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돌아왔다, 귀향시대] (11) 거창에 살어리랏다
우리의 꿈 담긴 거창한 밥상·농업으로 ‘지속가능한 삶’ 일굽니다
지난달 겨울 끝자락에 찾은 거창군. 근래 내린 눈이 읍내에 미처 다 녹지도 않았는데, 로컬푸드 가게인 ‘거창담다’는 많은 손님들로 활기가 넘쳤다. 이 가게는 사회적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데, 가게 안팎으로 ‘농업과 밥상을 잇다’, ‘지역 농업을 살리는 고마운 소비자입니다’ 등 안내 글귀가 곳곳에 적혀 있다. 내부에는 거창 농민들이 만든 식재료를 사기 위해 찾아온 손님들이 가게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당근 한 봉지라도 이 가게를 들러 사가는 손님부터 사과와 딸기 등 양손 무겁게 사가는 이들도 많았다.
로컬푸드 매장 물류팀장 신행재씨
타지서 대학 졸업 후 요리사로 10여년간 일하다 친구 권유로 귀향
로컬푸드 매장 ‘거창담다’서 물류팀장 맡아 생산-소비자 연결 역할
푸드트럭·반찬사업·요리 협업 등 먹거리 사업단서 다양한 사업 진행
즐거운 일 많고 생활하는 데 부족함 없는 고향에 정착해 살고 싶어

거창군 거창읍에서 로컬푸드 가게인 ‘거창담다’에서 물류팀장으로 일하는 신행재씨가 상품을 정리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거창 농업과 밥상을 잇는 신행재씨= 손님을 맞느라 분주한 직원 중에 이번에 만난 귀향 청년이 있다. ‘거창담다’에서 물류팀장으로 일하는 신행재(34)씨다.
거창 황산마을에서 나고 자라 10년 가까이 타지 생활을 하며 요리사로 살아온 그는 지금 고향에 내려와 지역 생산 먹거리와 소비자를 이어주는 일을 하고 있다. 요리사였던 그가 지역 먹거리에 집중하니,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해 더욱 건강한 식재료를 제공할 수 있었다.
신행재씨는 “로컬푸드 매장은 농사를 짓는 농가의 희망 같은 곳이라고 생각한다”며 “농민들에게는 힘이 되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신씨는 초·중·고교를 거창에서 나온 뒤 대구로 대학을 진학해 호텔조리학과를 졸업했다. 그의 어머니가 황산마을에서 한식당을 운영하고 있어 요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신행재씨가 황산마을 입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본인 제공/
그는 “가족이 요리 솜씨가 뛰어나다. 그래도 저도 고등학생 때 요리학원을 다녔다”며 “대구, 경기도 평택 등지에서 10년 정도 요리사로 일했다”고 말했다.
그는 “요리사 생활이 힘들고 지치고 했을 때 마침 친구가 로컬푸드 매장을 권유해 줘서 귀향을 결심하게 됐다. 여러모로 시기가 잘 맞았던 것 같다”고 전했다.
신씨는 “지난해 1월 입사해서 이제 1년 넘게 일을 했다. 거창에 소규모 농사를 지으시는 분들은 어디 판매할 데가 마땅히 없으신데 소비자와 연결고리 역할을 할 때 뿌듯하기도 했다”며 “신선하고 갓 생산한 농산물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다”라고 말했다. 또 “거창에서 생산하지 않는 농산물은 타지 유기농 등으로 구해오기도 한다. 먹거리 사업단이라고 해서 반찬사업도 하고 푸드트럭 사업도 하고 있고, 다른 요리사들과도 만나서 협업하기도 한다. 즐거운 일들이 많다”고 했다.
그는 지역 먹거리로 어떤 음식들을 요리하느냐는 질문에는 “가게 식재료로 딸기청이나 사과샐러드, 사과 떡볶이를 요리하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너무 바빠서 요리를 많이 하진 못했다”라며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 “도시생활을 할 때와 비교해 마음이 많이 따뜻해진다. 지내는데 부족함을 못 느끼고 있다. 이제는 거창에 정착해서 살고 싶은 마음이다”고 덧붙였다.
귀농·귀촌 청년단체 대표 박영민씨
첫 직장서 22개국 출장 다니며 지역 발전 사례 등 견문 넓혀
지속가능한 삶 꿈꾸며 유년 시절 생활권이었던 거창에 귀향
청년단체 만들고 농업·로컬 비즈니스 결합한 프로젝트 추진
새롭게 시도하기 좋아… 사람들과 건강한 연결 이어가고파

