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모며] 하키파이트- 양영석(문화체육부장)

기사입력 : 2025-03-05 19:30:34

아이스하키는 빠른 스케이팅을 바탕으로 퍽을 다투는 과정에서 거친 몸싸움이 빈번히 벌어지는 스포츠다.

상대 선수를 몸으로 밀쳐내는 강렬한 보디 체킹이 자주 일어나며, 1:1 주먹다짐까지 허용되는 드문 종목이기도 하다. 언뜻 보기에 과격해 보이지만, 이른바 ‘하키파이트’로 불리는 맨손 싸움은 선수들이 격분한 상태에서 스틱 같은 장비로 상대를 심각하게 다치게 하는 극단적 상황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이자 일정 부분 정당화된 규칙이기도 하다.

지난달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가 주최한 4개국 대항전에서 미국과 캐나다의 예선 경기가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렸다. 경기 시작 전 울려 퍼진 미국 국가에 현지 관중들은 거센 야유를 퍼부었는데,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잇단 관세 폭탄과 ‘캐나다는 미국의 51번째 주(州)가 돼라’는 조롱 등으로 인해 커진 반감이 폭발한 결과였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에 대한 25% 관세 부과를 예고한 뒤 한 달 유예한 이후 캐나다 전역에서 미국 제품 불매운동이 번지며 반미 정서가 확산되는 상황이었다.

결국 양국 간의 정치·경제 갈등은 얼음판 위에서 폭발했다. 아이스하키에서 선수 간 난투극은 드물지 않은 일이지만, 이 경기에서 강도와 빈도는 역대급이었다. 경기 시작 2초 만에 주먹다짐이 벌어졌고, 9초도 채 되지 않아 세 차례에 걸쳐 하키파이트가 이어졌다.

이 경기 중계를 미국과 캐나다에서만 1000만명 이상이 시청했으니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것은 당연하다.

국가 간 감정싸움이 스포츠에 투영되면 경기가 더욱 극적으로 전개돼 팬들의 흥미를 배가시킨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테니스 경기, 중국과 대만의 탁구 대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축구 시합이 각별한 주목을 받는 이유다.

스포츠가 과도하게 정치화되는 것은 경계해야 하지만, 승부욕 자체는 적대적 국가 간의 갈등을 건설적으로 분출시켜 긴장을 완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때로는 과열돼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그것 역시 경기장 내에서 일어나는 제한된 상황이다.

문제는 모든 교류가 사실상 단절된 채 군사적 긴장이 높아져 스포츠라는 완충장치가 작동하기 어려운 남북한 관계다. 휴전 상태가 지속되는 한반도에서 남북 간 스포츠 교류는 그동안 여러 차례 긴장 완화와 평화 분위기 조성에 기여해 왔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 남북관계는 화해나 화합을 모색하는 어떠한 움직임도 찾아볼 수 없어 적대적 감정만 누적되고 있다.

냉전 시대 미국과 중국의 ‘핑퐁외교’가 보여주듯, 스포츠는 복잡한 정치 대립을 풀어내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상대국을 향해 적대심만 키우기보다는, 경기를 매개로 자연스럽게 교류의 물꼬를 트고 궁극적으로는 관계 개선의 전기를 마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8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북 단일팀 구성,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 공동 입장 등은 스포츠가 대화와 화해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음을 잘 보여준 사례로 국제사회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하키파이트’가 선수들의 극단적 충돌을 미연에 방지하듯, 남북 관계에서도 스포츠가 해빙의 계기를 열어주는 장치로 활발하게 작동하기를 기대한다.

양영석(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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