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주년- 경남 독립의 역사와 더 큰 미래로] ① 프롤로그
채우지 못한 이름, 채워야 할 역사
경남에는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피와 땀이 스며 있다.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장터와 독립을 위해 국경을 넘나들며 투쟁했던 이들의 흔적은 경남 곳곳에 남아 있다.
하지만 기록되지 못한 이름들은 아직 역사의 빈칸으로 남아 있다. 미서훈 독립운동가와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재조명은 절실하다. 2025년은 광복 80주년을 맞는 해이다. 1945년 8월 15일, 독립의 기쁨은 이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80년이 흐른 지금, 그 기억은 얼마나 선명하게 남아 있을까.
15일 찾은 폐교된 함안군 칠서초 이령분교. 이곳은 1919년 3월 9일 경남에서 최초로 만세운동이 일어난 칠북 연개장터가 있었던 곳이다. 이를 기념하고자 독립운동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하지만 관리가 오랫동안 되지 않아 태극기는 찢어져 있었으며, 낙엽과 나무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폐교된 학교 안이라 들어갈 수 있는 길조차 없었다. 역사적 의미가 크고 경남의 3·1운동에 기폭제 역할을 했지만, 방치된 상황이다. 독립의 역사가 지자체와 주민들의 기억 속에 잊혀 있는 현실을 보여줬다.
경남신문은 광복 80주년을 맞아 도민과 함께 잊힌 독립의 역사를 기념하고자 한다. 경남의 독립운동 현장을 찾고 미서훈 독립운동가들과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재조명할 것이다. 이를 통해 광복의 역사를 되짚어 올곧은 미래로 나아가고자 한다.

경남 최초 3·1 운동인 함안군 칠북면 연개장터 3·9 독립만세운동을 기념해 세워진 3·1독립운동기념탑에 태극기가 찢어진 채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옛 연개장터(위 사진)는 폐교한 칠서초 이령분교 일대이다./김승권 기자/
◇잊힌 이름들, 그들의 역사 기록해야= 경남은 독립운동 중심지였다. 일제강점기 시절 경남은 일본과 가까워 일본인이 많이 거주해 수탈이 심했던 곳 중 하나이다. 개항장인 마산항 등을 통해서도 약탈이 이뤄졌기에 도민들의 반감은 컸다.
1919년 3월 9일 함안 연개장터에서 시작한 3·1운동은 경남 전역으로 퍼졌다. 경남의 3·1운동은 1274명의 순국자가 발생했다. 지역별로는 창원 320명, 함안 227명, 합천 184명, 사천 120명, 밀양 105명 등이다. 전국에서 100명 이상 순국자가 발생한 지역 19곳 중 경남이 5곳이 포함됐을 정도로 격렬했다.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경남 출신 독립 유공자는 1458명(2024년)이다. 경남은 기미년 독립만세의거(3·1운동) 당시 집회가 135회 벌어져 1274명이 순국했지만 관련해 서훈된 독립운동가는 731명이다.
이 같은 사례처럼 독립운동을 했지만 인정받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자료 부족’이다. 독립운동을 인정받는 데 있어 가장 큰 자료는 재판 기록이다. 하지만 1949년 10월 27일 판결문, 처형기록 등을 보관 중이던 진주법원에 불이 나 독립운동가들의 재판 기록이 유실됐다.
또한 지자체나 유족 등이 유공자 인정을 받기 위해 서훈 신청을 했지만, 심사 과정에서 친일 행적 등이 발각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신문의 경우 공무원이나 일본 정부와 관련이 있던 이들의 이름과 직책이 많이 보도됐다. 이에 과거 독립운동을 했지만 이후 공직 등을 맡았다면 서훈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 같은 이유 등으로 경남에는 미서훈 독립운동가들이 1000여명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경남도 관계자는 “미서훈 독립운동가 중 실제 서훈까지 이뤄질 수 있는 대상자는 제한적이다. 도는 2023년 24명을 신청해 6명이 유공자로 인정됐다. 아직 심사가 진행 중인 나머지 신청자들의 진행 과정을 파악 중이다”며 “지자체나 유족 등이 신청한 서훈은 정부의 심사를 거치고 1년에 3회 유공자 선정 결과가 발표된다. 올해 도는 50여명 미서훈 독립운동가를 서훈 신청할 계획이다”라고 설명했다.

경남 최초 3·1 운동이 시작된 함안군 칠북면 연개장터는 현재 폐교한 칠서초 이령분교가 자리잡고 있다./김승권 기자/
◇경남의 여성 독립운동가= “애국가를 부르고 만세를 부르며 남강을 따라오니 왜경(일본 경찰) 수십 명이 급히 달려와 칼을 빼어 쳤다. 기생 한 명이 부르짖어 말하기를 ‘우리가 죽어 나라의 독립을 이룰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다’고 했다. 여러 기생은 모두 태연히 전진해 조금도 두려운 기색이 없었다.” 독립운동가 박은식 선생이 쓴 ‘한국독립운동지혈사’의 일부 내용이다. 경남에는 미천한 신분으로 차별 속에 살았지만, 독립을 위해 앞장섰던 여성들이 있었다.
3·1운동과 국내 항일운동을 비롯해 무장투쟁을 이어간 여성 독립운동가들. 이들은 학생, 노동자, 기생 등 다양한 신분을 가졌다. 신분은 달랐지만 나라의 독립을 바라는 마음은 같았다.
경남의 여성 독립운동가는 59명으로 파악되지만, 이들에 대한 조명은 아쉬움이 남는다. 운동 계열로 보면 △3·1운동 21명 △국내항일 19명 △문화운동 1명 △미주 방면 6명 △중국 방면 2명 △학생운동 10명 등이다. 소외된 이들의 삶을 주목한다.

