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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고래 해체사- 박위훈

기사입력 : 2020-01-02 07:51:22

만년의 잠영을 끝낸 밍크고래가

구룡포 부둣가에 누워있다


바위판화 속 바래어가는 이름이나

호기심으로 부두를 들었다 놓던 칼잡이의 춤사위이거나

잊혀지는 일만큼 쓸쓸한 것은 없다

허연 배를 드러낸 저 바다 한 채,

숨구멍이 표적이 되었거나

날짜변경선의 시차를 오독했을지도 모를 일

고래좌에 오르지 못한 고래의 눈이

칼잡이의 퀭한 눈을 닮았다

피 맛 대신 녹으로 연명하던 칼이

주검의 피비린내를 잘게 토막 낼 때면

동해를 통째로 발라놓을 것 같았다

조문은 한 점 고깃덩이나 원할 뿐

고래의 실직이나 사인(死因)은 외면했다

주검을 주검으로만 해석했기에 버텨온 날들이

상처의 내성처럼 가뭇없다

바다가 고래의 난 자리를 소금기로 채울 동안

고래좌는 내내 환상통을 앓는다

테트라포드의 느린 시간을 낚는다

주검의 공범인 폐그물도 인연이라고

수장된 꿈과 비명 몇 숨 그물에서 떼어내자

반짝, 고래좌에 별 하나 돋는다


바다의 정수리

늙은 고래의 흐린 동공에 맺힌 달,

조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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