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며] 아직 늦지 않았다- 이준희(정치부장)

“2016년 704만 마리, 2017년 343만 마리, 2018년 686만 마리, 2021년 1042만 마리, 2023년 1466만마리. 올해 2672만 마리….”
고수온으로 인한 어류 폐사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양식어민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수년간 애지중지 기른 고기들이 하루아침에 허연 배를 드러내고 떠오르면 하늘이 원망스럽지 않을까? 시커멓게 타들어 가는 양식어민들의 심정을 감히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올해는 9월까지 이어진 역대급 폭염으로 어류뿐 아니라 전복(60만6000마리), 멍게(4777줄·멍게가 붙은 봉줄), 미더덕(614줄), 피조개(374㏊) 등 바다에서 자라는 대부분의 어패류들이 폐사하면서 어가들의 재산피해액도 역대 최고인 594억800만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207억원에 비하면 거의 3배가량 는 셈이다.
다행히 국립수산과학원이 지난 2일 오후 2시를 기해 전국 연안의 고수온 특보를 해제하면서 경남 남해안에 발령된 고수온 특보도 해제됐다. 남해안에 고수온 주의보·경보가 발령된 지 62일 만이다. 하지만 살인적인 폭염으로 폐사한 양식어장의 빈자리는 어민들의 눈물이 대신 채웠다.
지난달 8월 중순 고수온으로 양식 고기를 모두 잃은 한 어민의 넋 잃은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내년 봄 출하를 앞둔 우럭들인데…, 하루아침에 죽어 모두 떠올랐습니다”라며 울먹이던 어민의 표정은 아직도 생생하다.
해마다 여름철 큰 골칫덩이였던 적조 대신 이제는 고수온이 양식업계 어민들의 최대 재앙이 됐다.
고수온 피해는 갈수록 급증하고 대형화하는 추세다. 황토 살포 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는 적조와 마찬가지로 고수온도 제대로 된 대책이 없어 어민들의 속이 타들어 간다. 얕은 수심에서 물고기를 가둬 키우는 해상 가두리 양식 특성상 고수온이 발생하면 저층(7~8m)바닷물을 표층으로 끌어올리는 해수펌프, 뜨거운 햇빛을 가리는 차광막 설치, 양식어류 면역증강제 등이 그나마 대책이지만 큰 실효성이 없어 보인다.
경남도의회에서는 남해안 양식어류 폐사 피해가 급증한 이유 중 하나로 ‘밀식’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이 역시 어민들이 밀식에 대한 의식 개선이 바뀌지 않는 한 소용이 없어 보인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의 정책보험인 양식수산물 재해보험 가입률은 저조해 경남의 양식어가 648곳 중 고수온 특약에 가입한 어가는 113곳에 불과한 실정이다. 국가, 지자체가 보험료 80%를 지원하는 양식수산물재해보험에 가입하면 어민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텐데, 이처럼 가입률이 저조한 것은 아마도 양식어민들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정책 때문일 것이다. 일회성인 데다 보험료를 더 내야 하는 특약을 과연 어민들이 쉽게 가입을 할 수 있을까?
이제라도 경남도는 매년 되풀이되는 고수온 피해를 줄이기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고수온에 강한 대체어종을 개발한다”, “저층 해상가두리 양식을 시범사업으로 추진 중이다”는 말만 하지 말고 양식수산물 재해보험 지원확대, 이상기온 대응장비 마련 등 장기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아픔은 있었지만, 이제라도 제대로 외양간을 고쳐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해야 할 것이다.
이준희(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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