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나공간] 창원 티하우스 ‘온은’
茶 함께 즐기는 이곳… 문화가 일상茶반사
차와 함께하는 일상 꿈꾸며
4년 전 창원에 티카페 열어
도구로 직접 차 내려 마시며
사람 만나고 일하고 쉬는 곳
지역 소상공인들과 협업
도자기는 김해 작가의 작품
책 큐레이션은 ‘책방 19호실’
향 제품과 꽃도 지역서 공급
다양한 찻자리 모임 열고
인문학 특강·문화 행사도
“눈치보지 않고 머무는 공간
편견없이 즐기는 공간 될 것”
“사람들이 일상에서 차를 커피처럼 마셨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대부분은 차를 조금 딱딱하게 느끼시거든요. 무릎을 꿇고 먹거나 또는 한복을 입고 먹어야 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받으시는데, 사실 차는 그저 음료예요.”
창원시 의창구 용동로 소재의 티하우스 ‘온은’을 이끄는 이정원(31) 대표에게 ‘어떤 마음으로 이 공간을 꾸렸냐’ 물었다 들은 대답이다. 당연한 말을 당연한 듯이 하던 그에 반해 필자는 대단한 걸 깨달은 듯한 기분이 들어 ‘아!’하고 외마디 탄성을 질렀더랬다.

창원시 의창구 용동로 소재의 티하우스 ‘온은’에서는 손님이 차를 직접 내려 마신다.
평소 차(茶)와 차를 즐기는 이들에 대한 왠지 모를 경외감이 있었다. 다가가긴 어렵지만 늘 궁금했던 차의 세계를 보다 가볍고 쉽게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지척에 있다기에 냉큼 찾은 ‘온은’이었다. 정원 대표 말마따나 ‘차’ 하면 다소 어려운 느낌이 있어서 잔뜩 긴장하고 찾았으나 이날 마주한 건 깔끔하고 세련된, 익숙한 카페의 느낌이었다.

차 도구들과 각종 찻잎들./성승건 기자/
티하우스이니만큼 책 형태의 메뉴판 앞장들에는 차가 자리한다. 커피도 있지만 넷째 장의 아랫부분에 조그맣게 써있어 애써 찾지 않으면 모를 정도다. 차는 서양식의 블렌딩티가 주력이고, 녹차와 호지차 등 동양식 차도 빠지지 않는다. 얼그레이·루이보스 밀크티, 히비스커스크림과 장미가 들어간 히비크림라떼, 헛개라떼, 호지차라떼, 망고말차라떼, 히비스커스에이드 등 차로 만든 다양한 음료, 차와 어울리는 디저트류도 있다. 온은의 시그니처 블렌딩티는 9가지 종류를 대체로 유지하며 때때로 구성을 바꾸는 편이며, 디저트도 정해진 것이 딱히 없이 시즌별, 콘셉트별로 임의 배치된다.
정원 대표는 이곳을 한마디로 ‘차 도구로 직접 차를 내려 먹는 곳’이라고 정의한다. 보통의 카페, 대부분의 찻집에서는 이미 내려진, 원물을 뺀 차를 주전자에 담아 찻잔과 함께 제공하는 곳이 많다. 하지만 온은에서는 원물이 담긴 다관(차 주전자)과 거름망, 차를 식히고 나누는 그릇인 숙우(공도배)와 찻잔이 모두 손님 앞에 놓인다. 내가 선택한 차 종류에 대한 설명지와 정원 대표의 설명도 함께다.

온은의 주력 메뉴인 ‘크리스마스’./성승건 기자/
필자는 이날 온은의 주력 메뉴, 블렌딩티들 중 달달한 계피향이 느껴지던 ‘크리스마스’를 골랐다. 블렌딩티들은 원물 시향이 가능하다. 정원 대표는 차와 도구, 추가로 차를 우릴 물 등을 가져다준 후 앞에 섰다.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에 많이 먹는 재료들 향신료들을 사용해서 만들어진, 크리스마스가 연상되는 차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향신료 안 좋아하시는 분들은 너무 진하게 느끼실 수 있으니까 물 우린 다음 30초 정도 후 바로 따라 드시면 은은하게 드실 수 있고, 진하게 먹고 싶다 하시면 한 1분 정도 우려서 드시면 되어요. 차 주전자는 뚜껑을 꼭 잡아주시고 사용하셔야 돼요. 안 그러면 다칠 수 있습니다.”

각종 찻잎들./성승건 기자/
이제부턴 손님이 자유롭게 차를 만끽하는 일만 남는다. 정원 대표가 생각하는 온은은 ‘사람들을 만나는 곳’이다. 사람을 만나며, 책을 보며, 일을 하며.
차를 음미하며 공간을 둘러보니 차와 관련된 것들로 가득하다. 차 주전자와 숙우(공도배), 찻잔, 거름망과 같은 모든 차 도구부터 차 마시면서 읽기 좋은 책들, 차 하면 필연적으로 떠오를 꽃은 물론 향 제품까지 갖다두었다. 이들 제품은 모두 판매하는 것인데 온은의 것이 아닌, 지역 소상공인들의 소유다. 정원 대표가 제안하며 성사된 협업 같은 것이라고 할까.

