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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 탄 여장군’ 김명시 학교길 기록물 훼손

마산 오동동 벽화·안내판 등 4곳

회색 스프레이 뿌려져 시민 공분

시민단체 “견고한 분단 잔재 남아

기사입력 : 2022-08-21 21:21:15

목숨 걸고 독립운동한 게 죄인가”

경찰, 용의자 찾기 위해 수사 나서

최근 독립유공자로 인정된 마산 출신 항일 독립운동가 김명시(金命時·1907~1949) 장군 벽화와 안내판 등이 훼손된 사건이 알려져 공분을 사고 있다.

21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에 위치한 ‘김명시 장군 학교길’. 이곳에 그려진 벽화와 안내판 등 총 4곳이 회색 도료로 훼손돼 있었다. 김 장군의 독립운동 기록을 담은 안내판에 누군가 회색 도료를 뿌려 문구를 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초상이 그려진 벽화에도 얼굴과 이름에 회색 도료가 뿌려져 있는 등 훼손돼 있었다. 이곳 김명시 학교길은 지난 2020년 창원시 양성평등기금 사업의 일환으로 김 장군이 어린 시절 집과 학교인 성호초등학교를 오가던 길에 조성됐다.

21일 오후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 ‘김명시 장군 학교길’의 벽화와 안내판이 훼손돼 있다. 김명시(金命時·1907~1949) 장군은 최근 독립유공자로 인정된 마산 출신 항일 독립운동가이다./성승건 기자/
21일 오후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 ‘김명시 장군 학교길’의 벽화와 안내판이 훼손돼 있다. 김명시(金命時·1907~1949) 장군은 최근 독립유공자로 인정된 마산 출신 항일 독립운동가이다./성승건 기자/

김명시 장군 학교길 옆에 거주하는 김명자(53)씨는 “집 옆에 훌륭한 독립운동가를 기념하는 거리가 있어서 참 좋았다. 독립운동가를 기리지 못할망정 이렇게 크게 훼손하니 참 기가 찬다”며 “주변서 술 마시고 취해 이런 짓을 한 거 같지는 않아 보인다. 아마 최근 이슈도 많이 됐고 사회주의 이력도 싫어서 이런 잘못된 일을 벌인 거 같다”고 한탄했다.

김 장군의 독립유공자 선정을 주도한 지역사회단체는 이념 갈등이 이번 사태를 가져왔다고 보고 있다. 이춘 열린사회희망연대 소장은 “우리 내부에 견고한 분단 잔재가 남아있다. 김 장군 서훈 축하 플래카드를 곳곳에 달았는데 일부 시민들이 시청에 ‘빨갱이 플래카드 떼라’며 민원을 넣어 철거한 사례도 있었다”며 “유공자로 선정되면 이런 고정 관념이 벗어날 줄 알았는데 선량한 이웃들이 왜곡된 현대사로 인해 생긴 잘못된 신념으로 옳지 않은 행동해 가슴이 아프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어 “현재 경찰에 수사 의뢰를 했다”며 “해방 전까지 자유주의자나 사회주의나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한 것은 마찬가지다. 독립운동을 한 게 죄가 되는 나라가 어디 있겠는가”라며 울분을 토했다.

마산중부경찰서는 19일 신고를 받고 벽화를 훼손한 용의자를 찾기 위해 인근 CCTV를 확인하는 등 수사 중이다.

창원시 여성가족과 관계자는 “경찰 조사가 완료되면 이른 시일 내 복원을 진행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21일 오후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 '김명시 장군 학교길'의 벽화와 안내판이 훼손돼 있다. 김명시(金命時·1907~1949) 장군은 최근 독립유공자로 인정된 마산 출신 항일 독립운동가이다./성승건 기자/
21일 오후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 '김명시 장군 학교길'의 벽화와 안내판이 훼손돼 있다. 김명시(金命時·1907~1949) 장군은 최근 독립유공자로 인정된 마산 출신 항일 독립운동가이다./성승건 기자/

한편, 김명시 장군은 19살이던 1925년 모스크바 공산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1927년 중국 상해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하얼빈 일본 영사관 공격을 주도했고, 조선의용군 여성부대를 지휘하면서 ‘백마 탄 여장군’, ‘조선의 잔다르크’로 불렸다. 활동 이력과 광복 후 행적이 불분명하다는 등 이유로 그동안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열린사회희망연대가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근거 등 관련 자료를 밝혀내 재심의를 신청한 결과 올해 광복절을 계기로 지난 12일 건국훈장 애국장에 포상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박준혁 기자 pjhnh@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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