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박한 산청 대형산불 현장] “역풍 불길에 갇혔다가 간신히 빠져나왔다”
진화대원, 장비 두고 혼신의 탈출
“강풍, 인명사고·진화 지연 원인
물차 급수 등 어려움에도 최선”
“산불 진화 중 갑자기 역풍이 불면서 불길에 휩싸였다가 겨우 탈출했습니다.”
산청 대형 산불 현장에 투입된 진화대원들은 강풍으로 진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사고 위험에 내몰리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24일 낮 12시께 하동군 병천리 옥천관 임시 대피소. 점심을 먹기 위해 잠시 틈을 낸 산불전문예방진화대 대원들의 화두는 ‘강풍’이었다.

산청군 산불 발생 사흘째인 23일 오후 시천면 신천마을 야산에서 소방대원이 잔불 정리를 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산청 산불로 지난 22일 창녕군 소속 진화대원 3명과 공무원 1명이 불길에 고립돼 목숨을 잃었다. 남해군 소속 최낙영(58) 진화대원은 비슷한 시간대 자신도 강풍으로 인해 불길에 고립됐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털어놨다. 최 대원은 “당시 부사수 한 명과 호스로 불길을 진화 중이었다. 갑자기 역풍이 불었고 뒤쪽 불이 커지면서 우리 쪽을 덮쳤다”고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뒤에서 호스를 잡고 있던 대원이 빠져나오라고 소리쳐 주변을 둘러봤을 땐 자욱한 연기밖에 보이지 않았다. 급한 김에 호스로 몸을 적신 뒤 갖고 있던 장비들을 버리고 겨우 빠져나왔다”며 “2~3시간 뒤 돌아간 현장은 새까맣게 탄 호스가 있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났을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같은 남해군 소속 오수철(55) 대원 역시 강풍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오 대원은 “7년간 활동하면서 이렇게 큰 불은 처음 봤다”면서 “첫날부터 계속된 강풍으로 불이 옮겨 붙어 진화에 어려움이 있었다. 진화대원이 숨진 것도 갑자기 불어닥친 강풍 때문에 불길이 확 바뀌면서 고립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밀양에서 온 이병성(69) 대원은 “오늘 첫 투입이 예고돼 있었으나 강풍에 일단 대기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며 “어제와 비교해 진화율도 크게 진전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피소에서 만난 의령군 소속 전종천(30) 대원은 얼굴이 검은 재로 새까맣게 얼룩져 있었다. 전 대원은 “오늘도 계속 강풍이 불어 작업이 쉽지 않다”며 “물차 급수가 잘 안 되는 등 어려움이 있지만 힘들어도 해야 할 일이니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원은 “지휘부가 진화 작업 전에 강풍에 대한 위험성을 충분히 전달하지 않았다”며 현장 지휘부의 미비한 점을 지적했다. 또 “지휘부는 현장에 투입하라고만 말했지 산세 험난도나 강풍을 조심해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며 “방화복이라고 지급하는 옷도 사실상 방연복 기능밖에 하지 못한다. 방연 마스크 보급도 늘려야 한다”고 호소했다.
산불이 발생한 산청 지역 최대 풍속은 △21일 초속 17.1m △22일 16.5m △23일 8.3m를 기록했다. 24일은 최대 초속 10~16m의 바람이 불었다.
김용락 기자·진휘준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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