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작업실] (22) 정진경 아트 커뮤니케이터

예술사람 ‘바인딩’하는 교류 창구

기사입력 : 2025-02-19 21:14:33

작업실 용도 임대 후 갤러리로
한 곳은 작업실 겸 기획실 활용

미술 작가로서 작품 제작부터
학생 교육 콘텐츠 기획도 열심

이혼 후 ‘소통’에 대해 고민
예술 통해 대화하는 방법 찾아

‘파랑새 시리즈’ 전시 준비
소통 결여로 잊었던 소중함 전달

“작가로서 멈추지 않는 사람 될 것
‘바인딩’ 사람들이 찾는 공간되길”


말을 건넨다. 얘기를 듣는다. 서로가 주고받는 비물질적인 교류는 삶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가치를 가진다. 그럼에도 우리는 한없이 서투르다. 상처 주며 다친다. 정진경 작가는 삶의 부침 속에서 교류와 연결의 방법을 찾아낸다. 그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예술을 통해서다. 창원에 위치한 정 작가의 작업실에서는 사람과 연결되기 위한 작품이 탄생하고 예술가와 사람을 연결할 단서가 만들어진다. 작업실의 이름인 ‘바인딩(binding)’은 이것과 저것을 묶어낸다는 의미로서 그의 지향점과 닮아 있다.

지난 17일 정진경 작가가 작업실 겸 기획실인 ‘바인딩’에서 작품을 수정하고 있다.
지난 17일 정진경 작가가 작업실 겸 기획실인 ‘바인딩’에서 작품을 수정하고 있다.

-‘바인딩’은 두 곳이다. 작업실 겸 기획실과 갤러리인데, 두 공간을 같이 시작한 것인지.

△처음 연 곳은 갤러리로 쓰이는 바인딩 한 곳이었다. 2016년쯤 작업실 용도로 임대했는데, 2019년에 공간을 하나 더 늘리며 두 곳이 되었다. 공간 하나는 창고로 쓰이는 것 같아 활용할 방안을 생각했고, 현재의 갤러리 ‘바인딩’을 작가들이 마음껏 작업하고 이를 보여줄 수 있는 놀이터처럼 조성하고자 했다.

갤러리로 사용되고 있는 ‘바인딩’ 전경. 현재 ‘cocktail party’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갤러리로 사용되고 있는 ‘바인딩’ 전경. 현재 ‘cocktail party’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놀이터’라는 표현에는 형식 없는 자유와 즐거움이 느껴진다. 갤러리 바인딩이 추구하는 개념인가.

△미술관이나 갤러리에는 완성된 작품들이 들어오는데, 작가들이 자기 작품을 전시하면서 변화할 수 있는 공간은 찾기가 힘들다. 이곳만큼은 전시도 하지만 작가가 자유롭게 도전하고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했다. 2021년에 그 시작점으로 김근재 작가님과 첫 작업을 진행했는데, 평소 조형 작업을 주로 하시지만 사진도 굉장히 잘 찍으시더라. 그 사진을 조형적으로 디스플레이하는 새로운 시도를 함께 해보았다. 해보니 무척 흥미롭고 좋았다.

-갤러리 ‘바인딩’의 공간 운영자이면서 예술 교육콘텐츠를 기획하는 법인의 대표이기도 하다. 현재 어떤 교육 프로그램을 작업하고 있나.

△지금은 경남도립미술관과 함께 아웃리치 프로그램으로 ‘미술관 밖 미술관’을 기획하고 있다. 지난해는 추상회화 거장인 ‘이준’을 주제로 교육을 진행했다. 이준의 작업 철학, 작업의 방식을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그런 창의적인 사고를 확장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에게 있어 예술 교육의 중요한 점은.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을 알려준다는 의미가 큰 것 같다.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다소 물질적이거나 염세적인 시선을 가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예술가들이 세상을 사유하는 방식과 그들의 시각을 알게 된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더 다양한 관점이 생겨나지 않을까 한다. 나중에 아이들이 더 멋진 어른으로 성장하는데 예술이 기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름의 ‘사명감’ 같은 게 있다.

