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선언서 우리말로 알리기 25년째… “독립의 참뜻 새겨야”
남해 ‘신독립운동가’ 강호일씨
2000년 언론사에 관련 기고문 실어
신독립운동 필요성·정부 동참 촉구
퇴직 이후 진정한 독립 의미 설파
독립선언서 일어·영문 낭독 예정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국이며, 조선인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한다(吾等은 玆에 我 朝鮮의 獨立國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운동 때 선포한 독립선언서를 이 같은 우리말로 고쳐 시민과 학생 등에게 25년째 알리는 60대 시민이 있다.
주인공은 남해군 설천면 비란마을 강호일(68)씨. 강씨는 독립선언서를 알리는 ‘21세기 신독립운동가’를 자임하면서 진정한 독립의 의미를 깨치고 독립적인 삶을 살자고 외치고 있다.

강호일씨가 자필로 쓴 두루마리 독립선언서를 들고 남해군 설천면 남해 3·1운동 발상 기념탑 앞에 서 있다.
지난 2000년 서울서 회사를 다니던 그는 3·1절을 맞아 서울 일간신문과 남해군 지역신문에 ‘3·1절을 새로운 독립운동의 시작으로’라는 기고를 썼다.
이를 통해 신독립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한 데 이어 정부기관에 동참을 촉구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그는 “해마다 한자어 위주의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기념 노래를 부르는 형식적인 3·1절 기념행사에서 벗어나 실질적으로 그 정신과 내용을 되새기면서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관계 당국에 각성을 촉구했다”고 회고했다.
강씨는 “독립선언서 원문은 어려운 한자가 많아 국민이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따라서 이를 쉬운 우리말로 풀어서 누구나 이해하도록 하고 기억해 일상생활에서 그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 일본으로부터 진정한 독립을 이룩하는 것”이라고 운동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후 그는 일어 번역사로서 기아전자 해외영업팀장으로 일하는 동안 독립선언서를 일본인도 알아야 한다고 판단, 개인적으로 독립선언서를 번역해 일본인 지인들에게 전하거나 설명하는 등 독립정신과 의미를 알리는 데 노력했다. 또 매년 남해지역 주간지에 기고 등을 통해 독립운동을 설파했다.
다시 기치를 든 것은 8년 전 퇴직한 후 귀향하면서다. 남해 설천면은 자신이 태어난 곳이자 남해 독립운동의 발상지라는 것이 상징과 노력을 보탰다. 농사를 짓는 틈틈이 기고와 현장 활동을 통해 본격 신독립운동을 하고 있다.
25년째 묵묵히 독립의 진정한 의미를 설파하는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도립남해대학 원예조경과 재학 중 대학축제에서 링컨 대통령의 ‘게티즈버그연설’을 우리말과 영어, 일어로 낭독했다. “독립운동과 독립정신을 나름대로 전파한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오는 3월부터 진정한 독립운동에 나설 계획이다. 장소는 설천면 문항리 ‘남해 3·1운동 발상 기념탑’. 관광객과 군민 상대로 독립만세 부르기와 한글, 영문, 일본어로 된 독립선언서 낭독, 독립선언서 필사 체험 등을 할 예정이다. 지난 26일 차에서 외발자전거를 꺼낸 그는 “외발자전거는 오롯이 스스로 선다는 독립의 의미이며, 이를 알리기 위해 외발자전거를 배웠다”고 했다.

강호일씨가 남해3.1운동발상기념탑 앞에서 외발자전거와 두루마리 한글, 영어, 일어 독립선언서가 담긴 박스 앞에 서있다.
강씨는 “남해 독립운동 발상지인 설천에 독립선언서 현판이라도 하나 설치하고, 장기적으로는 ‘남해독립운동공원’으로 성역화했으면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후손들이 3·1운동 의의와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서 열강이 경쟁하는 세계 경제전쟁에서 우리 민족의 자존을 지키고 그를 위해 힘을 쏟을 때 비로소 독립이 이루어지고 문화적으로 융성하며 경제·국방에서도 부강한 초일류국가 대한민국이 이루어진다”며 “작은 노력이지만 밀알 같은 씨앗을 뿌리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글·사진= 이병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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