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작업실] (19) 노순천 조각가·설치미술가
소리와 생각을 예술로… 호기심 반짝이는 ‘조각 연구실’
소음·분진으로 골머리 앓던
창원 사파동 반지하 작업실서
2022년 밀양 폐공장으로 이사
작가 5명 자유롭게 공간 공유
밴드 ‘엉클밥’ 멤버로 활동하며
음악에 대한 관심 작품에 녹여
창원 이어 이달 포항서도 전시
“보이지 않는 현상들 계속 탐색”
얇거나 두껍고, 찌그러졌거나 반듯하고, 그런 조각들이 내는 소리. 노순천(43) 조각가의 작품을 보면 어린 시절 쇠 젓가락으로 그릇과 냄비, 컵을 이리저리 두드리던 호기심이 떠오른다. 그의 작업이 그런 식이다. 존재함에도 의식하지 않는 것, 그래서 시도되지 않던 것들. 결국엔 ‘시시한 것’이 되더라도, 젓가락을 든 아이처럼 열심히 두드려 본다. 밀양의 한적한 논밭을 바라보고 선 그의 작업실은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가 뚝딱거리는 연구실과 같다.

노순천 조각가가 밀양에 위치한 자신의 작업실에서 작품 만들기에 집중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밀양 작업실서 온종일 ‘뚝딱’
-작업실이 꽤 큰데, 언제 왔나.
△2022년 3월에 이사를 왔다. 저를 포함한 5명 정도 함께 공간을 쓰고 있다. 주변에 사람이 없어 다들 자유롭게 작업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이전에는 창원 사파동 반지하에서 작업을 했다고. 그쪽에 작가들 작업실이 많더라.
△그렇다. 아무래도 싸고 크기도 제법 되니까 특히 청년 작가들이 들어가서 작업하기 좋은 공간이겠다. 다만 나는 쇠를 갈고 잘라야 하는데 주택가다 보니 소음 때문에 늘 조마조마하게 작업을 해왔다. 저녁 8시 이후론 작업을 못하니까 그런 불편이 있었다. 그러다가 이쪽 작업실 제안을 얻고 고민하다가 들어오게 됐다.
-조각가들이 그래서 공장 작업실을 많이 선호하더라. 들어와 보니 어떤가.
△창원이 집이라 밀양까지 오고 가는 시간이 있다는 것 외에는 대부분 장점밖에 없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소음이나 분진이 발생해도 괜찮으니까 스트레스 없이 작업할 수 있다. 또 다른 작가와 작업실을 같이 공유하니 평소에는 내팽개쳤던 정리 정돈을 억지로라도 하게 되는데, 오히려 좋다(웃음).
-개인 작업실 문에 붙은 사진은 어디서 찍은 것인가.
△가포만이다. 매립되기 전부터 살던 곳이다. 어쩌다가 어머니가 방 한 칸을 구했는데, 20대에 그곳에 들어가게 됐다. 매립되기 전에 바다와 불과 3m정도 떨어진 곳이어서 정서적으로 너무 좋았다. 고등학교도 가포동에서 다녔으니 고교시절부터 청년 때까지 가포에서 추억이 많다. 그런데 매립을 시작했고. 바다가 메워지는 과정들을 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 한 번은 그런 주제로 작업을 했는데 그때 찍은 사진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방이 원래 닭장이었고 예전부터 작가들이 작업실로 썼던 공간이라 하더라. 나에게도 그곳이 첫 작업실이었던 셈이다.