함안군 칠북면의 폐교한 칠서초 이령분교 뒷편에 세워져 있는 3·1독립운동기념탑./김승권 기자/
◇더 큰 미래로= 올해는 광복 80주년이기도 하지만 한일 수교 60주년인 해이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 이후, 한국과 일본은 경제, 문화, 인적 교류를 통해 서로에게 중요한 파트너가 됐다.
그러나 과거사 문제와 영토 분쟁 등은 여전히 양국 관계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남아 있다. 이런 도전에도 불구하고 60주년은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기회로 나아가야 한다.
60주년을 맞아 양국은 문화 교류 확대, 청년 프로그램 강화, 그리고 기후변화 같은 글로벌 이슈에 대한 협력을 약속한다. 한일 수교 60주년은 단순한 기념이 아니라, 두 나라가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경남신문은 한일 양국의 전문가들을 만나 이 같은 논의를 이어 나갈 계획이다.
〈인터뷰〉 미서훈 독립운동가 선양 나선 박형인 광복회 경남지부장
“유족 찾고 위패 봉안… 독립운동사 편찬 준비 중”

박형인 광복회 경남지부장
광복 80주년을 맞아 지자체를 비롯해 각계각층에서 기념 사업을 준비 중이다. 의미가 큰 해인 만큼 잊힌 역사를 재조명하고, 선양 사업도 활발히 진행해야 한다. 특히 광복회 경남지부는 미서훈 독립운동가 발굴과 독립운동사 편찬을 준비 중이다. 본지는 광복 80주년 의미와 당시 치열했던 경남의 독립운동을 듣기 위해 박형인 광복회 경남지부장을 만났다.
-경남의 독립운동은 치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왜 그런가.
△경남은 일본과 가까워서 일본인이 많이 거주하고 있어 그들의 만행은 극에 달했다. 또한 마산항을 통해 수많은 물자를 수탈했다. 분노에 찬 도민들의 시위는 3·1운동으로 시작해 무장투쟁으로 이어졌다.
이것은 평화시위가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에 대항하는 측면이 강하다. 경남의 독립운동가들은 일본 정부 기관을 습격하고 파괴해 지방 행정을 일부 마비시켰을 뿐 아니라 일본인 지주·상인·자본가와도 투쟁을 이어갔다. 일본인에 대한 고용 거부, 일본 상품 불매운동, 외상금 지불 거부, 소작료 지불 거부 등 일상적 경제투쟁도 함께했다.
경남 지역 3·1운동을 보면 도내 모든 군이 빠짐없이 만세 시위운동을 했다. 각 운동의 발생지에서는 1회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회 내지 수십회 연속적으로 운동이 전개됐다. 치열했던 경남의 3·1운동은 1920년대 독립운동의 밑거름이 됐다. 경남 지역의 운동 세력들이 결집하는 계기가 마련됐으며 청년단체를 중심으로 노동, 농민단체들이 결성돼 다른 지역보다 더 활발한 활동이 이뤄졌다. 경남 출신 독립운동가들이 참여한 의열단은 1920년에 부산 경찰서 폭파 사건, 밀양경찰서 폭파 사건 등 투쟁을 전개해 독립을 이루고자 했다.
-광복 80주년, 경남도민들이 어떤 의미로 받아들였으면 하는가.
△올해는 광복 80주년일 뿐만 아니라 을사늑약 120주년, 한일수교60주년, 광복회 창립 60주년을 맞는 매우 중요한 해이다. 경남은 자랑스러운 독립 역사가 있다. 과거의 역사를 기억하고, 선조들의 희생을 기려야 한다. 또한 대한민국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신 분들의 노고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또한 앞으로 발굴될 미서훈 독립운동가 등 잊힌 역사 재조명에도 관심을 두시길 바란다.
또한 우리는 평화와 번영을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고, 미래 세대를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미서훈 독립운동가 발굴 등 광복회 경남지부에서 다양한 선양 사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미 서훈이 됐는데도 유족을 찾지 못한 미서훈 독립운동가에 대해서도 대대적으로 ‘유족 찾기’사업이 추진되어야 한다. 올해 광복회 경남지부는 유족 찾기에 나설 것이며, 광복회학술원과 국가보훈부, 언론과 협업해 도내 곳곳에 ‘미서훈 독립운동가 전시회’도 개최할 계획이다.
창원시 성산구에 위치한 경남항일독립운동 기념탑에 독립운동가 위패 봉안 작업도 시작한다. 또한 경상남도 독립운동사 편찬을 위해 각계각층의 의견 수렴과 함께 자료 수집을 하고 있다. 도민들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매달 경남 18개 시군 독립운동가와 명소에 따른 유적지에 대한 콘텐츠를 개발할 것이며 기념 음악회도 준비 중이다.
박준혁 기자 pjhnh@kn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