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나공간] ‘읽을 마음’ 북돋아 주는 곳 창원 ‘그랜드문고’

기사입력 : 2024-11-12 20:22:28

1988년 아버지에게 서점 물려받은 후
2006년 창원 정우상가 건물로 옮겨 운영
1963년부터 60년 넘게 한 책방 지켜와
지하로 내려가면 ‘방대한 책들’ 압도

‘오늘의 마음’ 상태 적는 공간부터
편하게 책 읽을 수 있는 ‘책거실’까지
‘서점’ 넘어 ‘문화공간’ 거듭나는 중
책 큐레이션 등 트렌드 공간도 마련

“대형서점 덕에 선택과 집중 가능
책은 가까이 있어야 읽게 돼
동네 서점 있다는 그 자체가 ‘문화’
문화 기여하는 것에 큰 자부심 느껴”


창원 용호동에 위치한 정우상가 건물의 뒤편. 지하를 가리키는 간판이 퍽 새롭다. ‘그랜드문고.’ 아니, 반대로 퍽 익숙하다는 편이 맞겠다. 분명 가본 적 없지만 이미 겪어본 듯한 그런 느낌. 지난여름 가로수길에 청년 문화예술복합공간 스펀지파크 개소에 즈음해 그랜드문고의 팝업스토어가 섰을 때도 그랬다. 왠지 모르게 친근해 괜스레 뿌듯해한 기억이 있다.

인근을 오가며 수없이 스쳤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곳에 서점이 있고 그 이름이 ‘그랜드문고’라는 것을 자연스레 인식했을 것이며, 그것은 나아가 ‘가보았다’는 가짜 기억을 만들어 냈겠지. 어쨌거나 진짜로 그랜드문고를 방문한 건 지난 10월 11일. 한국에서 첫 노벨문학상이 탄생한 다음 날이다. 이날 지하로 향하는 계단에 첫발을 내딛고 나서야 이곳에 처음 방문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창원 용호동 정우상가 지하에 위치한 ‘그랜드문고’. 뒤편 계단을 내려가면 방대한 책이 펼쳐진다.
창원 용호동 정우상가 지하에 위치한 ‘그랜드문고’. 뒤편 계단을 내려가면 방대한 책이 펼쳐진다.

그랜드문고는 이 자리에서만 18년 역사다. 강재식(65) 대표에 앞서 그의 아버지가 서점 운영을 시작했던 1963년부터 셈하면 사람 나이로 환갑이 넘는 세월 동안 자리를 지켜왔다. 서점 규모가 지하 1층부터 3층까지 약 400평에 이르는 만큼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와, 넓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근래 들어 작은 규모의 ‘동네책방’을 더 많이 볼 수도 있거니와 ‘지역서점은 작다’는 편견을 가졌던지도 모른다.

강재식 대표는 2000년대 들어 교보문고가 지역으로 진출하면서 많은 독자들에게 ‘책의 세계가 이만큼 클 수 있다’는 인상을 주었고, 자신도 그 사실에 매료돼 규모를 키웠다고 회상했다. 그의 의도처럼 그랜드문고에서는 소설, 에세이, 철학, 역사 서적부터 종교, 과학, 요리, 학습서, 만화 등 나열하기 힘들 만큼 방대한 책들을 만날 수 있다. 필사 책, 뜨개질 도안, 악보, 색칠놀이, 수수께끼, 퍼즐 등 예전 서점에서 만날 수 있던 다양한 분야의 참고서와 교구들도 진열돼 있다. 소파 의자가 곳곳에 즐비하고, 사다리, 발 받침대 등도 쉽게 찾아볼 수 있어 고객들은 원하는 책을 천천히 둘러볼 수 있다. 한쪽엔 마트용 플라스틱 바구니가 쌓였기에 물으니 역시나 고객용이다.

창원 ‘책 그랜드문고’.
창원 ‘책 그랜드문고’.

여기서 잠깐 [무나공간]으로 담는 곳들은 적어도 기자의 심신에 안정을 가져다주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밝혀둔다.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 어디 없나/ 가만히 놔두다간 끊임없이 덧나’를 외치던 모 노래가사에 견줘 어떤 이유에서건 심신을 치유해 줄 공간이라는 소리다.

그러한 지면에 그랜드문고를 담아내야겠다고 결심한 건 지하로 들어서던 순간에 끝났다. 두 발쯤 내디뎠을 때인가 훅 풍겨오던 책 냄새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확신을 준 건 최근 새로 단장한 지하 1층이다.

책 냄새에 이미 두근거리며 계단을 서둘러 내려오면 오른쪽에 1평 남짓한 공간을 발견할 수 있다. 자기 마음을 돌아볼 수 있는 ‘마인드웨이’ 공간으로, ‘오늘 내 마음의 빛깔’이라고 적힌 포스트잇에 오늘의 마음을 서술하고 그에 맞는 감정스티커를 붙여 게시하는 곳이다. 잠시 멈춰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알아볼 수 있도록 한 공간은 이미 그랜드문고를 찾았던 손님들의 손길로 가득하다.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가오픈 중인 ‘책거실’이 자리한다. 빵은 막 구웠을 때가 맛있듯이 책도 막 구매했을 때가 가장 끌리는 법. 집에서는 책이 잘 안 읽히고, 카페는 다소 소란스럽거나 오래 앉아있자니 눈치가 보인다. 그리하여 ‘남의 눈 신경 쓰지 않고 편하게 책을 읽’도록 마련한 공간이다.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인 ‘책거실’.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인 ‘책거실’.