-예술 교육, 공부가 많이 필요한 일 같은데 작업실 한편에 빼곡한 책장도 공부를 위한 것인가.

△교육을 위한 공부도 물론 필요하고 하지만, 책장에 있는 책들은 개인적인 작업에 많은 영감을 주는 것들이다. 방문객들이 오면 늘 자랑하기도 하는데(웃음) 앤디 워홀의 일러스트집이나 로뎅 스케치북, 다이치 프로젝트 도록 등이 있다.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내 선생님들이다.

-바쁜 와중에 본업에도 충실한 것 같다. 작품을 보면 회화, 행위, 영상, 설치 등 너무 다양한데.

△사실 재료는 내게 중요하지 않다. 말하는 ‘방법’을 찾는 문제가 내게 가장 큰 숙제다. 어떨 때는 몸으로 얘기했을 때 가장 효과적이고 다른 때는 VR 같은 미디어로 얘기했을 때 효과적인 것이다. 그래서 나 스스로를 ‘아트 커뮤니케이터(Art Communicator)’라고 얘기를 한다.

정 작가가 사용하는 페인트와 물감, 공구 자재 등이 작업실 한쪽에 정리돼 있다.
정 작가가 사용하는 페인트와 물감, 공구 자재 등이 작업실 한쪽에 정리돼 있다.

-직역하자면 예술로 소통하는 사람인데. ‘소통’에 중점을 둔 이유가 있을까.

△이혼을 하고 난 후 내게 어떤 과도기가 왔다. 이혼의 상처라기보단 이후 마주하게되는 일들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이 혼란스러운 감정들이 결국 내 아이와 또 소중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게 되더라.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엉킨 실타래 같았다. 많은 이들 또한 저마다의 결핍과 아픔으로 엉킨 실타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작업으로 이어졌다. 이전의 내 작업이 대화에 대한 실험이었다면 이후로는 효과적인 소통 관계를 위한 방법을 찾는 것 같다. 아직도 치유의 과정이기에 이 이야기는 계속될 것 같다.

-작가님의 작품은 ‘내면의 탐구’에서 ‘관계성’으로 점차 확장되는데, 이 또한 그것과 관련이 있을까.

△그보다 더 앞선 이야기이겠다. 과거 내 세계에는 나만 있었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 같은(웃음). 그렇기에 나에 대한 탐구가 주로 이뤄졌다. 뉴욕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가 아이를 가진 후 창원으로 왔는데 그때부터 타인이 내 작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타인이 궁금해졌다. 그들에 대한 생각, 나와 다른 이들의 삶이 궁금해졌다. 그렇기에 아이한테 ‘네가 엄마를 만들었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경주 우양미술관에서 전시됐던 파랑새 시리즈./정진경 작가/
경주 우양미술관에서 전시됐던 파랑새 시리즈./정진경 작가/

-올해 ‘파랑새 시리즈’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나?

△희곡 ‘파랑새’를 모티브로 한다. 남매가 파랑새를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는데 결국 파랑새는 자신들의 집에 있었다는 내용이다. 소통의 결여로 잊고 있던 소중함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이전에 했던 전시에서는 키네틱아트로 사용했는데, 이번에는 김해와 거제에서 전시하는 만큼 각 지역성에 맞춘 내용을 추가하고 재료 또한 증강현실을 더해보고 싶다.

-‘바인딩’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작가로서 목표가 있다면?

△작가로서 멈추지 않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죽는 순간까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길 것이고, 그 이야기를 계속 풀어낼 것이다. 또 바인딩이라는 공간에서 욕심부리는 것은 사람들이 찾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지루하지 않은, 새로운 것들이 언제나 펼쳐지는 공간이길 바란다.

글= 어태희 기자·사진= 전강용 기자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어태희 기자의 다른 기사 검색


  • -----test_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