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대형 산불] 송두리째 탄 터전… 잿빛 시름만 남았다
‘마을 복귀’ 시천면 중태마을 주민
“첫날 물·전기 안 나오고 탄내 진동
논밭·묘지 전부 불타 생계 막막”
그을린 백구 등 화마 상처만 남아
“어떻게 키워온 감나무인데… 불에 다 타버려서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못 알아보겠어.”
25일 오후 3시께 찾은 산청군 시천면 중태마을. 이곳에는 나흘 전 덮친 화마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21일 진주에 있는 아들 집으로 몸을 피했다가 이튿날 마을로 돌아온 김점이(86)씨를 기다린 건 새까맣게 탄 감 농장이었다.

25일 산청군 시천면 중태마을에 화마가 휩쓸고 간 흔적이 남아있다./성승건 기자/
김씨는 “한평생 중태마을에서 감나무, 밤나무, 제피나무 농사만 지으며 살아왔는데 이렇게 밭이 다 불타버린 건 처음이다”며 착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화재 당일에도 김씨는 한창 밭일에 여념이 없었다. 그는 불이 났으니 대피하라는 산청군의 긴급 방송을 듣고 가까스로 가방만 챙겨 농장을 빠져 나왔다.
김씨는 “큰아들이랑 나한테는 생계였고, 주말엔 작은아들과 딸도 와서 가꾸던 곳”이라며 “여기까진 (불길이)안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무가 전부 다 타버렸다”고 말했다.
김씨처럼 화재 당일 친척 집에 몸을 피했던 최국자(88)씨도 이날 중태마을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마을로 다시 온 첫날에는 집에 물도 안 나왔다. 진화 작업을 하는데 물을 다 끌어다 써야 하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그래도 지금은 물이나 전기가 다시 나와 괜찮다”고 전했다.
조둘임(78)씨는 24일 오후 마을로 돌아왔다. 진주에 있는 아들 집에 대피했던 조씨는 “원래는 마을에 불이 일찍 잡혀서 일요일에 집에 오려고 했는데 탄내가 너무 심해서 다시 돌아갔다”고 말했다.

25일 산청군 시천면 중태마을에 화마가 휩쓸고 간 흔적이 남아있다./성승건 기자/
조씨는 “마을에는 22살에 시집와서 지금껏 살고 있다. 주민들도 다 오래 아는 사이”라며 “화재로 탄 마을을 보니 마음이 많이 아프다”고 한탄했다.
화재 당시 마을에 남겨졌던 조씨의 반려견은 털 군데군데 그을린 자국이 역력했다.
조씨는 “급하게 피하느라 백구를 데려가지 못했다”며 “소방관들이 물이랑 개껌을 주며 보살펴줬다. 다시 돌아왔을 땐 털이 재로 덮여 새까맸다. 씻겨줬는데 지금도 약간 자국이 남았다”고 회상했다.
화마는 조씨가 가꿔 온 밭과 산소도 앗아갔다. 그는 “농장에 고사리밭과 두릅밭이 있었는데 다 타버렸다”며 “밭 인근에 가족 묘지도 2기 있었는데 함께 사라졌다”고 한숨 쉬었다.
김태형 기자·이하은·장유진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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