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파] 십상시 소환- 이준희(정치부장)

십상시(十常侍)가 또 소환됐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와 함께 ‘공천개입’ 의혹을 받는 명태균씨가 지난 8일 검찰 조사를 받고 나온 후 언론을 맹비난했다. 명씨는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거짓뉴스, 허위 보도, 그 허위보도를 퍼 나르는 패널들, 방송에 나와서, 그분들이 우리 시대의 십상시”라고 했다. 다음날 검찰 출석 길에도 “왜 언론이 쓴 허위 보도, 가짜뉴스를 가지고 조사를 받아야 하나”라며 언론을 탓했다.
▼십상시는 후한(後漢) 말 영제(156~189) 때 조정을 장악하며 국정을 농락한 환관(宦官) 10명을 지칭하는 말이다. 영제는 십상시에 휘둘려 나랏일을 뒷전으로 미뤘고, 실세 환관들은 황제의 귀와 눈을 막고 매관매직을 일삼았으며 적대세력을 살해했다. 그 부모형제들도 높은 관직을 얻어 위세를 떨쳤다.
▼십상시는 여느 정권을 막론하고 존재했던 것 같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문고리 3인방’과 그를 보좌한 비서진이, 문재인 정부에서는 친문 비서진이 거론됐다. 이명박 정부 때는 형을 통하면 다 된다는 ‘만사형통(萬事兄通)’이라고 불릴 정도로 친형의 위세가 대단했고, 김영삼 정부에서는 아들이 비리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현 정부는 김건희 여사와 그 측근들의 비선 논란이 연일 정쟁의 한 중심에 있다.
▼주로 정치권에서 인용된 십상시라는 표현이 이번엔 언론이 그 주인공이 됐다. 적어도 ‘정치 브로커’ 명태균의 눈에는 언론이 십상시로 보였다는 것 아닌가? 과연 명씨가 이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어디까지 진실이고 어디까지 거짓말인지 수시로 말을 바꾼 본인이 자초한 일은 아닌지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언론도 권력의 유불리가 아닌 국민의 알권리와 공공의 이익을 보도 기준의 원칙으로 삼았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아야 한다. 뉴스의 가치와 중요성을 기준으로 국민을 위할 때 그것이 바로 살아있는 언론이다.
이준희(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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