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공존사회 프로젝트] 유기동물, 안녕 (2) 보호소 터줏대감들과의 만남과 이별
세상에서 가장 다 정한 이별
‘진해보호소 터줏대감’ 터보
2016년 진해 한 경로당서 발견
가족 찾지 못한 채 8년 흘러
보호소 식구·봉사자 덕분에
건강 되찾고 가족처럼 교감
총애받는 유기견이지만
안락사 ‘0순위’ 걱정에
장기봉사자가 임시 보호 중
“같이 지내며 배변·습관 훈련
새 가족 만나 입양됐으면”
진해유기동물 보호소에서 초보 봉사자들인 신문사 애봉단(애니멀 봉사단)에게 곁을 가장 먼저 내어준 아이들은 보호소 ‘터줏대감’ 노견들이었습니다. 보호소 복도에서 만날 수 있는 이들은 짧게는 5년 길게는 8년가량 이곳에 머물고 있는 친구들입니다. 평균 8세의 고령인 노견들은 산책과 목욕시간에도 친절하게 몸과 마음을 맡겨주며 애봉단의 보호소 적응(?)을 도왔습니다. 특히 보호소 생활이 가장 긴 유기견 터보는 소위 ‘개 공포증’이 있는 김영현 봉사자와의 긴장을 풀어줄 만큼 탁월한 친화력을 뽐냈죠. ‘터보야~’라고 이름을 부르면 까만 귀를 쫑긋하며 쳐다보고, 박수를 치며 손짓을 하면 선뜻 무릎 위에 올라서고, 산책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복도로 달려가는 터보의 뒷모습이 지금도 아른거립니다. 보호소 반장님과 직원들은 이곳을 집처럼 여기는 터보가 사랑스럽지만, 그만큼 또 터보가 보호소 밖의 가족이 있는 세상을 알았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진해유기동물보호소에서 가장 오래 생활했던 유기견 터보가 보호소 박남연 반장과 교감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박남연 반장님이 터보와 교감하는 모습./이솔희 PD/
◇터줏대감 터보= 터보가 유기견 보호소에 온 것은 2016년 봄이었습니다. 진해 자은동의 한 경로당 인근에서 생후 7개월가량 된 어린 강아지가 발견됐는데, 오염된 털은 심하게 엉켜 있었고 길게 자란 털에 뒤덮인 얼굴은 눈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태였죠. 작은 목에 매인 목줄이 가족이 있었음을 짐작케 했지만 공고기간에도 가족들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보호소에 오게 된 강아지는 터보라는 이름을 갖게 됐고, 보호소 식구들과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에 힘 입어 점차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그러나 검은색 믹스견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반려견으로 선호하지 않는 종이었고, 가족을 찾지 못한 터보는 긴 시간 동안 보호소에서 생활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8년이 흘렀고 터보는 보호소 유기견 중 가장 오래된 노견이 됐습니다.
박남연 반장은 “터보가 성격도 순하고 건강한데 입양이 되지 않았다”며 “너무 오래 보고 정이 들어서 가족 같은 존재가 돼서 노견이긴 해도 안락사 명단에도 넣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어느덧 보호소의 마스코트가 된 터보는 반장님의 총애를 받는 특별한 유기견이 됐습니다. 사무실을 자유롭게 오가는 것은 물론 반장님의 빨간색 경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즐기는 호사도 누렸죠. 사람을 좋아하는 터보는 애봉단 봉사자들에게도 덥석 안기고 볼을 부비며 마음을 줬지만, 엄마인 반장님이 출근해서 안아 줄 때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진해유기동물보호소에서 가장 오래 생활했던 유기견 터보가 보호소 박남연 반장과 교감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행복한 이별을 꿈꾸다= 터보가 처음 보호소에 왔을 때 유기견 친구들은 약 60마리였습니다. 지금은 200마리에 가까운 수준이니 8년간 3배가량 늘어난 셈이죠. 유기되는 친구들은 매년 늘어나는데, 이들을 찾거나 입양하는 친구들의 수는 절반에도 못 미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 하반기 창원지역 3개 보호소 통합을 앞두고 터보를 비롯한 노견들의 안녕에 위험신호가 켜진 상황입니다. 통합 보호소에 자리가 부족할 경우 노견들이 안락사 0순위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입양이 쉬운 상황도 아니기에 보호소 직원들과 오래된 봉사자들의 마음은 올 초부터 꽤 불편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지난 6월 중순께 자원봉사자 A씨가 터보의 임시보호를 결정했습니다. 10년 가까이 매주 토요일 보호소를 찾는 A씨는 터보를 입소 때부터 오랜시간 지켜봐온 친구입니다. 창원시는 보호소 내 월령 2개월 미만 또는 10살 이상의 유기견들을 임시보호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A씨는 “현재 반려견이 있는 상황에서 터보를 또 입양하긴 어려워 임시보호를 통해 터보가 가족들과 함께 살 수 있는 준비를 하려고 한다”며 “터보가 집에서 생활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배변훈련이나 실내생활 습관을 전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같이 지내면서 집에서 사람과 함께 사는 방법을 훈련시켜서 입양을 보내는 게 목표”라고 말했습니다.

터보가 임시보호를 위해 봉사자의 집으로 떠나는 모습./이솔희 PD/
터보가 보호소를 떠나던 날, 반장님은 주말 비번임에도 사무실로 출근해 아침부터 터보와 산책을 하고 목욕을 시킨 뒤 품에 꼭 안고 마지막 인사를 했습니다. 보호소와 반장님을 떠나서 살아본 적이 없는 터보 역시 슬픈 눈망울로 발걸음을 쉬이 떼지 못했죠. 보호소 직원들과 애봉단 역시 터보와 마주보고 인사를 나눴습니다.
이날 터보가 타고 떠나는 A씨의 차량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물을 훔치던 반장님은 “섭섭하기도 하지만 기쁘기도 하다”며 “터보가 좋은 가족을 만나서 꼭 행복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터보는 A씨의 집에서 적응을 하며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A씨는 품종과 색상을 따지지 않는 해외에서 터보의 입양처를 물색하는 중입니다.

신문사 애봉단이 유기견들의 간식을 주며 교감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해마다 늘어나는 노견들= 진해유기동물 보호소에는 터보처럼 어린 강아지로 입소해 노견이 될 때까지 생활하고 있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진해구 특성상 ‘마당개중성화사업’의 대상지에 포함되지 못하면서 어린 강아지 여러 마리를 한 번에 발견하는 일이 잦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7월 현재 5년 이상 된 유기견이 28마리, 3년 이상 된 유기견이 61마리, 1년 이상 된 유기견이 131마리에 달합니다. 7살 해천이와 모터, 탄탄이, 6살 러뷰와 블랙이 등 터보와 같이 6년 이상 된 노견들은 견사 안이 아닌 복도에서 생활하며 자연스럽게 터줏대감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 모두 오랜 보호소 생활로 집보다 보호소가 더 익숙한 듯 보입니다. 이들은 보호소 직원들의 가족이기도 하고, 장기 자원봉사자들의 오래된 친구이고, 초짜 애봉단을 맞아주는 집주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익숙하다는 게 행복하다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A씨의 집에서 한층 밝아진 터보의 사진을 보면서 보호소에 남아있는 사랑스러운 노견들도 새로운 가족을 만날 수 있길 바라 봅니다.
디지털뉴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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