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 에세이] 지구를 생각하며- 김성진(시인)

기사입력 : 2025-01-30 19:26:20

오래전, 귀촌하면서 폐업했다. 귀촌이 폐업 이유는 아니고 경쟁력이 없어서였다. 컴퓨터 관련업이다 보니 젊은 세대를 이길 수 없었다. 10년이나 해온 일이라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직장생활도 20년 만에 조기 퇴직했으니 그 마음인들 오죽할까. 자영업 평균 유지 기간이 2년이라는 통계를 볼 때 10년 동안 했으니 그나마 나았는지 모른다.

폐업하고 보니 재고나 설비를 정리하는 일이 문제였다. 나는 저장강박증이 있어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더 쓸 물건인지 아닌지, 버린다면 재활용되는지 안 되는지도 문제였다. 구석구석 박힌 10년의 살림살이를 모조리 꺼내 보니 양이 만만치 않았다.

폐업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재고는 동종 업계에 헐값으로 넘기고, 계속 쓸 수 있는 집기는 집으로 가져왔지만, 많은 양이 쓰레기가 되어 버렸다. 어제까지 사용하던 물건이 하루아침에 쓰레기로 변한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개업이나 폐업이 환경에 엄청난 악영향을 준다는 것이 눈에 보였다.

재사용이 가능한 재고와 설비는 정리했지만, 재사용이 불가한 물건들은 버릴 수밖에 없다. 보관하자니 공간도 없고, 보관해도 사용하지 않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폐기물 딱지를 붙이며 심한 죄책감이 느껴졌다. 이렇게 많은 쓰레기를 생산한 죄를 어떻게 씻을까.

우리나라는 특히 자영업 비율이 높다. 문제는 이들의 생존율이 2년을 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낮은 자영업 생존율 속에서 폐업 때마다 발생하는 쓰레기양은 도대체 얼마나 될까.

자영업 폐업으로 중고시장에 매물로 나온 물건이 쌓여간다는 보도만 봐도 쓰레기는 또 얼마나 나올지 짐작할 수 있다. 사용하던 물건만 버려지는 게 아니다. 인테리어에 사용한 내장재나 외장재도 뜯겨 나간다. 어떤 업이든 업종에 맞게, 유행에 맞게 꾸미면서 나무, 타일, 벽돌 등 많은 자재가 교체된다. 쓰레기가 그야말로 산처럼 쏟아져 나온다.

자영업의 처참한 생존율이 지구환경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직접 폐업하기 전까지는 미처 알지 못했다. 물건과 인테리어는 세월보다 빠른 속도로 낡아간다. 임대료나 인건비가 나가지 않아 간신히 10년을 버텼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 역시 5년 안에 폐업의 길을 갔을지 모른다. 만일 그런 상황이었다면 이 지구에 더 미안했을 것이다.

모든 물건은 잠재적 쓰레기다. 아무리 비싸고 질이 좋은 물건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쓰레기가 된다. 저렴한 물건은 또 어떤가. 비용 절감에만 목표를 맞춰 생산한 물건은 그만큼 수명도 짧다. 싸게 구매했으니 버리는 마음도 가볍다. 정리하다 보니 버릴 때를 꼭 생각해야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10년이 지났는데, 아직 창고엔 불필요한 물건이 보인다. 분리수거를 위해 차에 실으면서 미니멀 라이프를 생각한다. 수많은 쓰레기가 당장 눈앞에서는 사라졌지만, 지구 어딘가에는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 또한 잊지 말아야겠다.

김성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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