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나공간] 힙 딱 붙이고 책 읽을 결심… 개성 넘치는 힙한 책방

창원 가로수길 ‘텍스트힙’

기사입력 : 2025-01-07 20:39:42

작년 8월 문 연 동네 서점
매달 바뀌는 책 큐레이션
MBTI 책·생일책 인기
작가 돼보기 등 모임 운영

주인장 소장 도서 소개
오늘의 텍스트힙 공유
소중한 사람 책 선물 등
다른 독립 서점과 차별화

“책을 판매하는 것보다
사람의 가치 크게 생각
이곳 찾는 손님들에
좋은 기억 남게 하고파”


이곳을 염탐한 지는 3개월도 넘었다. 문을 연 것이 지난해 8월의 마지막 날이니 생겨나고서 줄곧 관심을 두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한 분기가 지나도록 소개하지 못했던 것은 이 공간의 이름 때문이었다. 이름이 너무나 힙(hip, 개성 있고 감각적인 동시에 신선하다는 뜻의 신조어)해서 실제로 힙하지 않으면 어쩌나 싶어 도전하기를 망설였다.

어쨌든, 새해 이틀째 되는 날, 드디어 이 공간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더 이상의 뜸 들이기를 그만하고 소개하는 이달의 공간은 창원 가로수길에 위치한 동네서점 ‘텍스트힙’이다. 이곳의 주인은 일문학자이자 인문학자, 번역가이자 교육자로 살아온 조문주(61)씨다.

이곳은 이름에서부터 주인장의 관심사나 성향을 잘 담아낸다. 우리가 아는 ‘텍스트힙’의 뜻이 젊은 층 사이에서 책 읽는 모습을 자랑하는 것을 일컫는 신조어라면 이곳의 ‘텍스트힙’은 다른 의미도 내포한다.

창원 가로수길에 위치한 동네서점 ‘텍스트힙’을 찾은 손님들이 책 큐레이션 코너를 둘러보고 있다.
창원 가로수길에 위치한 동네서점 ‘텍스트힙’을 찾은 손님들이 책 큐레이션 코너를 둘러보고 있다.

“보통의 텍스트힙 뜻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엉덩이(힙) 딱 붙이고 책 읽는 덕후’라는 뜻까지, 다의적인 의미랄까요.”

기자가 이날 서점에 발을 들이기까지 망설였던, 상호명에 대한 것은 주인장이 공간 이름을 정하고부터 맞닥뜨렸던 고민이기도 하다.

“이름을 정했을 때 가족들이 걱정을 했었어요. 그때는 텍스트힙이라는 단어를 잘 쓰지도 않았고, 또 손님들이 공간에 왔을 때 힙하지 않으면 실망하지 않겠나 하는 우려가 있었죠.”

다른 이들의 생각까지 모두 헤아릴 순 없지만 이곳은 분명 ‘힙한 서점’이다. 서점은 책을 파는 곳이 아니던가. 이곳은 책을 파는 방법이 아주 개성 있고 신선해서 결국 책을 사고 싶게 만드는 독특한 곳이랄까. 이곳을 알게 된 것도 왠지 모를 독특함이 호기심을 자극했다고 보는데, 대표가 거의 매일 소셜미디어에 써올리는 일기 느낌의 기록글부터가 그랬다. ‘D+111’ 등으로 시작하는 글에는 날씨와 책, 사람 등의 내용이 다양하게 담기는데, 하다 못해 ‘오늘 아무도 안 왔다’거나 ‘밤새 카펫을 도둑맞았다’ 같은 일상 이야기가 더해지니 더욱 시선을 끈다.

10~20대 고객들 사이에서 이곳은 ‘MBTI 추천책’과 ‘생일책’으로 유명한데, 개인적으로는 한 달에 한 번씩 바꾸는 책 큐레이션(전시)이 감각적이었다. 주인장이 이곳을 ‘인물 큐레이션 서점’으로 일컫는 이유이기도 하다.

같은 날 태어난 작가의 책을 만나볼 수 있는 생일책.
같은 날 태어난 작가의 책을 만나볼 수 있는 생일책.

서점을 열고 첫 달인 9월엔 ‘사랑은 서점에 있습니다’란 주제로 책을 소개했고, 10월엔 조금 더 가볍게 책을 접하자는 마음을 담아 ‘책 한잔 하실래요’를, 11월엔 가을과 어울리는 ‘빨간, 책’을, 12월엔 ‘따뜻한 선물’ 주제로 책들을 추려 소개했다.

“큐레이션 매대가 서점 공간 중 가장 힘주는 곳이죠. 정체성이기도 하고요.”

한 달에 한 번씩 바뀌는 ‘책 큐레이션’ 공간
한 달에 한 번씩 바뀌는 ‘책 큐레이션’ 공간

새해 첫 달인 1월은 ‘처음’을 주제로 강렬한 첫 문장으로 포장된 책들을 여럿 발견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서점 곳곳에는 발길을 잡아끄는 요소들이 다양하다. 하루에 하나 좋은 문장을 공유하는 ‘오늘의 텍스트힙’이나 방명록을 적을 수 있는 책상과 손님들을 상대로 조사해 꾸려놓은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 코너 등등.