현재 2시간에 3000원, 4시간에 5000원, 책 구매 땐 2시간에 2000원으로 이용할 수 있다. 개인적으론 모두가 공간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책 읽기를 강제할 수 있는 최소한의 담보 같아 마음에 들었다. 이곳에선 원두커피 무제한에 노트북 등 전자기기 사용도 가능하다. 원두와 물 등을 고르라는 직원들 말에 “나는 좋은 거 먹어야 돼”라며 품질 좋은 원두를 고집한 강재식 대표 덕에 ‘커피 맛 보장’이라는 직원들 말을 전한다.

오랜 세월을 건너온 지역의 대표 서점 그랜드문고는 이처럼 서점이라는 제 역할을 다하면서도 ‘책거실’과 같은 문화공간으로 거듭나는 중이다. 이를 누릴 지역민 입장에선 더없이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변화해야만 했을 지역서점의 사정이 아프다. 그런 지역서점의 이야기를 묻겠다며 지난달 말 강재식 대표를 붙잡고 앉았을 때 그는 부드럽지만 예리하게 지난했던 세월을 말했다. “기자님이 저희 서점에 처음 오셨다고 하니, 제가 얼마나 힘들었다는 얘기입니까.” 책을 읽지 않는 시대, 강재식 대표가 아니었다면 그랜드문고는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아버지 뒤를 이은 ‘2세’였기에 가능했다며 농을 던지지만 그의 두둑한 배짱 덕이 컸다는 것을 부인할 순 없다.

창원 ‘책 그랜드문고’ 내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인 ‘책거실’.
창원 ‘책 그랜드문고’ 내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인 ‘책거실’.
창원 ‘책 그랜드문고’ 내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인 ‘책거실’.
창원 ‘책 그랜드문고’ 내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인 ‘책거실’.

그랜드문고가 이곳으로 옮겨오던 2006년은 창원에, 그것도 직선거리 500m 안팎에 교보문고 창원점이 1000평 규모로 들어서던 해이다. 그해 연말 그랜드문고가 비교적 작은 약 400평 규모로 문을 열면서도 ‘맞짱’을 선언했었다는 것으로 그의 배포를 가늠해본다.

교보문고의 지역 진출로 지역의 중소 서점들이 모두 분노하던 때 뜻을 함께하지 않던 강 대표는 되레 표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정말로 교보문고가 들어오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지역민의 입장에서 보면, 내 고향에 대형서점 있으면 좋잖아요.”

당시 중앙동 올림픽호텔과 용호동 엑스플러스상가건물 두 곳에 운영하던 서점을 모두 접고, 한 곳으로 넓게 합치며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교보문고 덕이란다. 그의 긍정적인 사고는 지금 그랜드문고를 있게 한 토대이자 앞으로도 굳건한 방패가 될 듯하다. 강재식 대표 말로, 책은 어디에서든 안 팔리고 그건 만국 공통이므로.

“해외 봉사차 베트남을 자주 가요. 수속을 기다리며 습관이 대기실 순회하며 몇명이 책을 읽나 보는 거거든요. 한국 사람은 물론이고 외국 사람들도 모두 책 안 봐요. 스마트폰 들고 있죠. 그럼 전 세계 서점이 다 힘든 거 아니겠습니까.”

그가 부친으로부터 서점을 물려받은 게 1988년. 2024년을 사는 사람들과 세대 차이가 없을래야 없을 수 없다. 적을 적으로 보지 않던 그의 열린 사고는 여기에도 적용된다.

“제가 세대 차이가 나잖아요. 그래서 웬만하면 애들 하는 거에 관여를 안 해요. 간혹 ‘이건 아닌 것 같네’ 소리는 하는데 애들이 해놓고 보면 또 괜찮더라고요?”

안상균 팀장을 비롯한 6명의 직원들과 딸의 조언에 거리낌이 없다. 지난여름 마치 동네책방처럼 책 큐레이션 등을 만나볼 수 있던 스펀지파크 팝업스토어가 그랬고, 최근 오픈한 ‘책거실’이 그 결과물이다. 그랜드문고는 가까운 미래 또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모습이건 그랜드문고는 그랜드문고다. 강재식 대표는 책의 힘을 믿기에, 그의 서점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우리 옆을 지킬 듯하다.

“책은 가까이 있어야 읽게 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조그만 구멍가게라고 해도 동네에 서점이 있다는 건 그 자체로 문화죠. 전 제가 이 동네의 문화에 기여한다는 데 굉장히 자부심을 가집니다. 저희가 없어진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삭막합니까.”

그랜드문고에서는 온누리상품권으로 책을 구매하면 좋다. 기존 10% 할인해 구매하는 온누리상품권에다가 그랜드문고 회원 가입하면 5% 적립을 할 수 있으니 다른 곳에서보다 할인된 가격으로 도서 구매가 가능하다.

글= 김현미 기자·사진= 성승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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