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며] 최초의 삼도수군통제영- 김성호(통영거제고성본부장)

임진왜란이 발발한 이듬해인 1593년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의 어깨는 무거웠다.
그해 2~3월에는 웅포 일대에서 왜군과 7차례 접전을 치르고 6월에는 견내량에서 해전을 치렀다.
그러는 동안 이순신은 해상 진영을 흉도(胸島)에서 칠천량(漆川梁)으로, 다시 유자도(柚子島)와 세포(細浦, 거제 성포), 오양역(烏壤驛) 등으로 수차례 옮겨 다니다가 최종적으로 7월 15일 한산도 두을포(한산면 의항)로 진영을 옮겼다.
이순신은 그날 난중일기에 “맑다가 늦게 비가 내렸다. 진을 한산도 두을포로 옮겼다.”고 적었다.
이순신은 사헌부에서 근무하던 현덕승이 보내준 편지와 선물에 답서를 보내면서 진영을 한산도로 옮긴 이유에 대해 “호남은 국가의 울타리이니 호남이 없다면 국가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제 한산도에 나아가 진을 치고 바닷길을 막을 계획을 세웠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두 달 뒤인 1593년 8월 1일 선조는 이순신을 초대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했다.
선조수정실록은 이 일을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에 겸임시키고 본직은 그대로 두었다.
조정의 의논에서 삼도수사가 서로 통섭(統攝)할 수 없다 해 특별히 통제사를 두어 주관케 했다”고 썼다.
당시 전라좌수사였던 이순신은 한산도 진영에서 통제사 교지를 받았고 그후 3년 8개월 동안 한산도에서 왜적들을 상대했다.
최초의 삼도수군통제영이 한산도라는 사실은 이처럼 명확하다. 이 외에도 여러 기록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포털에도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의 한산 진영이 최초의 통제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최근 전남 여수 지역 정치권과 일부 단체가 ‘최초 통제영은 여수’라는 난데없는 주장을 펼치면서 역사논쟁을 벌이고 있다.
이순신이 전라좌수사 겸 삼도수군통제사로 제수되었으니 여수의 전라좌수영이 최초의 통제영 아니냐는 것이 여수 측의 주장이다. 당시 한산도는 전라좌수영의 전진기지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최초 통제영’ 타이틀을 둘러싼 갑론을박은 1980년대부터 시작돼 잊을 만하면 되풀이되곤 했다. 해묵은 논쟁인 것이다.
지역의 명예를 높이려는 의도에서 이 같은 주장이 되풀이되는 것은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역사적 진실을 훼손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가을 기운 바다에 드니 나그네 회포가 산란해지고/
/홀로 배 뜸 밑에 앉았으니 마음이 몹시 번거롭다./
/달빛이 뱃전에 들자 정신이 청랭해져/
/자려 해도 잠들지 못했거늘 벌써 닭이 울었구나./
한산도로 진영을 옮긴 어느 가을 밤, 홀로 군영을 돌아보며 적은 이순신의 시에 그 당시 절절했던 심경이 잘 드러나 있다.
충무공 이순신의 유산을 함께 물려받은 두 지역이 최초의 통제영 타이틀로 앙금이 생길까 염려된다.
김성호(통영거제고성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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