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파] 중고 거래- 주재옥(편집부 차장대우)

기사입력 : 2024-06-19 19:40:50
주재옥 경제부 기자

아기가 태어나고 집안에 물건이 늘었다. 쉬는 날 틈틈이 쌓인 물건을 정리했다. 물건을 정돈하고 나니 일상이 단순하고 편안해졌다. 몇 차례 비움으로 비움의 방향도 바뀌었다.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버리기보다 필요한 누군가에게 나누는 것으로 대신했다. 중고 거래를 통해서 말이다.

▼대표적인 중고 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은 ‘판교장터’에서 시작됐다. 판교장터는 당시 카카오의 사내 중고 거래 게시판이 활성화되던 것에서 얻은 아이디어다. IT 종사자 간 제품을 거래할 수 있는 앱으로 만들어진 후 당근마켓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당근마켓 사용자들이 위치 기반으로 자신의 거주지를 인증하는 동네 인증 절차를 거쳐 회원가입을 하면, 반경 4~6㎞ 내외 동네 생활권을 바탕으로 이웃 간 중고 거래가 가능하다. 서로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진짜’ 이웃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당근마켓은 처음엔 단순히 동네 주민과의 중고 거래로 시작됐으나 점차 ‘벌레 잡아 주실 분’, ‘동네 산책하실 분’, ‘가구 옮겨 주실 분’ 등을 찾는 게시물이 늘어나면서 단순 중고 거래 플랫폼이 아닌 이웃 간의 정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중고 물품을 거래할 때도 간식을 챙겨주거나 감사 편지를 남기는 등 뜸했던 ‘덤 문화’도 부활시키고 있다. 여기에 만남의 과정이 후기로 남겨지고, ‘매너’가 ‘온도’로 표시됨으로써 ‘진짜’ 나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들어준다.

▼이 물건이 왜 고유한지, 왜 시장에서 그 값어치를 하는지, 왜 필요한지, 중고 거래에서 중요한 건 물건의 당위다. 물건의 당위가 결정되면 버려질 위기에 처한 물건들이 마지막으로 새로워질 기회를 얻는다. 존재의 가치가 망각되는 것은 필요의 감각을 잃는 것과 같다. 중고 거래가 단순히 필요 없어진 물건을 ‘정리’하고 ‘비우는’ 행위가 아닌 이유다. 나에게 필요치 않은 소유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기다려온 순간일 수 있다.

주재옥(편집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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