노 작가가 쇠를 갈고 다듬어 만든 작품들./성승건 기자/
-진열대에 있는 사람 모양의 조각들은 예전 작품들인가. 입체이지만 평면으로 보이는 조형물들이다.
△대학 때부터 했던 콘셉트의 작업들이다. 예전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림만 그리다 조소과를 가니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되더라. 근데 판을 자르는 것은 자르는 대로 그 형태가 나오니까 판을 오려서 접거나, 붙이거나 끼우면서 작업을 해왔다. 아예 면이 빠지고 선만 남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고 보니 작업물이 점점 납작해진다. 접어서 벽에 붙이거나 땅에 놔두거나, 그렇게 부조에 가까운 작업이 되고 있더라. 그게 나라는 사람이 가진 기질 같기도 하다.
◇시시하지만 재밌는 것들
-기타와 앰프 등 음악 장비가 많이 있다. ‘엉클밥’이라는 밴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음악과 미술의 두 예술이 서로 영향을 주는 편인가.
△처음에는 분리를 했다. 기획 전시 주제가 있으면 그 주제에 맞추긴 하지만, 보통 미술에 크게 메시지를 담지 않고자 한다. 그런데 계속하고 싶은 얘기가 쌓여서 그걸 ‘엉클밥’으로 분출하게 됐다. 그렇게 하고 싶은 얘기는 음악으로 풀고, 만들고 싶은 것은 만들고 그렇게 분리를 했는데. 밴드를 하며 소리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면서 그게 작품으로도 가더라.
-현재 창원조각비엔날레에 전시되고 있는 ‘조각 합주단’ 같은 작품 말인가.
△그렇겠다. 2016년에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전시를 할 때 테레민(Theremin)이라는 최초의 전자악기로 작업하기도 했는데 그게 ‘소리’로 한 첫 작품이다. 이후에 한동안 안 하다가 몇 년 전에 용기 내어 시도했다. 특히 음악에는 볼륨, 톤, 컴포지션(Composition)과 같은 용어들이 미술에서 조각에 쓰이는 용어와 유사해 두 장르 간 공통점을 느꼈다. 소리라는 것을 조각에 옮겨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조각 합주단’은 경남·전남 청년작가의 교류전에서 처음 봤었는데 이후로도 형태가 발전하는 것 같다.

노순천 조각가./성승건 기자/
△처음에는 다양한 조각들을 두드리거나 긁어서 그것을 녹음해 송출했다. 그런데 ‘합주단’인데 스스로 소리를 못 내는 것이 아쉬워서 스스로 소리를 내는 방법을 고민했다. 키네틱아트(기계장치로 움직이는 작품)가 아닌 다른 방법을 찾고 싶었고, 여러 연구를 하다가 공진 주파수를 이용한 조각의 소리를 찾아내서 그것으로 작품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물체마다 각자의 고유 진동수가 있고 그에 맞는 주파수를 쏜다는 것인데, 조금 어렵다. 바라는 그림이 있을까.
△지금은 실전화기처럼 스피커를 붙여서 진동하는 걸 그대로 내보내든지, 조금씩 띄워서 판을 울리게 해서 그 위에 쇠붙이나 올리는 식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목표는 스피커가 저 멀리 주파수를 쏴서 물건들을 자체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게 목표다. 더 가서는 고유 주파수를 잘 측정해서 공간에 있는 창문이 떨린다거나 그런 현상들을 나타내고도 싶다.

노순천 조각가가 밀양에 위치한 자신의 작업실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현재 하고 있는 작업도 그것의 일환인가. 철판에 얇은 쇠들이 연결돼 있는 모습이다.
△이달 포항에서 전시를 앞두고 있는데 그곳에 전시될 작품이다. 앞선 작업과 같이 소리와 연결된 것으로 작품 제목은 ‘떠는 쇠’와 ‘우는 쇠’다. 각 주파수와 테레민을 이용해 누군가 만지지 않음에도 변화가 발생하는 그런 작업이다.
-요즘 작업들을 보면 숨겨진 현상들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가 있는 것 같다.
△이전부터 비워져 있는 공간, 그곳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보이지 않거나 들리지 않아도 공기 중에 계속 진행되고 있는 어떤 현상이나 움직임들. 그것이 대단한 것이 아니고 시시한 현상들일 수 있는데, 그걸 제어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주변에서 도움도 받고 연구도 하면서 계속해서 이 현상들에 대한 탐색을 이어나가고 그걸 작품으로 보여드리고 싶다.
어태희 기자 ttott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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