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청춘詩대… 2030 ‘시집’에 빠지다

기사입력 : 2024-07-24 20:59:27

최근 젊은 세대 사이 ‘시’ 트렌드로 자리 잡아
온·오프라인 서점서 시집 판매량 급증
문학계 젊은 시인들 등장… 또래 이목 끌어
요즘 정서 반영된 시 내용에 공감대 형성


해마다 독서율은 눈에 띄게 감소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누군가의 독서 욕구는 사라지지 않는다. 혹은 어떤 이에게는 없었던 독서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움트고 있다. 최근 젊은 세대들의 일상에 ‘시’가 새롭게 스며들고 있다. 매개는 ‘시집’이다.

창원 교보문고 시집 코너에서 책을 살펴보고 있는 사람들
창원 교보문고 시집 코너에서 책을 살펴보고 있는 사람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표한 2023년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1년간 성인 독서율은 43.0%로, 2019년 55.7% 대비 5년 만에 10% 이상 감소했다. 10년 전인 2013년(72.2%)과 비교하면 30%가량 줄었다. 연령별로 살펴보면 지난해 20대(74.5%) 독서율이 가장 높았으며, 30대가 68%로 두 번째를 기록했다. 그렇다면 2030세대는 어떤 책에 관심이 많을까. 다양한 분야 가운데서도 최근 시집에 대한 관심도가 눈에 띈다. 교보문고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시집 판매 비중의 25%를 20대가 차지했으며, 30대는 20.4%로 뒤를 이었다.

큐레이션이 돼 있는 시집들
큐레이션이 돼 있는 시집들

2030세대뿐만 아니라 10대들 사이에서도 시집의 인기가 올라가고 있다. 예스24에 따르면 10대 독자에게 팔린 올해 상반기 10대 한국 시 분야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4.1% 급증했다.

실제로 서점에서도 이 같은 분위기를 체감하고 있다. 이달 초 창원시 성산구 주책방에서 열린 안희연 시인의 시집 ‘당근밭 걷기’ 출간을 기념해 열린 북토크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예약이 빠르게 마감되며 시집에 대한 인기를 실감했다.

주선경 주책방 대표는 “최근 북토크에 오신 분들의 연령층이 다양했는데, 안희연 시인이 젊은 시인인 만큼 세대가 비슷한 분들이 더 많이 오신 것 같다”며 “요즘 젊은 시인들의 시집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나올 때마다 대체적으로 젊은 분들의 반응이 좋았다. 시를 읽다 보면 비슷한 연령대에서 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창원 주책방에 진열돼 있는 다양한 시집.
창원 주책방에 진열돼 있는 다양한 시집.
창원 주책방에 진열돼 있는 다양한 시집.
창원 주책방에 진열돼 있는 다양한 시집.

젊은 세대의 정서를 담은 새로운 언어, 소재, 형식의 시가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시집 판매로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경복 경남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는 “요즘 시에는 판타지적인 요소들이 많이 나오다 보니 시의 내용에 이야기, 서사성이 부여된 것이 많다. 그런 것들이 젊은 독자들에게 재미를 불러일으킨다”며 “MZ세대들이 관심 가질 만한 특성이 젊은 시인들의 시집에 많이 반영되고, 정서를 공감하고 공유하는 일종의 공감대를 확보할 수 있는 차원에서 젊은층의 시집 구매가 늘어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렇다면 2030세대가 느끼는 시의 매력은 무엇일까. 시를 사랑하는 본지 MZ기자들에게 물었다.

먼저 사회부 김용락 기자는 “시를 읽으며 좋은 문장과 깊은 생각을 낚아채다 보면 나만의 세계, 세상이 구축된다고 생각한다”며 “나만의 세상에서 시는 나만 이해하는 밈이 되기도 하고, 나를 달래는 공감의 언어가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경제부 박준혁 기자는 “기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유일하게 고민 없이 읽을 수 있는 글이라는 점이 매력인 것 같다”며 “대상을 다루는 표현이 다채로운 것도 재밌다”고 전했다.


2030 기자들이 추천하는 시집

김용락 사회부 기자= 즐거운 우리집 -이소호

홈 스위트 홈
홈 스위트 홈

홈 스위트 홈은 표면상으론 ‘즐거운 우리집’이란 뜻이에요. 하지만 ‘사실은 전혀 즐겁지 못하다’는 속뜻이 있답니다. 초긍정은 반대의 의미인 것처럼 말이죠. 전형적인 가부장적이고 표현에 서툰 가족이란 집단이 밉기만 했던 적이 있어요. 저와 같은 생각을 해본 우리 세대들에게 추천해 봅니다. 다른 세대라면 어떤 이해를 바라보고요.

박준혁 경제부 기자=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 -사단법인전국유료실버타운협회·포푸라샤 편집부, 이지수 옮김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

일본 노인들의 유쾌한 일상을 담은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 시집 최근에 읽었습니다. 어려운 책들은 생각을 많이 하게 돼 여러 번 읽죠. 머리도 복잡해지고 살짝 피로감도 듭니다. 추천해 드리는 이 시집은 그런 고민이 전혀 없죠. 그냥 웃으며 편하게 읽었습니다. 시집에 나온 시들은 ‘센류’인데요. 일본 정형시 중 하나입니다. 새로운 유형의 시도 알게 되고, 잠깐이라도 웃으면서 글을 읽어 마음이 편했습니다.

노윤주 지방자치부 기자= 네루다 시선 -파블로 네루다

네루다 시선
네루다 시선

대학생 때 네루다 시선 중 시(詩)라는 작품을 처음 접했는데, 그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요. 지금도 이 문장들은 생생히 기억납니다.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시’라는 단어를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글·사진= 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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