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작업실] (20) 배우민 작곡가
거대한 오페라 음악 잉태하는 자그만 골방
진해 아파트 단지에 자리한 작업실
키보드·노트북만 두고 작업 몰두
지역서 풀 오케스트라 섭외 어려워
제작 여건 맞춰 유연하게 작업
지난주 오페라 공연 ‘일사각오’ 때
키보드 설정 달리해 악기 역할 보충
관객으로 꽉 찬 극장, 정교한 오케스트라 연주와 웅장한 오페라 가수들의 합창이 거대한 파도처럼 몰아친다. 수많은 사람들의 협업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드는, 이 거대한 예술은 골방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한 작곡가의 손가락에서 시작된다.
배우민(44) 작곡가의 작업실은 진해의 한 아파트 단지의 작은 골방이다. 10년 넘게 지역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풀어내는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음표들은 모이고 흩어지며, 때로는 강렬하게, 때로는 서정적으로 지역의 정서를 담아낸 주목할 만한 작품들을 만들어낸다.

배우민 작곡가가 창원시 진해구의 한 아파트 단지 주민지원시설 내 작은 작업실에서 작곡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경남에서 살아가는 작곡가
-아파트 단지에 작업실이 있는데 소음 문제 없나.
△제 작곡은 간단히 키보드와 노트북으로 작업이 이뤄지기에 의외로 시끄러운 작업이 아니다(웃음). 많은 사람들이 노래를 맞춰본다고 모이면 모르겠지만 혼자서는 괜찮다. 4년을 이곳에 있었는데 쾌적하게 작업하고 있다.
-키보드 악기와 노트북만 있어 조금은 삭막해 보인다.
△작업실에서는 오롯이 작업만 하려고 한다. 저한테 작곡은 가만히 앉아있다가 영감이 딱 떠올라서 하는 게 아니라 일하는 것처럼 자리에 앉아서 뭐라도 두드리고 하고 있어야지 나오는 작업물이다. 오히려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좋다.

지난 16일 성산아트홀 대극장에서 열린 창작 오페라 ‘일사각오’ 무대. /배우민 제공/

지난 16일 성산아트홀 대극장에서 열린 창작 오페라 ‘일사각오’에서 배우민 작곡가가 오케스트라 지휘를 하고 있다. /배우민 제공/
-키보드가 5개나 있다. 이걸 다 쓰는 건가.
△사실 지난주에 있었던 오페라 ‘일사각오’에서 쓰였던 키보드들이다. 직접 제작한 창작 오페라인 만큼 풀편성 오케스트라를 섭외하기 쉽지 않아 각 키보드 설정을 달리 해서 2옥타브짜리 건반은 팀파니 역할을, 다른 건반은 각각 오르간, 하프, 금관악기 역할을 했다.

배우민 작곡가가 창원시 진해구의 한 아파트 단지 주민지원시설 내 작은 작업실에서 작곡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지역에서 연주자 섭외가 쉽지 않을 텐데.
△연주자들이 수도권에 몰려 있으니 지역에서 구하지 쉽지 않다. 특히 오보에나 바순 같은 악기 연주자들은 더 희귀하다. 이들은 1년 전부터 스케줄을 맞춰놔야 한다. 이 조건들을 다 맞추기가 힘들다. 그렇기에 작곡을 할 때부터 오케스트라의 규모를 염두에 두고 작업하고 있다. 그런 환경에 있어서 그런지 의도치 않게 많이 숙달된 것 같다.
-그런 조건부터 지역에서 창작 오페라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 가곡·실내악 작곡을 해오다가 오페라 창작으로 전환한 이유는.
△2017년 우연찮게 창원광장의 최윤덕 장군 동상을 보게 됐다. 당시는 최윤덕 장군에 대해 알려진 바가 지금보다 더 없었다. 이 인물에 대한 문화콘텐츠를 만들어 보려 하는데, 스토리와 내가 공부해 온 클래식이 공존하는 오페라가 떠올랐다. 그때부터 오페라 창작을 시작했다.
-지역 작곡가는 흔치 않다. 그만큼 지역에서 활동하기 녹록지 않다는 뜻인데, 계속 머무르는 이유가 있나.
△젊었을 때 대도시에 기웃거린 적은 있었다(웃음). 그런데 그쪽의 텃세가 있더라. 내가 있던 곳에서도 자리를 못 잡아서 그런가, 다시 창원에서 무조건 자리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눌러앉았다. 지역에서 나고 자라,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곡가라는 것이 나를 대표하는 키워드가 됐다.