경남도립거창대학 창업보육센터에서 ‘덕유산고라니들’의 대표를 맡고 있는 박영민씨가 지속가능한 농업 모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지속가능성’ 찾아 거창 찾아온 박영민씨= 거창읍내 경남도립거창대학 창업보육센터엔 거창 귀농·귀촌 청년단체의 사무실이 있다. 그 단체 ‘덕유산고라니들’의 대표를 맡고 있는 박영민(37)씨를 만났다.
그는 취재진에게 “저는 계절 따라 농사짓는 농부라 요즘 같이 폭설이 올 때는 아무것도 못한다”며 “서류에 파묻혀 있는 것도 귀향 농부들의 찐(진짜) 모습”이라며 이곳으로 이끌었다.
박씨는 유년 시절 진주와 함양 등에서 자라며 생활권이 같은 거창을 자연스럽게 오갔다. 고향인 경남으로 귀향하며 거창을 택했다.
그는 “대부분 청년이 그렇듯 학업과 취업으로 인해 더 넓은 세상으로 자연스럽게 밀려났다”며 상경 때를 회상했다.
“서울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죠. 다양한 아르바이트 경험부터 스타트업 발굴 육성, 창업 교육, 사회적 기업 멘토링 등 분야에서 일하며 도시 직장 생활을 경험했습니다. 첫 직장에서 공무국외연수를 기획·운영하며 전 세계 22개국을 출장을 다니며 다양한 지역 발전 사례와 견문을 넓히는 기회도 있었어요. 이러한 경험들이 오히려 농업과 로컬비즈니스에 대한 관심을 키웠던 것 같아요.”
박씨는 서울에서 다양한 기회를 얻고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지속가능성에 대한 갈증은 커져 갔다고 했다.

지난해 박영민씨가 ‘우프(wwoof) 호스트’를 통해 거창을 찾아온 외국인들과 사과밭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그는 “일복이 넘쳐서 그런지 항상 야근이 일상인 직장만 다니게 됐고, 서울에 집 없는 서러움으로 인해 물가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는 벌이로는 늘상 제자리걸음이었다”며 “15년 동안 서울 안에서 이사만 8번 한 것 같다. 마지막에 이사할 때는 너무 지겨워서 초가집으로 가더라도 가능하면 오래 살 수 있는 곳으로 가야겠다 싶었다”고 했다.
그는 귀향을 결심한 데 “가장 큰 이유는 삶의 지속가능성 때문이었다. 먹거리를 직접 생산하는 자급자족의 삶,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실현하고 싶다. 그렇게 연이 닿았던 곳, 그 시작점이 거창이었다”며 “그 동네가 그 동네인지라, 역시 고향 냄새라고 할까? 익숙한 말투, 적막, 소음, 풍경. 산골 촌놈은 산골에 있는 게 맞는 것 같았다”고 했다.
박씨는 귀향 후 ‘퍼머컬처(Permaculture·영속 농업)’ 방식으로 자신의 농장을 꾸려가고 있고, ‘우프(wwoof) 호스트’에 지정돼 여행객에게 자원 봉사를 받고 잠자리를 제공하는 등 교류도 하고 있다.
그는 “지속가능한 농업 모델을 실험하고 있다. 다양한 청년들과 함께 농업, 로컬 비즈니스, 네트워킹을 통해 사는 지역을 청년 친화적인 지역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덕유산고라니들은 10명의 귀농·귀촌 청년들이 모여 있으며, 농업과 로컬 비즈니스를 결합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최근에는 행정안전부의 청년마을 만들기 공모사업을 지원해 선정을 위해 노력 중이다.
그는 “거창에는 국립공원 3개로 둘러싸인 천혜의 자연환경과 따뜻한 지역 공동체, 그리고 선구자 선배님들이 있다”며 “단순한 농촌이 아니라 인구가 집중적으로 읍에 몰려 있어, 면 단위의 농촌 자연생활과 읍에서의 도시생활이 가능한 지역이라고 할까? 새로운 시도를 시작하기 좋은 지역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박씨는 “제가 거창에 적응하게 된 배경에는 따듯한 연결과 손길의 연속이었다. 만났던 모든 분들이 도와주셨다고 해도 될 정도”라며 “귀농·귀촌이 막막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미 지역에서 활동하는 청년들과 연결된다면 더 쉽게 정착할 수 있다. 결국 세상 모든 일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인도에 숨어들어 혼자 고립되는 것을 꿈꾸는 게 아니라면, 사람들과의 건강한 연결이 삶을 반짝이게 해 줄 것”이라고 조언했다.
◇거창군 청년정책= 거창군은 여러 청년 정책을 추진하며 지난달 ‘대한민국 청년친화도시’로 지정되는 성과를 거뒀다. 군은 청년 네트워크와 청년 정책위원회 등 청년 정책 거버넌스를 적극 추진해 청년들의 주체적 사회참여를 도모했고, 청년거점공간인 ‘거창청년사이(42)’를 중심으로 청춘수업, 경제교육 등 청년 수요에 맞춘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청년의 역량 강화와 성장을 지원해 왔다.
청년친화도시 지정 기간은 5년이며, 5년간 총 10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될 예정이다.
군 인구교육과 관계자는 “지역 청년과 주민공무원 간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가시적인 청년정책 성과를 창출함으로써 농촌형 청년친화도시 모델로서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청년친화도시 지정은 지역 소멸 위기 속에서 도시가 아닌 지역에서 희망을 가지고 청년이 주도적으로 지속 가능한 지역을 만드는 전국 모범 사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지역에서 희망을 가지고 청년이 주도적으로 지속 가능한 지역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적극 돕겠다”고 했다.
김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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