경상도 사람이라 또래들한테 많은 관심을 받았는데, 저도 어울리는 걸 좋아해서 금방 적응했죠. 졸업 후 제약 관련 영업도 해보고, 은행원 인턴 일도 해봤지만 적성에 안 맞더라고요. 매일 똑같은 일만 반복하다 보니 주체적인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었죠.”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자리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 서울 소재 IT기업에서 근무하던 친구와 만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 과정에서 서로의 의견이 일치했고, 그 길로 친구와 함께 고성으로 내려와 IT 기업인 ‘트리버스’를 창업했다.
“친구와 함께 고성으로 돌아와 웹사이트 구축과 소프트웨어 개발을 주로 했어요. 그런데 고성에는 수요가 없더라고요. 고성군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이후 지역 인플루언서들과 협업하는 팸투어 사업과 청년들 대상 IT 교육, 고성의 문화관광 자원을 활용한 증강현실 게임 등 지역 정체성을 이해하고 지역의 청년들의 욕구에 맞춰서 사업을 진행하기 시작했죠.”
IT 기업 트리버스의 대표로서 다시금 지역에 뿌리를 내려 청년 창업가의 길을 걷고 있는 그는 고성만큼 창업하기 좋은 환경을 가진 지역이 없다고 강조한다.
“고성은 소멸위기지역 안에서도 특히 청년 지원이 많은 편이에요.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 창업 아이템으로 잘만 활용한다면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또 지역에 방치된 유휴공간이 많아서 저렴한 가격으로 주거지와 사업공간을 확보하기에도 유리하죠. 다만 인프라 시설이 도시에 비해 부족해 어느 정도의 불편함은 감내해야 돼요.”

황정호씨가 ‘풀빛고성’ 마당에 있는 화로에 불을 때고 있다.
그는 귀향을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는 건 한계가 있어요. 결국 지역민들과의 교류를 통해 정보를 얻어야 한다는 말인데, 우선 자신의 관심 분야에 대한 조사를 선행한 이후 관련 활동가들을 찾아 정보를 얻으면서 점진적으로 활동 범위를 넓히는 걸 추천해요. 인적 네트워크는 비단 사업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될 만큼 중요한 요소입니다.”
끝으로 그에게 최종 목표를 물었다. “현재 지자체 공모 사업으로 풀빛고성을 운영하고 있지만, 사업이 끝난 후에도 청년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서 이들에게 고성이 가진 매력을 알리고 싶어요. 그렇게 모인 지역의 청년들과 함께 ‘쇠락’해 가는 고성을 ‘쇄락’을 느낄 수 있는 고성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어촌마을서 가리비 양식장 운영 심창성씨
10살 때부터 굴 양식업 하던 부모님 도와
고3 때 조선소 취직… 월급 밀려 12년 만에 귀향
지인 권유로 가리비 양식 도전 어려움 겪었지만
현재 1㏊서 연 50t 생산 연매출 1억여원 달해
노력한 만큼 결과 나와 성실하다면 굶을 일 없어

고성군 삼산면에서 가리비 양식업을 하고 있는 심창성씨가 수조에 있는 가리비를 뜰채로 옮기고 있다./성승건 기자/
◇바다 청년 이야기= 고성군 삼산면의 작은 어촌마을에는 가리비 양식장을 운영하며 지역에 뿌리를 내린 귀향청년도 있다. 바로 심창성(40)씨다. 자란만에 위치한 그의 양식장은 삼면이 섬으로 둘러싸여 조류가 완만하고 영양염류가 풍부해 가리비 생육에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그는 이곳에서 1㏊(3000평) 규모의 양식장에서 연간 50t의 홍가리비를 생산하고 있다. 연평균 매출은 1억2000만원 수준이다.
창성씨의 부모님은 어부였다. 굴 양식업을 하셨던 부모님 밑에서 종묘 작업부터 수하까지 굴 양식 전반의 일을 맡아서 했다. 처음 부모님 일을 돕기 시작한 나이가 10살이었으니, 어린 시절부터 그의 삶은 어부에 가까웠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부모님 일을 도왔어요. 부모님이 일하는 모습이 너무 힘들어 보이더라고요. 당시 굴 가격도 좋지 않아서 노력한 만큼 수익이 따라오는 것도 아니었고요. 버릇처럼 부모님에게 뱃일은 절대 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었죠.”
창성씨는 가업을 물려받기를 원했던 부모님을 뒤로하고,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취업계를 내고 타 지역 조선소에 취직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조선소 경기가 악화되면서 월급이 밀리는 일이 발생했다. 오랜 외지 생활로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에서 월급까지 밀리니 더는 버틸 힘이 없었다. 그렇게 12년간의 외지 생활을 끝내고 고향 고성으로 돌아왔다.
“먼저 가리비 양식을 시작한 지인이 불안정한 생활을 할 바에 고성으로 돌아와서 가리비 양식을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어요. 마침 부모님의 굴 양식장도 비워져 있었거든요. 이후 아버지를 설득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탐탁지 않으셨는데 결국에는 양식장을 내어주셨죠.”

