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파] 가을 단상- 주재옥(편집부 차장대우)

기사입력 : 2024-10-24 19:16:10
주재옥 경제부 기자

봄이 계절의 건너편에 있는 가을에게 편지를 쓴다. 봄이 벚꽃에 대해 쓰면 가을은 덕분에 처음으로 벚꽃을 알게 됐다는 답장을 보내며, ‘코스모스’라는 가을의 벚꽃이 있다고 소개한다. 봄이 다 쓴 편지를 여름에게 건네면 여름이 몇 개월 후 가을에게 전해주고, 가을은 다시 자신이 쓴 편지를 겨울에게 건네 봄에게 전한다. 동화책 ‘가을에게, 봄에게’에 나오는 이야기다. 서로에게 편지를 쓰고 답장을 기다리는 봄과 가을처럼, 닮은 점과 다른 점을 두루 발견하는 사이 계절은 깊어간다.

▼절기는 해가 만들어낸 1년간의 계절 변화를 스물네 개의 이름으로 붙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춘하추동이 들어간 입절기와 기절기 외에도 기온의 특징, 강수·응결 현상, 만물의 변화를 이름에 담았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풍경에 따라 움직이는 마음을 열두 달의 이름으로 정해 달력을 만들었다. 1월은 ‘눈에 나뭇가지가 뚝뚝 부러지는 달’, 7월은 ‘사슴이 뿔을 가는 달’, 10월은 ‘양식을 갈무리하는 달’ 등이다. 자연을 읽어낸 마음이 서로 닮았다는 게 반갑고도 신기하다.

▼‘철들다’라는 말은 바로 이 절기, 제철을 알고 사는 것을 뜻한다. ‘철부지’는 지금이 어느 때인지를 알지 못하니 ‘어리석다’는 의미다. 꽃을 피우지 않은 나무에 열매가 맺히지 않는 것처럼, 결국 철이 든다는 건 지금이 어떤 계절인지를 알고 제때 해야 할 일을 하며 산다는 것이다. 삶도 마찬가지, 때를 알아야 때를 놓치지 않는 법이다.

▼바야흐로 물드는 계절이다. 카렐 차페크는 가을을 ‘쇠락의 계절’이 아닌 ‘순환의 계절’이라고 했다. 자연의 겉모습만 보고 가을을 끝자락으로 여기지만 실은 한 해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낙엽이 진 자리엔 계절이 이어달리기를 하듯, 봄을 품은 잎눈이 숨어 있다. 가을은 닫힌 계절이 아닌 봄을 준비하는 계절일 수 있다. 계절이 있는 한 우리는 매번 기회를 얻는다. 우리 삶을 새로고침해줄, 다시 돌아오는 계절이 있어 다행이다.

주재옥(편집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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