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파] 외로운 세기- 주재옥(편집부 차장대우)

기사입력 : 2024-08-19 19:37:01
주재옥 경제부 기자

영국은 2018년 외로움을 전담하는 부처를 세계 최초로 만들었다. 외로움부 설립에는 노동당 의원이던 조 콕스의 희생이 자리하고 있다. 인권운동가 출신이었던 콕스는 2016년 지역구민들과 면담하던 중 총격 피습으로 희생됐다. 사후 영국은 콕스위원회를 설립, 콕스 전 의원의 유지를 이어가기 위해 영국 사회의 사회적 고립을 조사한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후 범정부적으로 고독과 맞서는 최일선 국가가 됐다.

▼16세기까지 ‘외롭다’는 말은 존재하지 않았다. ‘외롭다’라는 표현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코리올레이너스〉에 처음 등장했다. 외로움이 일상을 지배하는 감정이 된 건 20세기 들어서다. 산업혁명 당시 폭발적인 인구 증가로 실업 위기가 발생하면서, 수많은 이들이 인간 가치를 상실했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외로움이 ‘인간 본연의 감정이 아닌 산업혁명이란 새로운 경험을 통해 학습된 감정’이라고 했다.

▼외로움의 시대에 쳇GPT 등장은 혁신적이었다. 인공지능과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20대 여성을 페르소나로 만든 AI 챗봇 이루다는 2020년 출시되자마자 혐오 발언 논란으로 서비스가 중단됐다. 2022년 재출시된 이루다는 41일 만에 누적 다운로드 100만회를 기록했다. 이용자를 보면 10대가 51%, 20대가 38%를 기록해 젊은 층이 전체 이용자의 89%에 이르렀다. 외로운 세대에게 AI 친구는 관계 맺기에 정서적 부담이 없는, 가장 접근성이 높은 존재였던 것이다.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는 21세기를 ‘외로운 세기’라 명명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19~34세 청년 중 5%가량인 약 54만명이 고립·은둔 상태인 것으로 추산된다. 〈외로움의 습격〉 저자 김만권은 말한다. 고립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찾는 것이라고. 인간은 자신의 말이 타인에게 가닿는 데서 ‘존재의 의미’를 부여받는다. 경청이 외로움의 치료약일 수 있다.

주재옥(편집부 차장대우)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주재옥 기자의 다른 기사 검색


  • -----test_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