배우민 작곡가가 창원시 진해구의 한 아파트 단지 주민지원시설내 작은 작업실에서 작곡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피아노 학원 운영한 부모님 밑에서
자연스럽게 작곡가 꿈꾸고 이뤄
“내가 쓴 악보로 많은 인원이 무대서
관객들과 영감 주고받는 일 보람
지역 소재 문화 콘텐츠로 제작 사명
작품에 지역 이야기 계속 담아낼 것”
◇지역의 이야기 노래로 전하다
-어릴 때부터 작곡가가 되고 싶었나.
△집에서 피아노 학원을 했었다. 부모님이 음악을 하니 자연스럽게 진로를 그쪽으로 생각했다. 보통 피아노 등 연주를 하다가 작곡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작곡가라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다. 음악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작곡가는 ‘마스터’ 같기도 하고, 희소성이 있지 않나 하는 나름의 개똥철학으로 정했다.
-작곡가로서 가장 큰 보람은 무엇인가.
△모든 프로젝트는 내가 악보를 탈고하는 순간 시작이다. 방구석에서 곡을 썼는데, 눈을 감았다 떠 보니 무대 위에서 100여명 사람들이 그걸로 뭔가를 하고 있는 거다. 세상에 없었던 것 하나를 만들어내서 사람들이 그 기준점을 매개로 힘을 모으는 것. 무대 위에 올라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돌아오는 박수 소리에 우리도 영감을 얻는 것. 그 시작점이 나라는 뿌듯함. 그 한순간을 위해 몇개월간 작곡하게 된다.

지난 16일 성산아트홀 대극장에서 열린 창작 오페라 ‘일사각오’에서 배우민 작곡가가 오케스트라 지휘를 하고 있다. /배우민 제공/

지난 16일 성산아트홀 대극장에서 열린 창작 오페라 ‘일사각오’에서 배우민 작곡가가 오케스트라 지휘를 하고 있다. /배우민 제공/
-악보를 만드는 데 얼마나 걸리나.
△오페라의 경우 대본도 내가 짜고, 그러다 보니 구상까지 치자면 1년 정도 걸리는 것 같다. 오페라 ‘일사각오’는 주기철 목사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인데, 현장을 다니면서 자료를 조사한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대사하는 사람의 입지와 나이를 고려하고, 인물들의 감정을 근거 있게 유추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악보는 이런 것들을 다 생각하고 고치고 또 고치면서 긴 시간 만들어낸다.

배우민 작곡가가 창원시 진해구의 한 아파트 단지 주민지원시설내 작은 작업실에서 작곡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오랜 시간을 들이는 만큼 악보가 중요하다는 말이 아니겠나.
△연주자 입장에서는 곡이 곧 바이블이다. 악보를 해석해서 연주하는데, 연주자나 성악가들이 다 같은 해석을 하지 않는다. 그때 꼭 악보를 찾는다. 작곡가가 무슨 생각으로 곡을 썼나, 우리가 어떤 해석을 해야 하나 묻기 위해. 시작점이고 또 기준점이기에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가곡이나 실내악, 오페라, 뮤지컬 등 과거부터 만들어온 모든 곡들이 지역성을 담고 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곡가이자 지역을 기반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으로서 지역 소재를 문화콘텐츠로 남기는 게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소재를 볼 때마다 마음이 꿈틀꿈틀하는 게 느껴진다. 눈만 돌리면 지역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널려 있지 않은가. 산청 목화 이야기도 그렇고, 요즘엔 진주에서 일본으로 건너갔던 두부 장인 이야기가 재밌다고 생각된다. 앞으로도 스토리가 담겨 있고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오페라나 뮤지컬에 지역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다.
어태희 기자 ttott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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