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 에세이] 사과 속에 한 사람- 최해숙(시인)

기사입력 : 2025-01-23 19:16:16

지난 가을은 유난히 짧았다. 여름은 10월이 다 가도록 가지 않고 헤어진 애인처럼 질척거렸다. 가을은 이마에 땀을 닦으면서도 좀체 웃옷을 벗지 않는 양반처럼, 계절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서성거리기만 했던 것 같다.

11월이 오고, 이제야 갓 쓴 가을이 오셨나 보다 했는데, 한 보름쯤 지나 느닷없이 겨울이 들이닥쳤다. 그러니까 올 가을은 11월 1일쯤 와서 18일쯤에 가버렸다. 사람들은 덥다 덥다 하다가 춥다 춥다 했다.

긴 여름 끝에 매달린 가을, 흐린 계절의 경계를 분명 지어주는 과일이 있으니 빨강의 대명사 사과다. 여름의 끝자락에 차례로 나오는 가을의 전령들, 아오리 홍옥 홍로 감홍 부사…. 그 종류가 국도에 수북이 쌓인 사과 같다.

우리 가족은 주로 홍로 감홍 부사, 서너 종의 사과 예찬으로 가을의 달콤함을 즐기곤 했다. 11월에 잘 익은 부사 한 상자 받았다. 박스를 열자 사과향이 주방에 햇살처럼 번졌다. 여름이야 길든 말든 모르는 척 사과는 탱글탱글 둥글었다. 사과는 사람들의 입을 즐겁게 해주면 그 뿐, 그 자체로 영광인 듯 충만했다. 기후니 전쟁이니 오만 걱정을 끌어와 터질 것 같은 작은 머리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사람도 견디기 힘들었던 여름, 자연과 조화하며 여물었을 붉은 열매를 본다.

불볕을 견디는 나무에게 바람은 땀을 식혀주었을 것이다. 나무는 있는 힘을 다해 꽃을 피우고 제 몸에 겨운 열매를 매달았을 것이다. 힘든 계절을 지나고 서로의 존재가 더 소중해지는 것이 어찌 사람의 일이기만 할까. 폭염을 뚫고 여기까지 온 사과야 고맙다, 아삭아삭 사과에게 말을 하듯 나는 식탁에 앉아 사과의 시간을 가진다.

과일을 두 쪽으로 나눈 순간, 까만 눈동자, 그 속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씨앗이 마치 다래끼 난 노령묘처럼 나를 바라보았다. ‘저런, 너도 씨앗을 안고 열매를 키우느라 속이 까매졌구나. 그 속으로 표정을 밝게 하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니.’ 식물의 감정을 믿는 나는 혼자 중얼거리며 씨앗의 둘레를 도려내고 한쪽 맛을 보았다. 단단한 속살과 아삭한 식감 익숙한 단맛의 청량감은 내입을 즐겁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자연의 열정과 투지에 겸손해 질만큼.

부사의 붉음엔 아오리의 연두와, 홍옥 홍로 감홍의 빨강을 두루 품고 있다. 그 속엔 어둠과 빛이 있다. 더구나 속살의 투명한 꿀광은 자체의 당분에 상해가는 농후한 빛이라 하지 않는가. 상해가면서 스스로 빛을 내는 사과의 속이라니!

나는 어떤가, 작은 상심마저 삭이지 못해 농익은 향기는커녕 은행 밟은 냄새를 풍기지는 않았을까. 어떤 기억은 못내 부끄러워 사과 앞에서 사과하는 심정이 되고 만다.

40년 동안 사과를 그려온 화가는 사과를 관찰하기 좋은 과일이라 했다.

나는 작정한 듯 사과와 오래 눈 맞추고 있다. 거기 한 사람이 사각사각 말을 걸어온다. 가파른 언덕을 넘어오느라 속에 깊은 흉터를 지닌 사람, 온몸을 통과한 삶의 서사를 농후한 향기로 전해주는 현자, 나이 들수록 스스로 밝음을 지녀 둥글게 웃는 사과 같은 사람.

최해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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