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며] 계엄의 기억- 양영석(문화체육부장)

기사입력 : 2024-12-04 19:19:13

거실서 TV를 보고 있던 아내가 방에 있던 내게 계엄이 선포됐다고 말했다. 나는 가짜 언론이라고 일축했다. 그랬더니 “지금 TV에 뉴스 속보가 나오고 있다”며 나와 보라고 했다.

설마 하며 나가 보니 정말로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뉴스가 자막과 함께 보도되고 있었다.

얼굴이 상기된 대통령이 긴급담화문을 읽고 있는 화면을 보면서 큰일 났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혹시 북한군이 쳐들어 왔나 싶었다.

재방송되고 있는 긴급담화문을 들어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서란다.

막연히 알고 있던 비상계엄이 뭔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지 급히 스마트폰으로 검색했다.

현행법으로는 계엄 중 국회 해산도 불가능하고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도 유지되고 있으며, 국회의원 과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가 가능하다. 이는 독재정권이나 군부가 민주화운동 진압을 위해 계엄을 남용 못하게 한 장치로, 1987년 민주화 이후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원칙일 뿐 실제 계엄이 발효되면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여순사건, 6·25 전쟁과 같은 전시 상황이거나 대통령이 암살된 10·26사태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계엄 선포가 국가위기 상황이 아니라 군부 독재 세력의 권력 찬탈이나 유지를 위한 수단이었고, 여기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용도로 악용된 사례가 많았다.

그래서 계엄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지극히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5·18민주화운동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사람들에게 2024년 계엄 선포는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을 것이다.

나 역시도 계엄에 대한 기억 속에는 5·18민주화운동이 자리하고 있다.

1979년 12·12 군사반란 후 전두환이 중심이 된 신군부는 ‘서울의 봄’으로 민주화 열기가 거세지자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한다. 이를 규탄하기 위한 집회가 끊이지 않았고,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에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이를 진압하려 투입된 계엄군들은 잔혹한 만행을 저질렀다.

대학 시절 광주 학살 기록·사진을 접하면서 ‘계엄령이 발동되면 이렇게 사람을 막 죽여도 되는가’ 하는 의문을 가졌었다. 그래서인지 국회에서 계엄 해제안이 가결되는 것을 보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불안한 마음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새벽까지 걱정과 두려움으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소년이 온다’의 저자 한강도 잠을 설쳤을 것이다.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소설 속엔 계엄령 하에서 벌어진 비극적 사건과 그로 인해 고통받는 개인과 집단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광주 출신인 그는 “열세 살 때 본 그(광주 학살) 사진첩은 제가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된 비밀스러운 계기가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오는 10일 노벨상 시상식이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다. 시상식을 전후해 한강은 기자회견, 강연, 낭독행사 등을 현지서 가질 예정이다. 그가 계엄 선포까지 간 한국 정치상황에 대해 언급을 할지 주목된다.

양영석(문화체육부장)

양영석 기자 yys@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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