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파] 선풍기 단상- 이준희(정치부장)

올여름은 유난히도 더웠다. ‘모기도 입이 비뚤어지고 풀도 울며 돌아간다’는 ‘처서(8월 22일)’가 지난 지 한 달이 넘었는데도 더위가 식을 줄 모르더니 요란한 폭우 한 방에 물러나는 듯하다. 문득 올여름 살인적인 폭염에 맞서 하루 종일 쉼 없이 돌아간 선풍기가 대견하고 고맙다. 순간적인 시원함으로 따지면 당연 에어컨이 최고지만 한 달 후 날아올 전기요금 고지서를 생각하면 쉬이 손이 가질 않는 것이 현실이다.
▼1978년 7월 29일자 동아일보에 선풍기와 관련된 재미난 기사가 실렸다. 서울 세운상가 가전제품 판매점에서 500여 명이 뒤엉켜 싸웠다. 찜통더위 속 선풍기가 동나면서 200대를 새로 팔기 시작하자 서로 사려고 난투극이 벌어진 것이다. 당시 국산 선풍기 첫 모델의 1대 값이 당시 화폐로 3만5000환. 지금으로 따지면 약 75만원에 이르렀고, 선풍기 도둑까지 있었다고 하니 그 인기를 실감케 한다.
▼선풍기가 없던 시절, 옛 선비들은 더위를 어찌 이겨냈을까? 남명 조식 선생은 제자들과 함께 지리산 여행을 떠났고, 추사 김정희는 북한산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탁본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다산 정약용의 고상하면서도 우아한 더위 피서법인 ‘소서팔사(消暑八事)’가 유명하다. 솔밭 둑에서 활쏘기, 서늘한 대자리 깔고 바둑 두기, 동쪽 숲에서 매미소리 듣기, 달밤에 개울가에서 발 씻기 등 피서보다는 마음 수양으로 더위를 잠시 잊은 거 같다.
▼에어컨 시대가 열리기 전 더위와의 전쟁에서 선풍기는 단연 최고 인기였다. 이제 여름 가전제품의 왕이던 선풍기 시절은 지나갔지만 여기에는 많은 추억이 새겨져 있다. 어릴 적 서로 선풍기 바람을 차지하려고 싸우던 일, 낮잠꾸러기 손자가 더울까 머리맡에 선풍기를 틀어주시고 대신 할머니는 부채질로 더위를 식히던 기억 등. 이제는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올여름 아무런 고장 없이 더위를 식혀준 선풍기에 다시 한번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겠다.
이준희(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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