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 에세이] 작은 마음 큰 변화- 유명숙(수필가)

개학 무렵이었다. 여학교 근처 버스 정류장 기둥에 튤립을 담은 꽃바구니가 걸려 있었다. 연분홍 튤립을 닮은 여학생들의 풋풋함을 그리며 그 길을 지나다녔다.
두어 달 지나자 해바라기꽃으로 바꿨다. 하루는 목적지보다 세 정거장 미리 내려 꽃이 반기는 맞은편 정류장으로 갔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주민에게 학생들이 꽃을 꽂아 놓은 거냐고 물었다. 주민이 잘 모른다. 근처 부동산 소개소 노인에게 물었더니 중국집 여주인 마음이란다. 여주인 마음속으로 들어가고파 음식점 문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소리만 들린다. 조금 뒤에 좁은 통로에서 여자가 매콤한 냄새와 함께 음식을 들고나온다. 헬멧을 쓴 남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철가방에 음식을 넣고 쌩하니 달린다. 여자는 요리하고 남자는 배달을 하는 모양이다. 배달 음식이 두 그릇 남았는데 조금만 기다려 달란다.
주문한 간짜장이 나오는 동안 실내를 둘러보았다. 벽에 걸린 해바라기 조화와 탁자 네 개와 의자. 전화기와 정수기, 컵이 전부다. 짜장면과 우동 한 그릇을 들고나온다. 그녀의 늦은 점심과 나의 이른 저녁이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 먹으면서 꽃을 꽂아 두는 이유를 물었다. 멋쩍은 듯 손가락으로 옆 골목을 가리켰다. 골목 입구에 있는 손바닥만 한 자투리땅에 해바라기가 만발한다. 오랫동안 주민들이 생활 쓰레기를 버리고 술 취한 사람들이 실례하여 골치가 아팠단다. 그 무렵 친구에게 생일 선물로 해바라기 조화를 받았다. 생화를 소비재로 생각하는 그녀를 위한 친구 마음이다.
그 마음이 고마워 식당에 세 송이만 꽂아 두고 나머지를 자투리땅에 바람개비처럼 세워놓았더니 차츰차츰 골목이 깨끗해졌다. 늦은 밤 비틀거리며 가던 취객이 바지춤을 내리다가 활짝 핀 해바라기와 눈이 마주치자 다시 올리더란다. 그때의 상황이 떠오르는지 물개박수를 치다가 두 손등을 부딪치며 깔깔거린다. 손등에 자극을 주면 요통과 척추 건강에 좋단다. 참 건강한 에너지를 가진 여자다.
두어 달에 한 번씩 바구니에 꽃을 바꾼다. 정류장 기둥에 달아 둔 꽃이 반 고흐의 그림 속 해바라기보다 더 강렬하다. 그녀의 마음을 닮았나 보다. 사랑의 우산도 필요한 사람의 손길을 기다린다. 처음에는 두 개로 시작한 우산이 돌아와 다섯 개로 늘어났다. 여름에는 부채도 꽂아 둔다. 기다리는 동안 사용하라는 마음 씀이다. 서서히 변하는 주변 환경을 누구보다도 그녀가 더 좋아한다.
진정한 힘은 다툼이 아니라 배려임을. 움켜잡는 게 아니라 내어놓음임을. 작은 친절이 큰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중이란다. 갑자기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도 낭패스럽지 않겠다. 머잖아 살랑살랑 부채 바람이 얼굴을 간지럽히겠다.
그녀의 겸손한 마음과 개척적인 행동이 버스 타고 오는 내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우리 마을에도 은행나무 가로수와 어울리는 아름다운 색을 입혀 보아야겠다.
유명숙(수필가)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