고성군 삼산면에서 가리비 양식업을 하고 있는 심창성씨./성승건 기자/
창성씨는 고성에 돌아온 후 군에서 시행하는 어민 후계자 융자사업을 통해 부모님의 굴 양식장을 가리비 양식장으로 설계변경해 운영 중이다. 그의 사업체 이름은 ‘여울수산’으로 고성 사람이라면 대부분 그의 가리비를 먹어봤을 만큼 지역에서 유명하다.
“시설 준비부터 가리비 입식과 생육 방식 등 주변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사소한 거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배우려고 노력했어요. 이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덕분에 지금의 품질 좋은 가리비를 생산할 수 있었어요. 또 지역 맘카페를 비롯해 발로 뛰며 홍보도 많이 했죠. 그러다 보니 점점 입소문이 나면서 제 가리비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죠.”
월급이 제때 나올지를 고민하던 직장인에서 억대 매출을 자랑하는 가리비 양식장의 대표가 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창성씨. 그에게 현재 고성에서의 삶에 만족하고 있는지 물었다.
“농사도 그렇지만 바닷일은 노력한 만큼 결과가 따라와서 성실함만 있으면 굶을 일은 없어요. 또 시골에서의 삶이 평온함을 가져다주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몸이 불편하신 부모님 옆에서 건강을 챙겨드릴 수 있다는 점에서 크게 만족하며 살고 있습니다.”
끝으로 그는 귀향 또는 귀어를 통해 가리비 양식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
“가리비 양식을 하다 보면 예기치 못한 피해가 발생하기도 해요. 대표적으로 기후위기로 인한 고수온 피해인데, 이때 먼저 가리비 양식을 시작한 선배들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되거든요. 고성기술사업소에 도움을 요청하면 멘토를 정해주기도하는데, 여의치 않으면 제가 운영하는 여울수산으로 연락을 준다면 아는 선에서 가리비 양식에 관련된 정보를 최대한 알려드리겠습니다.(웃음)”

심창성씨가 가리비를 포장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고성군 청년정책= 고성군은 청년이 말하고, 청년이 그리는 청년정책 펼치기 위해 청년이 체감하고 공감하는 일자리, 주거, 생활안전망 구축 등 다양한 분야에서 청년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주요 사업으로는 청년들의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창업하면 고성스쿨 △청년인턴사업 △대학생 행정체험 △취업청년 생활지원사업 등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청년 창업지원 사업인 창업하면 고성스쿨은 현재까지 36개 업체가 창업했으며, 청년창업을 지원함으로써 지역경제 활력 제고와 청년의 안정적 지역 정착을 유인하고 있다.
또한 청년과 신혼부부의 주거 안정을 위해 △청년 이사비용 지원사업 △청년 월세 지원사업 △신혼부부 주거자금 대출이자 지원사업을 시행 중이며, 청년의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결혼축하금 △아빠 육아휴직 장려금 △출산장려금 △첫 만남 이용권 △한방첩약 사업 △다자녀 지원금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고성군은 새로운 인구 개념인 ‘생활인구’ 유입 사업으로 폐교를 리모델링해 ‘고성청년예술촌’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방치된 빈집을 활용해 새로운 여행문화를 즐길 수 있는 ‘힐링! 촌캉스’, 직장에 다니는 청년의 워라밸을 책임지는 ‘고성 워케이션’도 운영하고 있다.
김영현 기자 kimgija@kn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