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나공간] 마산 인문학 쉼터 ‘이은문화살롱’

재미와 의미가 차곡차곡… 창동 골목서 만난 ‘인문학 놀이터’

기사입력 : 2024-08-13 21:38:56

이은혜 이은문화살롱 대표
심리 공부하던 지역민들과
2022년 11월 창동예술촌에
인문학 이해 위한 공간 꾸려

3층까지 기부받은 책 빼곡
북콘서트·가곡 부르기 모임
글쓰기·특강 등 활동 다양

공간 자생력 기르기 위해
카페 운영 등 변화 모색
하반기 ‘이은출판’ 창간 예정

“누구나 편히 들르는 공간
오래 유지되는 살롱 꿈꿔”


공간이 주는 왠지 모를 편안함과 따뜻함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그것도 처음 발을 들여본 낯선 공간에서 말이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집 밖의 공간에서 안락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느꼈다면 당신은 지금 지쳤고 그런 당신을 위로할 무언가가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대개는 사람이다.

최근 지인 덕에 들렀던, 마산 창동예술촌 골목에 자리 잡은 하얀 건물 ‘이은문화살롱’에서였다. 한여름 땡볕에 고개를 푹 숙이고 걷다 어느덧 멈춰 선 지인을 따라 고개를 드니 통창의 문이 반겼다. 커피를 마시러 가자고 하기에 따라나섰는데 얼핏 보아도 카페는 아닌 것 같았지만, 앉을 곳이 있었고 커피도 팔았기에 들어가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에 자리 잡은 인문학 쉼터 ‘이은문화살롱’.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에 자리 잡은 인문학 쉼터 ‘이은문화살롱’.

공간에 들어서면 오른편에는 벽면이 책장으로, 책이 빼곡했다. 곳곳에 테이블이 여섯 개쯤 있었는데 저마다 크기와 모양을 달리했다. 테이블들을 지나쳐 제일 안쪽 테이블로 갔다. 조그만 원탁을 중심으로 빙 둘러 놓인 등받이 의자에 등을 기댔다.

시원한 커피를 받아 들고 땀이 식을 때쯤 10인석 정도는 되어 보이던 입구 앞 테이블이 가득 찼다. 모두 어떤 책자를 꺼내어 펼 즈음 노신사 한 명이 우리 테이블로 왔다. “노래를 좀 불러도 되겠습니까. 피아노 연주도요.” 이곳 공간에서 이뤄지는 가곡 부르기 모임이라고, 공간의 주인장 이은혜(60) 대표가 말을 보탰다. 우리는 서둘러 답했다. “네. 네. 당연하죠.”

공간 내 작은 카페.
공간 내 작은 카페.
이은문화살롱 전경.
이은문화살롱 전경.

노신사는 공간 안쪽 피아노 앞에 앉았다. 모임 참여자들이 선곡을 하면 그는 연주했다. 그들이 노래를 부르면 연주자는 ‘크게’ ‘빠르게’와 같이 지도했다. 커피를 마시러 온 우리 일행은 어느덧 관객이 되었다. 연주자는 곡과 곡 사이 우리에게 “노래 참 잘들 부르지요?”라는 말을 종종 했는데, 그 말이 왠지 모르게 따뜻했다.

2022년 11월 창동에 자리 잡은 이은문화살롱은 인간, 그리고 인간을 둘러싼 주변을 좀 더 폭넓게 이해하기 위한 인문학 쉼터다. 이은혜 대표는 ‘인문학 공동체’라고 소개했는데 필자의 짧은 생각에 공동체는 보다 바쁘게 돌아가는 느낌이 있어 쉼터라는 개념을 써본다.

이곳에 둥지를 튼 것이 2년 전일 뿐 살롱의 역사는 보다 오래되었다. 2016년 마산 서성동에서 심리학 박사인 이은혜 대표가 운영하던 이은심리상담센터 안에서 시작됐다.

“인간의 심리라는 건, 내면이라는 건 그리 간단하지 않잖아요, 심리를 공부하는 사람들끼리 인간과 주변을 좀 더 폭넓게, 깊이 있게 이해해 보자 하는 취지에서 시작됐죠.”

그가 인문학을 택한 건 또 지금의 공동체를 고민했던 건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겪으면서 찾은 해법이었다.

“20년 넘게 심리 상담 일선에서 활동하며 성매매 여성, 위기청소년, 가정폭력 피해자 등 많은 사람을 만나보니, 전문적인 치료도 필요하지만 일상에서의 따스함, 소통, 지지가 많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사람은 풍성한 내면, 자아의 힘이 있어야 세상을 견딜 수 있고 그러면 사회도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인문학 공부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죠. ”

지역에서 심리를 공부하던 40명 가까운 사람들이 함께했다. 학교 선생님, 택시 기사, 지역 상인 등이 다양하게 모여 북콘서트, 철학·예술 강의를 열면서 오늘까지 저변을 넓혀왔다. 단순히 ‘모여서 공부를 한다’는 건지 궁금증이 가시질 않아 되물었다. 이곳은 무엇이며, 어떤 의미냐고.

