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 에세이] 배냇짓- 허정란(수필가)

기사입력 : 2025-02-20 19:28:33

외손녀의 백일사진은 다채로운 모습으로 딸애네 집 벽면을 장식한다. 엄마 아빠가 갓난아기를 보듬고 양옆에는 남매인 두 아이가 해맑게 웃고 있다.

지난겨울, 미국에 거주하는 친정 조카의 결혼식이 있어 뉴저지 여행 중이었다. 그 무렵 용인에 사는 딸애가 몸살기가 있다고 가족 카톡방에 전했다. 단순한 몸살 감기려니 생각하고 따뜻한 차를 자주 끓여 마시고 몸을 푹 쉬게 하라고만 일렀다. 딸아이의 임신 소식은 한 달간의 여행을 마치고 국내에 들어와서야 알았다. 셋째의 임신은 놀랍고 기쁜 일이지만 염려도 되었다.

딸애는 중학교 교직 생활 십 년 차에 휴직계를 두 차례 쓰며 남매를 키웠다. 아이들 아빠는 매일 출근과 동시에 둘째를 옆구리에 끼고 어린이집 등원 버스 시간에 맞추느라 뛰었다. 어느새 아이들은 훌쩍 커서 올봄이면 큰애인 누나는 5학년이 되고 둘째는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딸애도 집에서 두 시간 거리의 출퇴근에서 벗어나 인근 학교로 인사이동이 되었다. 지나고 보면 고단함도 잠시이듯, 한결 딸애 부부가 허리를 펼 수 있게 되어 마음이 가벼워졌다.

빡빡한 시집 생활 속 삼십 대의 일이다. 아들딸 남매를 키우며 셋째를 가졌지만 유산했다. 그 무렵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키우자”라고, 정부의 인구 억제 정책은 활발했었다. 굳이 나 자신에게 핑계를 대자면 몸살감기로 감기약을 복용했던 불안감이었다. 하지만, 교회법에 어긋난 죄의식은 고해소처럼 따라다녔다. 헛된 바람으로, 만약 삼십 대로 돌아간다면, 잃어버린 아이를 되찾고 싶다는 꿈을 꾸고는 했었다.

아기 침대 위에는 엄마가 손수 만든 모빌이 춤춘다. 꽃, 나비, 토끼 등 숲속의 자연 풍경이다. 종일 엄마의 젖을 먹으며 배냇짓하는 민슬이다. 언니 오빠 이름 자 중의 ‘슬’ 자를 따서 돌림으로 지은 이름이다. 요즘은 엄마 시선에 따라 옹알이한다. 식구들은 일심동체가 되어 기저귀를 갈아주고 목욕을 시키며 그 중심에는 엄마의 역할이 구심점을 잡는다. 말끝마다 아기에게 ‘예쁘다, 예쁘다’ 하며 포근한 몸짓으로 다정하게 품는다. 언니 윤슬이 아기를 안으면 한슬이는 갓난아기 볼에 뽀뽀하며 ‘오빠’라고 일러준다.

요즘 사회 문제로 저출산율은 사회적 위기로 대두된다. 경제적 요인과 함께 실업률, 주택 가격 상승 등 저출산은 가족 형성이 어려워진다. 이러한 요인은 자연히 인구 감소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정부의 대응책이 필요하다.

손녀의 탄생은 주변의 축하 인사를 몰고 온다. 불필요한 노파심은 말끔히 사라지고 갓난아기의 옹알이에 온 가족이 푹 빠진다. 매사 밝고 사랑스러운 엄마 아빠의 다정한 눈길은 갓난아기를 찔레 새순처럼 튼실하게 살찌운다. 생명을 사랑으로 품고 존중하는 딸애 부부를 위해 하느님께 감사 기도 바친다. 딸애네 집 벽면 백일 가족사진이다. 화사한 풍경 속 아기 천사가 순진무구하게 배냇짓한다.

허정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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