각종 블렌딩 티와 찻잎들.
사실 이걸 설명하려고 아까 전 차 설명을 하던 정원 대표의 말에서 생략한 부분이 있는데 ‘찻잔 도자기는 김해에 있는 무무요 작가님이 만든 것으로~’라는 대목이다. 그러니까 도자기는 무무요 작가의 것이고, 책은 창원 사림동에 있는 ‘책방 19호실’의 소유로 책방지기가 시즌별로 큐레이션을 한다. 향 제품은 용호동 가로수길의 센트하우스 ‘옴샨티’의 제품이다. 가게를 꾸몄던 꽃은 경남도청 광장 맞은편 ‘페탈옹트라쎄’가 참여했다.

‘온은’ 한편에 자리잡은 책들. 창원 사림동 ‘책방 19호실’ 소유로, 책방지기가 시즌별로 큐레이션을 한다.
이들 제품을 갖다 놓는 이유는 명쾌했다. 온은이 생겨났던 2020년, 모두가 힘들었던 코로나 시기를 함께 겪으며 지역의 가게들이 뭉쳐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던 결과다.
온은이라는 공간은 단순히 카페를 넘어 차를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여러 찻자리가 마련된다. 먼저 포트럭 티 파티(potluck tea party)인 ‘차차야행’과 ‘다회’가 있다. 차차야행은 기획자가 따로 있고 온은이 참여하는 형태이고 다회는 온은이 주체다. 차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편안히 자유롭게 자신의 차와 찻잔과 다과를 준비해 참여할 수 있는, 찻자리 첫걸음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또 블렌딩 등 차 관련 수업들도 이뤄진다.
최근에는 차와 관련한 ‘꽃.향.차’라는 인문학 특강도 있었다. 정원 대표는 “차를 유용하게, 차를 즐기게 만들어준 역사적 인물들이 있다. 차를 논하자면 차마고도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고, 향을 향유하면서 차를 마시던 귀족문화 등 인문학적으로 풀어낼 것들이 많아 누군가 이야기해주면 차를 더 즐길 수 있겠다 싶었다”면서 “차 관련 업을 하시는 크리에이터의 제안으로 했던 행사인데 반응이 좋아서 이런 자리를 더 마련할지 생각 중이다”고 했다.

차 도구들과 각종 찻잎들.
공간 안팎에서 이뤄지는 모임은 보다 다양하다. 5월엔 한국차의 날을 맞이해 티 테이스팅 프로그램을 벌이기도 했고, 지난해엔 세종시 소재 다과를 연구하는 ‘구수방’과 콜라보해 전국을 돌아다니는 ‘온은유랑단’ 활동도 있었다.
정원 대표는 뭐든 제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이 같은 어중간한 것을 못 참는 태도는 차 분야에도 역시 적용된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차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어느 날은 커피는 색깔이 다 새까만데 차는 색깔이 다 다양하다 싶더란다. 재밌겠다 싶었고 차를 따로 배울 곳이 있는지 찾아봤다. 티 소믈리에를 배울 수 있는 기관이 마침 창원에 있었다. 민간기관이다 보니 전문가 과정에 소요되는 시간은 길어야 8주에 불과하지만 차의 세계는 무궁무진하기에, 2018년 무렵부터 지금까지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차 도구들.
“시작했더니 끝이 없어요. 우스갯소리로 괜히 들어왔다 할 정도로. 하하. 차를 만들고 설명해야 하니까 그 원물이나 차에 대해 나라를 이해해야 하고 도시를 이해해야 하고 역사, 문화, 언어까지 공부해야 하더라고요. 저는 클래스를 늦게 오픈했던 케이스인데, 그 이유는 잘 모르는데 어중간하게 설명하기 싫어서였어요.”
같이 일하는 친구와 함께 다식, 다과도 함께 만들었다면 말은 다했다. 당장 10월이나 11월에는 2~3주가량 블렌딩 티의 고장 유럽에 가서 블렌딩 관련한 클래스를 이수할 계획이다. 보다 나은 온은의 블렌딩 티 수업을 이끌기 위한 노력이다.
어느덧 4년, 온은은 다양한 모습을 그려보며 시즌2를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도 변하지 않는 건 ‘차는 일상이어야 한다’는 가치다. 온은은 ‘돈 많은 사람들이 누리는 것들’로 여겨지는 차 문화에 대한 통념을 깨고 싶다.

창원시 의창구 용동로 소재의 티하우스 ‘온은’.
“일상다반사라고 들어보신 적 있으실 거예요. 그게 차에서 나온 말이거든요. ‘일상에서 차나 식사를 하는 것처럼 흔한 일’이라는 뜻이에요. 우리가 카페에 갔는데 커피는 싫어서 시킨 캐모마일, 히비스커스, 유자차가 모두 차인 것처럼 생각보다 차는 우리 일상에 많이 묻어 있어요.”
이를 위해 중요한 건 ‘제약이 없는 공간’이다. 차의 접근성이 너무 낮아서 처음 문턱이 높을 수 있으나 가족들이, 친구들끼리 즐길 수 있는 편견 없는 공간이기를. 많은 문화들이 이곳에서 엉켜 있는 모습도 그려본다. 책 보기 좋은, 작업하기 좋은, 혼자 사색할 수 있는 등 모두가 눈치보지 않고 머무는 공간을 꿈꾼다.
글= 김현미 기자·사진= 성승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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