“인문학은 인간과 인간 주변의 환경에 대한 공부예요. 어렵게 생각하면 한도 없이 어려워지는데, 그냥 생활 속에서 우리와 가까이 있는 것들 속에서 인문학을 찾아내고 발견하고 나누고 하는 거죠. 가장 쉽게는 문학적인 서사로, 또는 예술적인 서사로 풀어내면 조금 더 가깝게 접할 수 있지 않나 싶었고 그걸 추구하고 있어요.”

그는 지식이 지식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지식을 지혜로 바꿔서 즐겁게 이웃과 함께 사는 것, 즉 ‘재미와 의미’가 목표다. 재미를 추구하면서 어떻게 이걸 사회적 의미로 확장시킬 것인가.

이은문화살롱을 다녀간 작가들의 도서들
이은문화살롱을 다녀간 작가들의 도서들
방문객들이 칠판에 붙여놓은 메모지들.
방문객들이 칠판에 붙여놓은 메모지들.

이은문화살롱에서 이뤄지는 인문학 활동은 다양하다. 국내 여러 작가를 모시는 북콘서트를 한 달에 한 번, 앞서 언급했던 가곡 부르기와 동요 부르기 모임, 수필 쓰기와 필사, 치유 글쓰기 모임, 장애·비장애인이 어우러진 남쪽바다합창단 등 정기 모임에 더해서 지역과 관련한 특강들도 줄을 잇는다. 경남의 정치환경, 마산의 길과 인물, 기후생태 문제 등등 다양하다. 얼마 전까지 1년여 진행됐던 장승재 백석대 전 교수의 셰익스피어반, 그 외 만다라 치유작업 등은 잠시 휴식기에 들어갔다.

장승재 교수와 같이 여타 모임에는 내로라하는 고수들이 도움을 주고 있다. 가곡 부르기는 마산에서 오랜 세월 합창단을 이끌어왔던 장기홍 지휘자가 지도를, 치유 글쓰기는 전직 교사였던 이선애 에세이 작가가 진행을 맡고 있다.

이들의 도움처럼 이은문화살롱은 자신이 혼자 만든 공간이 아님을, 이은혜 대표는 거듭 강조한다. 실제로 운영위원장 이하 10명의 운영진이 모임이나 강의 등 운영 방침을 논의하고 서툴지만 결산보고 등을 하며 함께 공간을 꾸리고 있다. 처음 이 인문학공동체의 취지에 공감하고 지지해 주었던 주변인들이다. 2022년 이곳 창동예술촌으로의 이전 때도 신부, 법사, 의사 등 공동체를 응원하는 여러분들이 책과 사재를 기부했기 때문에 공간이 마련될 수 있었다고 단언한다. 이은혜 대표 역시 사재를 턴 주인공이다.

공간엔 운영위원장이 기부한 3000여권의 책이 1층부터 3층까지 층층이 빼곡하다. 2층에는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세 곳 있고, 3층엔 누워서 책을 볼만한 공간도 있다.

독서 모임이 열리는 2층 공간
독서 모임이 열리는 2층 공간

살롱은, 이때까지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지만 언제까지 선의에 기댈 수만은 없고 보다 열린 모두의 공간이 되기 위해 변화를 모색 중이다. 커피 판매도 그 일환으로 최근 시작한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은문화살롱’은 대표 이은혜의 것도, 운영위원들의 것도 아닌 이곳을 찾는 사람들 모두의 공간이기에 이곳을 찾는 이라면 누구든 공간을 꾸려가는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뒀다. 이곳에서 파는 책을 사고 커피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공간에 기여하는 셈이다.

“문화공간들의 딜레마겠죠. 좋은 공간을 운영하려 하지만 경제성이 없으니 미래가 불투명해지는 거요. 사람들을 위해서도, 공간을 위해서도 자생력을 기르는 방법을 고민 중이에요.”

누구에게든 열린, 우리들의 공간이 오래 유지되기를 바람이다. 올 하반기에는 지역 출판사를 통해서 이곳의 이야기, 참여를 원하는 회원들의 글을 담을 반연간지 ‘이은출판’도 창간 예정에 있다.

이은혜 이은문화살롱 대표./성승건 기자/
이은혜 이은문화살롱 대표./성승건 기자/

이은혜 대표의 가까운 목표는, 주변 이웃부터 자주 찾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슬리퍼를 끌고 와서 모임에 참여하고 책을 들춰볼 수 있는 그런. 먼 목표가 있다면 지역사회에 의미 있는 공간이 오래 유지되기를, 대표를 바꾸어도 좋으니 뒤를 이을 사람들이 있기를 바람이다.

“지나다 이은문화살롱이 보이면 그냥 편히 들러주세요. 거창한 것 없이 소소한 공간입니다. 피아노를 쳐도 되고요, 책을 읽고 가도 되고요. ‘이 공간 뭐지’ 싶으시다면 언제든지 설명해 드릴게요. 당연히 참여도 가능합니다.”

이은문화살롱은 마산합포구 오동서 6길 41에 있다. 네이버 밴드에서 이은문화살롱을 검색하면 모임 소식을 알 수 있다.

글= 김현미 기자·사진= 성승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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