특별히 기자의 눈에 들어온 건 서점 주인장의 소장 도서 코너였는데, 어떤 책들이 있어서라기보다는 편히 꺼내 읽으라고 둔 책들이라는 이유에서다. 서점은 책을 파는 곳이므로 돈이 되는 공간이어야 되지 않는가를 생각하게 되지만, 이에 대한 답은 조 대표가 이곳에 서점을 차리게 된 이유에 있다. 첫 질문으로 왜 책방을 차렸는지 물었을 때 조 대표는 젊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싶었다고 말했다. 무슨 뜻이냐 되물으니 “사람들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 코너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 코너
책 안의 좋은 문장을 메모에 적어 표지에 붙여 놓은 모습
책 안의 좋은 문장을 메모에 적어 표지에 붙여 놓은 모습

그가 오랜 세월 학생들을 가르치며 발견한 건 타인, 인간에 대한 관심은 없지만 자기 내면 지식의 깊이는 굉장하더라는 것이었고, 이것들을 바깥으로 끌어내어 서로 간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 매개가 책이었다.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면 책에서 많은 걸 배웠다고 생각해요. 나도 멘토가 되고 싶다, 배울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컸고 그 결과가 서점을 차리는 일이었던 거죠. 문장의 힘, 책의 힘을 믿거든요.”

책이 팔리지 않는 시대에 월세가 저렴한 곳을 찾아서 서점을 차려도 모자랄 판국에 창원에서 손꼽히는 번화가인 가로수길로 위치를 정한 이유도 같다. 도계동 등 다른 후보지도 물색했었지만, 당시 가르치던 해군사관학교 생도들에게 ‘어디쯤이면 책을 사러 가겠냐’ 물었을 때 가로수길이 최적지로 꼽힌 것이다. 이쯤 되면 ‘주인장이 돈이 많은가 보다’ 말하기 쉽지만 단언컨대 그건 아니다. 누군가는 일을 끝낼 나이에 새로운 시작이라니 그에게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저희 부부가 나중에 더 나이 들면 크루즈 여행을 하기로 하며 돈을 모았거든요. 그걸 여기 마련하는데 썼어요. 책방으로 사람 여행을 떠나보자 하면서요. 공간을 꾸리고 남은 돈은 ‘텍스트힙’ 통장에 모아두고 이곳을 유지하는 데 쓰고 있어요. 언젠가 끝날 여행이죠. 그런 마음에서 소셜미디어에 날짜를 세는 것도 있어요. 얼마나 오래 여행할 수 있을까 하면서요.”

이런 사람에게 “책만 팔아서는 유지가 힘들지 않냐”는 어리석은 질문을 던졌다. “서점을 하는 목적이 다른 사람과 다르잖아요. 사람들을 만나서 배우는 것. 저는 수업료를 안 내고 배운다고 생각해요. 하루를 더 하면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는 거죠.”

나의 MBTI 혹은 선물하고 싶은 사람의 MBTI에 맞게 랜덤으로 포장돼 있는 ‘MBTI 추천책’.
나의 MBTI 혹은 선물하고 싶은 사람의 MBTI에 맞게 랜덤으로 포장돼 있는 ‘MBTI 추천책’.

주인장이 간과한 것은 딱 하나, 체력이라고 했다. 그가 이 여행을 보다 오래 지속하기 위해 하는 일은 ‘책 잘 팔기’인데, 영업이라는 것이 어디 말처럼 간단한 일이던가. 사람들이 그냥 책을 사지 않기에, 작가들이 태어난 날들을 분류해 ‘생일책’을 만들고, 성향별 추천책을 추려 ‘MBTI책’을 만들어 포장하는데 가격은 책값 외에는 매기지 않으니 티 나지 않는 수고가 잔뜩이다.

모임도 다양하게 운영된다. 대표적인 것이 서로의 취향을 공유하는 ‘취향러모임’, 일문학자인 대표의 전공을 살려 ‘원서 읽기’ ‘일본탐구단’, 자신의 책을 만들어 보는 ‘에세이 작가 되기’ 등이 있는데 모두 비용을 따로 받지 않고 운영되고 있다. 다만 주인장이 시간이 중요한 사람이므로, 결석 시 벌금을 받아 연말 불우이웃돕기를 한다.

텍스트힙 조문주 대표.
텍스트힙 조문주 대표.

조 대표가 관심 가지는 건 서점을 찾는 고객들에게 기분 좋은 경험을 선물하는 것, 이로써 또 서점을 찾게 하는 것이다.

“친구들과 같이 서점을 찾는 사람들에겐 서로에게 선물하는 걸 권유해요. 사람들은 편지를 쓰고 선물하는 행위를 하며 즐거워하죠. 그런 좋은 기억이 남아서 또 서점을 찾게 하는 것이죠.”

매일 책방 앞 간이칠판 등을 채우는 ‘오늘의 텍스트힙’도 힘들겠다 물었는데 의외로 ‘아니’라는 답변이 왔다. 수많은 책들 사이에 좋은 책을 골라 그 속에서 또 좋은 문장을 고르는 일이 어떻게 수고스럽지 않을까. “어떤 책을 펼쳐도 쓸만한 문장은 늘 있거든요. 책은 선물이에요. 얼마나 똑똑한 사람들이 책을 쓰겠어요. 보물찾기하는 심정으로 매일 아침 책을 골라요.”

그런 선물처럼, 텍스트힙도 누군가를 응원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누구든지 이곳에 머물며 한 단계 더 올라서길 바란다. 공간 안쪽에 클래스룸을 마련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누구든지 자신의 지식을 나누고자 하는 이들과 함께 공간을, 배움을 공유하기 위해서.

다른 서점과의 차별점을 물었다. “우선”이라더니 “여기엔 제가 있지요!”라는 주인장이다. “텍스트힙엔 친구를 원하면 친구가 되고, 기댈 곳이 필요하다면 어른이 되어 줄 주인장이 있습니다.”

오늘로 텍스트힙의 여정은 131일을 넘겼다. 사람으로 떠나는 이 여행이 궁금하다면 부디 늦지 않게 방문하시길. “모든 건 어차피 끝나게 되어 있다”는 주인장의 사람 여행이 끝나기 전에.

글= 김현미 기자·사진= 김승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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