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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경남신문 신춘문예 '소설' 심사평]

다져진 문장·섬세한 묘사 돋보여

기사입력 : 2020-01-02 07:50:31

올해 소설부문 응모작을 심사하면서 우리 심사위원들은 작품에 드러난 현실의 새로움, 혹은 세계를 향한 시선의 새로움을 주목하고, 이들 새로움을 완미한 형태로 담아내는 솜씨를 따졌다.

다행히 우리는 최종적으로 ‘다가오는 것들’과 ‘누름 꽃’을 두고 논의를 집중할 수 있었다. ‘다가오는 것들’은 해외여행을 하며 멀어지기만 하는 남편과 자신의 집을 지으며 다가오는 남자 사이에서 아내의 일렁이는 내면풍경을 담아낸다. 스스로 자신의 집을 짓는 다른 동물들과 달리, 우리는 언제부턴가 자신의 적소(適所)를 만드는 능력을 상실했다. 배타적 영토권이 아니라, 남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남자의 적소는 우리의 잃어버린 능력을 환기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이야기를 정교하게 얽어 짜는 수완과 언어적 형상화의 수준에서 ‘누름 꽃’의 성과를 주목할 만하다는 데 의견을 함께하고, ‘누름 꽃’을 소설부문 당선작으로 선정한다.

유익서
유익서
황국명
황국명

표제이기도 한 누름 꽃은 생화의 아름다운 원형을 반영구적으로 보존하는 꽃공예의 하나이다. 눌러 말린 꽃은 예사로 상처가 나고 쉽게 부서지는데, 작가는 이런 특성을 상처 입기 쉬운 영혼의 상징으로 삼은 듯하다. 군복무까지 마친 성년이면서도 부모에게 언어적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아들은 유아기에 부모와 정서적 유대를 형성하지 못했고, 성장기의 학교생활과 이후의 서울생활에서 참혹한 일을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참혹한 경험의 실체가 무엇인지 심리상담사도 부모도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데, 이는 아들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경험을 무의식의 심연에 억누른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누름 꽃’에서 이런 자기부정은 부모에 대한 패륜행위로 투사되며, 따라서 아들도 자기 몫의 상처를 견뎌야 하는 짓눌려진 꽃잎으로 그려진다. 생활에 지친 남편이 이제 다 끝내고 싶다고 할 때, 그에게 삶은 고통을 참고 남루를 견디는 나날이라 할 것이다. 성장기에 아버지의 폭력으로 정신적 외상을 입은 아내의 삶 또한 억눌러 온 시간이었다. 그러므로 이들 부부의 삶도 누르고 말린 꽃에 빗댈 수 있음직하다.

‘누름 꽃’은 다져진 문장, 섬세하고 빼어난 묘사가 돋보일 뿐 아니라, 누름 꽃을 완성해 가는 과정과 작중인물들의 일상을 정교하게 섞어 짜는 수법에서도 녹록지 않은 내공을 보여준다. 작가에게 대성을 기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당선을 축하한다.

심사위원 유익서·황국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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